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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8-09 17:55
  • 빈 들의 향기, 백비(白碑)
  • 임병식
  • 해드림출판사
  • 2021년 08월 08일
  • 신국판
  • 979-11-5634-467-4
  • 15,000원

본문

작가만의 작품 색깔이 뚜렷하고

작품 한 편마다 삶의 철학이나 지혜가 건네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이번 작품집 빈 들의 향기, 백비(白碑)의 펴내는 글에서 저자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라는 표현을 썼다. 그동안 임병식 선생님의 작품집을 여러 권 출간하였고,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문인으로서의 창작 열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이 마지막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임병식 선생님의 수필 사랑과 열정은 소리 없는 강물처럼 도도(滔滔)하게 흘러왔고, 또 그리 흘러가리라 믿는데, 어느새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약해지신 것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임병식 선생님의 이 표현을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인 다시 시작처럼으로 받아들인다.

빈 들의 향기, 백비(白碑)는 수필 빈들의 체취에서 작품집 표제로 뽑았다. 이 수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비(白碑)’는 비문이 없는 묘비석을 의미한다. 내세울 게 없어서 백비를 세운 게 아니라 겸손의 의미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천금 같은 묵언(默言)의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빈 들의 향기, 백비(白碑)’는 수필이 지닌 품성과 수필가 임병식 선생님의 품성을 닮은 듯하여 표제로 뽑게 되었다.

 

 

 

문여기인(文如其人)

 

앞으로 더 책을 내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간 써놓은 작품을 간추렸다. 단행본인 <꽃씨의 꿈>을 낸 것이 2015년이니까 꼭 6년 만이다. 꾸준히 쓰다 보니 한군데 모아 갈무리할 필요가 생겼다.

넘치는 샘물을 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데로 흘러서 옷자락을 적시게 된다. 마찬가지로 작품도 넘치면 흩어지기 쉽고 비단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생각의 흐름을 막아놓아 자꾸만 글을 쓰는데 신경이 쓰이게 한다.

그간 나는 열네 권의 수필집을 냈다. 그렇다고 만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낼 때마다 미흡하여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람이 어디 한 군데라도 특출한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의욕을 앞세우나 태작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심마니가 노상 허탕을 치면서도 산에 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듯이 나도 컴퓨터 자판기 앞을 떠나지 못한다. 열심히 쓰면 혹여 좋은 작품 하나쯤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간 써온 작품을 골라서 목차를 꾸미고 보니 그런대로 균형이 잡힌 듯하다. 이는 내가 어느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로 쓰지 않고 그때마다 생각나는 작품은 쓰지만 나름 균형감각을 가지고 써온 터인지 모른다.

나는 문여기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글과 사람이 같다는 해석의 측면을 넘어, 바로 글은 그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까닭이다. 따라서 글은 허황되게 과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내숭이 없는 글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비교적 그 기준에 맞추어 글을 써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뛰어나서 주목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후대인에게 하나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살아온 한 시대를 내 글을 통해 엿보고 느꼈으면 한다.

하지만 부족한 탓에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이 책을 접한 분들은 부족함을 널리 해량하여 주었으면 한다. 나는 앞으로는 기력이 남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 앞으로 더 책을 낼 기회가 있을지 모르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묶어 펴낸다.

 

 

 

 

펴내는 글-문여기인(文如其人) · 4

 

 

1부 모정의 바닷길 · 11

둠벙의 추억 · 12

삿갓논 · 17

어머니의 호밋자루 · 21

내 십 대의 군것질 · 26

우정 · 30

인연 · 35

대를 이은 우애 · 40

집안 내력 · 45

시절의 반추(反芻) · 50

동기간(同氣間) · 55

1등의 기억 · 60

모정(母情)의 바닷길 · 64

건망증 겹치는 날 · 69

그리운 미풍양속 · 73

그리운 모습 · 77

혼례풍속의 변천(變遷) · 80

 

 

 

2부 의미 있는 나들이 · 85

빈 들의 체취 · 87

보성 고을 전설 · 91

보성의 명물 메타세쿼이아 길 · 95

나의 역사 연표 읽는 법 · 99

어휘의 맛 · 104

보성 덤벙분청사기 · 109

한자(漢字) 풀이 이야기 · 114

어떤 말의 출처(出處) · 118

여력의 활용 · 123

의미 있는 나들이 · 127

가공되지 않는 이야기 · 132

빛을 발한 직관력(直觀力) · 137

존재와 영향력 · 142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 · 146

()의 경계에 관하여 · 150

물까치의 조상(弔喪) · 155

 

 

3부 또 다른 백아와 종자기 · 159

귀인(貴人) · 161

어떤 현상의 반영으로 나타난 행동 · 166

자가용 폐차 · 171

괴상망측한 요물 · 175

그리운 소리를 찾아서 · 180

소의 시련 · 183

() 치기 · 187

의지(意志)의 한국인 · 192

아름다운 손길 · 196

또 다른 백아와 종자기 · 201

동명이인(同名異人) · 206

철 지나 핀 철쭉꽃을 보며 · 211

맥문동 줄기 · 216

대마(大麻) 경작의 파수꾼 · 220

쇠똥구리 생각 · 225

()의 찬미 · 229

 

 

4부 앵무새 둥지 탈출 · 233

둥지를 잃은 까치 · 235

낯익은 테마 · 241

틀니 · 246

앵무새 둥지 탈출 · 250

갈색에 반하다 · 254

생존을 위한 진화 · 259

남의 머리 깎아주기 · 264

엄벌이 필요한 자 · 269

0.01초를 겨루는 감동 · 274

깨져버린 기대(期待) · 278

조망권(眺望權) · 283

재활운동기구 · 288

무지가 보여준 소탐대실(小貪大失) · 293

삼사일언(三 思一言) · 297

자계(自戒)의 글 · 302

수석(壽石) 이야기 · 307

 

 

현재 중학교 국어 2-1에 수필 문을 밀까, 두드릴까가 수록되어

있다.

 

빈 들의 체취

 

추수가 끝난 들판은 어머니의 품만 같다. 현상적으로는 비어 있어 언뜻 보면 허전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품 안에 자식을 키워서 떠나보낸 어머니 품처럼 드높은 가을 햇살 아래서 결실을 맺어가던 체온이 아직도 남아서 따뜻하다.

늦가을을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던 들판은 얼마나 풍성했던가. 그것이 거둬들여져 지금은 비어있지만, 가꿔진 작물을 떠나보낸 자리는 머물러 있던 체취가 여전하다. 그런 들판에서 벼가 무르익고 고구마와 배추, 무와 토란이 살이 쪄 갈무리되었다.

그래선지 들판에 서면 작물들이 다투어 크던 열기가 아직도 잔영으로 남아 눈에 어른거린다. 해서 들녘은 비어있지만 허전한 전경이 아니다. 오히려 보람으로 안겨 오는 흐뭇함이 있다. 마치 어릴 때 봉두난발한 머리를 바리캉으로 박박 깎아서 시원하던 때처럼 숙제를 마친 뿌듯함이 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의 정경은 고요하다. 바람이 불되 어디 한 곳, 거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벼나 작물이 있을 때는 벼 이삭을 흔들고 다른 것들의 이파리를 매만지던 바람이 얼음을 지치듯 지체하지 않고 미끄러져 지나간다.

그걸 보면서 나는 묵언(默言)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말 없는 소망을 읽는다. 너른 품으로 감싸 안았다가 내어준 마음을 읽는다. 이 말 없음의 묵언은 그저 입다 물고 조용하게 있는 침묵과는 다르다. 침묵은 할 말이 있으나 참는 것이지만 묵언은 그렇지 않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마음이며 빌어주는 비손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묵언은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무게감을 갖는다. 나는 일찍이 비어있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큰 울림을 준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등단을 하고 나서 이듬해인 1990년 전남 문학회가 개최한 문학기행에 따라나선 때였다.

 

장성 필암서원을 가기 전에 먼저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를 들렀는데, 가서 보니 묘비석이 글자가 하나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냥 맨 바탕의 백비(白碑)였다. 그것도 흰 차돌이어서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비가 있다니.

현장 안내를 맡은 이가 해설을 해주었다. 이 비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소박하게 세워지게 되었단다. 고인은 당대

2부 의미 있는 나들이 89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낸 분인데 항상 자신을 낮추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후손에게 이르기를,

내가 초야(草野) 충신에 외람되게 판서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이 분에 넘쳤다. 내가 죽거든 시호를 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마라.”

그 말을 듣고 감동했다. 한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38년이란 오랜 공직에 있었음에도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는지 숨을 거둘 때는 치상을 할 돈이 없었단다. 대사헌 윤춘년이 명종 임금에게 아뢰어 가까스로 상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백비는 이때 임금이 그의 훌륭한 인품을 생각해서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천만 가지 수사를 동원하여 쓴 그 어떤 화려한 비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천금 같은 묵언의 말을 후세에 전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그것을 보면서 옛 여인이 머리에 가체 얹듯 큰 비석에다 미사여구로 빼곡하게 써놓은 것과는 크게 비교가 됨을 느끼게 된다.

그 백비를 떠올리면서 무엇보다도 많이 느끼는 것은 요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말을 함부로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말들은 차고 넘친다.

그게 어디 믿을 만한 것들인가. 자고로 사람을 볼 때는 오직 내뱉은 말보다는 발길을 보고 평가하라 했듯이 그리할 일이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한데 박수량 선생은 어떠했던가. 백비로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수가 막 끝난 빈 들판의 여운처럼 그 백비는 따스하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자 한 획의 표시도 없이 비워둠으로써 얼마나 채워주는 충만이 있는가. 들판의 온기처럼 얼마나 흐뭇하게 하는가.

수확을 마친 들녘의 빈 모습이 내 눈에는 하나도 허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줄 것은 다 내주고 묵언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충만으로 가득 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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