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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목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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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75회 작성일 24-02-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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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행

윤복순

 

기차 타고 싶다고 하니 남편은 회가 먹고 싶다고 한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결정했다.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는 많지 않다. 휙휙 가는 KTX보다 조금 느리게 정겹게 농촌 산촌 다 보며 갈 수 있는 완행열차를 좋아한다. 당일치기를 해야 하는데 아침 일찍 가는 차가 없다.

목포에 도착하니 1시가 다 되었다. 남편의 목표인 회를 먹으려고 역 앞 관관안내소에 들렀다. 북항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케이블카 타는 곳을 안내한다. 회 센터에 간다고 했다.

이왕 오셨으니 설 명절 제수용품도 사 가셔요.” 좋은 생각이어서 건어물 상가를 물으니 그곳 옆에도 회 센터가 있다고, 차를 타지 않아도 근대역사관 등 둘러 볼 곳이 많다고 알려준다. 목포는 유달산 둘레길, 고하도, 삼학도, 압해도, 남농 선생 전시관, 자연사 박물관 등을 구경했다. 근대역사관은 가보지 않아 오늘 일정을 그곳으로 정했다.

건어물 시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횟집 거리가 나온다고 했는데 쉽게 못 찾겠다. 내 나이 쯤 된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한 집은 이미 지나왔고 다른 집은 찾기가 좀 어렵다고 한다. “쭉 가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알려주면 물어물어 찾아가겠다고 했다.

찾기 어렵다고 하더니 한참을 걸어도 그 집이 안 나온다. 남편은 길 묻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땐 내가 나서야 한다. 하필이면 외국인에게 물었다. 다시 도전, 그 집은 아주 유명해서 다 안다고 가다가 또 물으라며 자세히 알려준다.

이름 하여 민어회 골목이다. 호남인의 소울 푸드는 홍어와 민어다. 홍어는 서민들이 민어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향수 음식이란 글을 읽은 적 있다. 전북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는 뼛속까지 호남인인데 홍어도 민어도 좋아하지 않는다. 홍어는 제사음식으로 제사나 차례 때마다 올려 먹어봤지만 서민인 나는 민어는 먹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찾아간 OO횟집은 민어 전문점으로 민어만 취급한다. 시간이 늦어 점심식사 할 수 있냐고 들어갔는데 나올 수도 없어 비싼 회, 껍질, 부레, 회무침, , 탕 등 세트 메뉴로 주문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민어는 6~9월이 제철이고 수심이 깊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잡아 올리는 순간 거의 죽는다고 한다. 성깔도 한몫해서 활어회는 없다. 수족관에 있는 민어는 감성어 이거나 중국산 홍민어라고 한다. 민어는 숙성시킨 회다. 비싸다 보니 수입 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파는 것처럼 민어도 가짜가 많다. 임자도 민어를 최고로 친다. 남편이 맛있게 먹었고 나도 기분 좋게 먹었다. 활어회처럼 쫄깃한 식감이 아니어서 자주 찾고 싶지 않다.

 

소울 푸드도 먹었으니 골목 구경을 나섰다. 식당 바로 옆으로 목포진지, 소년 김대중 공부방, 약사사, 등의 푯말이 있다. 망설임 없이 DJ 공부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약사사가 있다. 절 마당에서 약사 노릇 잘 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은 작지만 깨끗한 2층 집이다. 하의도에서 올라와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평생의 주요 순간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행동하는 양심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나의 불의나 남의 불의에 나는 얼마나 행동했을까. 방명록이 있었다면 사랑했다고 자금도 존경한다고 쓰고 싶었다.

목포진과 객사가 바로 옆에 있다. 바다가 한 눈에 다 보인다. 한반도 서남해 방어진으로써 위치는 최고다.

근대역사관은 어디쯤 있을까. 도로에도 도로표시판에도 잘 표시돼 있다. 먼저 2관으로 갔다. 이곳은 동양척식회사 건물이다.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하기 위하여 설립한 특수회사로 쌀 목화 등의 수탈을 자행했다. 지난여름 군산에서 근대사박물관에 갔을 땐 관람객이 없었는데 목포는 많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다. 체험장으로 의열단들이 동양척식회사에 불을 질러 파괴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나도 열심히 오재미를 던져 시간 안에 폭파를 성공했다. 독립투사가 된 듯하다.

1관은 일본영사관이었던 곳이다. 국도 1, 2호선 기점 탑이 있다. 일제 때 신작로를 만들면서 기점으로 삼았던 것 같다. 조금 올라가니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있어 그나마 덜 추워 보였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발에 온기를 넣어주었다. 양말은 신길 수가 없다.

그 당시 정명 여학교가 있었는데 꽤 많은 학생들이 독립투사로 이름을 올렸다. 나도 이 학교 학생이었으면 독립열사가 되었을까. 독립유공자 자녀들이 어렵게 산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그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곳엔 191948일 독립만세 운동 사진이 걸려있는데 정명 여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도 준비돼 있다. 그 때의 여학생이 되어 옷을 입고 양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보았다. 이 나이 될 때까지 나는 국가에 얼마나 기여를 했을까. 선열들 앞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기차 시간까지 1시간 반이 남았다. 근대화 거리를 걸었다.

기차를 탔고 회도 먹었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도 보았고 근대역사관도 관람했고 허투루 살지 말자 내 마음도 다잡아 보았다. 완행기차 타고 돌아오는 길 봄을 끌어안은 것처럼 젊은 혈기를 느꼈다.

 

2024.2.4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아마도 40년 전 쯤으로 기억됩니다. 진도 출신 직원이 목포에서 결혼식을 해서 찾아가 세 발 낙지와 회를 먹고 홍어 회를 먹던.... 예나 지금이나 저는 홍어 회를 못 먹어 한 점 입에 넣었다가 톡톡히 혼났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네요.  그 때  유달산에도 올라갔었는데... 지금 많이 변했겠지요. 글을 보면서 저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어 회도 생각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