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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20 15:58
  • 바울의 편지
  • 노상완 목사
  • 신학, 성경, 바울서신
  • 2019년 01월 15일
  • 신국판
  • 979-11-5634-326-4
  • 15,000원

본문

2018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서서히 몰락해 가던 중세 시대의 종말은 전혀 뜻밖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것은 루터의 ‘의롭다함’의 재발견입니다. 변방의 작은 북소리 정도로 취급당했으나, 당시 최첨단 인쇄술의 발견과 더불어, 새로운 지식과 담론으로 확장되었고, 결국 근대사회의 문을 여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럽 사회는 500년에 걸쳐 혼돈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의 안정된 선진사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시기를 압축하여 100여 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습니다. 그것도 남북 분단의 현실 가운데 말입니다. 당연히 칭찬받아야 합니다. 한편 압축 성장에 따른 진통 또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인구가 천만 명에 이르는 한국 사회는 당연히 기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묶여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변화 역시 기독교의 몫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 500주년을 기념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가운데 로마서를 번역해 보기로 했습니다. 루터의 발치에도 못 미치는 비천한 자이지만 흉내라도 내보자며 도전했습니다. 환갑의 나이에 더군다나 헬라어 실력도 보잘것없으나 일단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등대교회 성도들의 무한 신뢰와 응원 덕분에 바울서신 전부를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에서 ~까지”란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합니다. 로마서 1:17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한 헬라어 특성상 번역이 쉽지 않고, 번역해도 아리송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화로 활용한, 트랙을 달리는 육상 선수와 비교해 보면 즉시 이해가 됩니다. “~에서”는 출발선이고 “~까지”는 결승선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육상 선수로 묘사합니다.(빌 3;14) 선수에게 지름길은 없습니다. 출발선에서 출발하여 결승선을 통과해야 합니다.
루터가 재발견한 ‘의롭다함’은 바울에게 있어 신앙의 출발선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점 없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것임을 서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승선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룩함’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종 목표는 거룩함을 넘머 ‘영화로움’에까지 이르는 것임을 바울과 루터 모두 강조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롭다함’이라는 주제가 너무 강렬하여 상대적으로 ‘거룩함’은 주목을 덜 받아왔습니다.
번역을 하며 얻은 결론은 바울이 출발했던 ‘의롭다함’과 도달하려 했던 ‘거룩함’의 그 길을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거룩함이란 특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품위 있는 건전한 삶입니다. 이런 거룩함이 이 시대의 담론으로 주목받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원고의 출판을 위해 협력해주신 대전의 박노중 목사님, 전주의 최명호 목사님, 사랑하는 아내 허영희 그리고 딸 노엘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들어가는 글・4

§ 로마서・9
§고린도전서・63
§고린도후서・123
§갈라디아서・163
§에베소서・183
§빌립보서・205
§골로새서・221
§데살로니가전서・237
§데살로니가후서・251
§디모데전서・261
§디모데후서・277
§디도서・289
§빌레몬서・297
§히브리서・303

1956년 산
한성고등학교
침례신학대학 졸업
기독교한국침례회
포항등대교회 담임목사

루터가 재발견한 ‘의롭다함’은 바울에게 있어 신앙의 출발선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점 없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것임을 서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승선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룩함’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종 목표는 거룩함을 넘머 ‘영화로움’에까지 이르는 것임을 바울과 루터 모두 강조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롭다함’이라는 주제가 너무 강렬하여 상대적으로 ‘거룩함’은 주목을 덜 받아왔습니다.
번역을 하며 얻은 결론은 바울이 출발했던 ‘의롭다함’과 도달하려 했던 ‘거룩함’의 그 길을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거룩함이란 특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품위 있는 건전한 삶입니다. 이런 거룩함이 이 시대의 담론으로 주목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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