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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공모전 금상_낮추고 비워야/채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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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907회 작성일 19-11-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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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고 비워야

 

나는 몇 년 전 퇴직을 하고 화백(화려한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작년 가을에 평생을 해로하리라 믿어왔던 친구인 아내를 잃었다. 졸지에 닥친 일이라 생전에 다 하지 못한 죄책감과 회한, 한없이 솟아나는 그리움, 주위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에도 서러움이 솟구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끔씩 아내 무덤을 찾는 일 외에는 집안에 쳐 박혀 컴퓨터만 바라보는 은둔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반년쯤 지난,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치솟던 분노와 흐르던 눈물이 조금은 잦아들 무렵에 가슴을 적시는 시(詩) 한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연으로 해서 시와 수필을 쓰겠다고 이것저것 끌쩍여 보기도 하고 넷 상에서 남들의 작품을 훔쳐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다 테마수필 사이트에서 '싸가지 없는 친구'에 대한 글을 보고 그들이 내미는 미끼를 덥석 물어 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꽤 괜찮은 작품들인데, 더구나 푸짐한 상금까지 덤으로 준다는데 "이래도 안 물래?" 하는 협박성(?) 멘트가 문학계 현실의 안타까움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수필, 그 중에서 똑같은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심성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신체연령은 대체적으로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혹,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글 나이는 한참 선배들이다. 그들의 잘난 글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는 게 맞다.

총알 배송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오전에 대전에서 책을 주문했는데 저녁 무렵에 벌써 도착을 했다. 개봉을 하자마자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읽기 시작해서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이거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야? 작가들은 정성을 다해서 선보였는데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이건 그들에게 대한 예의도 아니고 책을 읽을 기본도 되어있지 않구만"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무식하기는, 수필이 뭔가.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아닌가. 그들이 지들의 생각대로 쓴 것을 나는 내 방식대로 보면 되는 거지 뭐가 더 필요한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준 것만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한 줄이나 알아."

그랬다. 나는 글이 재미가 없으면 절대 읽지 않는다, 아니 보던 책도 바로 집어 던져버린다. 난해한 시나 발로 그린 것 같은 추상화를 앞에 놓고 작가의 의도를 따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등등의 일들은 애초부터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낮잠이나 자는 게 백번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수필집은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그것도 한 순간에) 사실만으로도 재미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지루한 장마기간의 후덥지근함과 따분함을 잊게 하는 청량제가 따로 없다.

『펴내는 글』에서, 쓴 이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을 불변의 진리로 삼고 싶은 욕심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아마 시대에 따라, 의식에 따라 진리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한 몸짓으로 보인다. 그것이 테마 수필이 지향하는 길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친구의 집』에서는 "친구라는 말이 예전처럼 한없이 든든하고 고향처럼 푸근한 것이 아닌, 목적에 따라 취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단어가 되었다"는 말로서 우리들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힌 이기적이고도 이중적인 태도를 한탄하며 꼬집었는데, 참 어떻게 알고,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른다.『내 생애 가장 멋진 친구』에서는 내가 필요할 때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반겨주는 느티나무를 최고로 편한 친구로, 『그 바다』에선 작가 자신이 옹골찬 파도로 친구의 마음에 끊임없이 철썩이는 바다가 되기를 청함으로서 '오래 사귄 사람' 이라는 '친구'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자연물을 사랑하게 되면 사람보다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에 십분 공감을 한다. 나 역시 주야장천(晝夜長川) 컴퓨터를 애인처럼 끼고 앉아 노닥거리며 위로를 삼으니 이 또한 훌륭한 벗이 아니겠는가. 또한 『친구야, 이젠 멈춰다오』에서는 올곧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함께 가는 자'로서의 친구가 기꺼이 되고 싶다는 작가의 구도자(求道者)적 심성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책의 전편에 흐르는 잊지 못할 친구들에 대한 애증(愛憎)어린 추억을 가슴에 새기면서 나의 친구들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내가 필요할 때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줄 그런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세월에 따라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옛 친구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친구는 높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 같은 존재 같기도 하다.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한 번쯤 스치기도 하고 또 멀리, 아주 멀리 흘러가기도 한다. 기분이 좋으면 햇살을 보내 따스함을 주기도 하지만 심술이 나면 사정없이 소나기를 뿌리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는 상대적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다. 그 특수한 경우란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 즉 어린 시절의 부랄친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봄에 머물다』가 특히 인상적이다. 30여년 만에 찾은 고향, 거기서 뜻밖에도 기억에서조차 지워진 동창을 만났다는, 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흔한 얘기지만 내면을 흐르는 봄 시냇물 같은 잔잔함이 좋고, 특히 그곳에 "친구가 있으므로 행복했다"는 작가의 말에 흐뭇한 미소가 솟는다. 내가 좋아하던 곳에 기별 없이 찾아가도 반겨주는, 내가 바라던 바로 그런 친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호떡이 아프다』에서는 믿고 의지했던 친구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크고 깊어 그를 멀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이사를 다니고, "세상엔 선한 얼굴로 악을 즐기는 이들만 득실거린다."는 주위에 대한 원망의 눈초리를 치켜 올린다. 그러나 어느 코미디프로에서처럼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린 작금(昨今)의 피 터지는 상황에선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작가는 좋아하지도 않는 그 호떡(친구)을 잊지 못하는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자운영, 그 향기』를 보면, "좀 잊을 줄도 알아라."라는 친구의 작가에 대한 마음아린 배려와 오히려 그런 친구를 보듬어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마음이 오르페우스의 하프 선율로 되밀려와 코끝을 찡하게 한다. 물론 친구사이니까 편하게 개기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사랑과 배려가 먼저인 것이 옳은 것 같다.

지금껏 살면서도 나는 친구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이런 감정 따위도 물론 없었다. 다만 서로 필요할 때 연락하고 만나고 그렇게 지내왔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가까이 하지도 멀리 하지도 않으며 함께 하는 것이 좋은 친구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다. 항상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지만 언제 한번 친구를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해 본 적이라도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천주교에서도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그런데 그 밑바탕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무소유의 비움이 있어야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생의 끝자락에 와 있는 이 순간까지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끝없는 탐욕과 꼴 같지 않은 오만의 덩어리가 지워지지를 않으니, 그래서 그동안 친구를 사랑할 수가 없었나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내다. 거기 물난리가 났다카던데 떠내려가지는 않았능가배. 니 마누라와 아들은... 그라마 댓다, 아 그라고 주말엔가 태풍이 한 개 또 올라 온닥카던데 준비 단다이 해라, 또 있다. 너그 동네 옆에 우면산(牛眠山)인가 뭐 그런거 있제? 근방에는 얼씬도 말거라. 너 디지면 부조할 돈도 없다. 알아서 해라. 끈는다."

갑자기 시원한 빗줄기가 한 자락 쏟아져 장마 끝 불볕더위에 갈라진 메마른 가슴을 적셔 더위를 앗아간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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