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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백년 전의 모습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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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86회 작성일 20-05-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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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 전의 모습 회상

 

고교 3년간 같은 반 친구였던 일곱의 만남이었다. 어제(1028) 서울 인사동에서 점심약속의 자리였다. 원래 서울에 거주는 그룹이 격월로 모임을 이어왔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산 촌놈인 나를 위해 월요일 점심시간으로 약속을 바꿨다는 귀띔이다. 그동안 간간히 전화 통화는 했어도 직접 대면하지 못한지 10여 년이 훌쩍 넘는 경우를 비롯해 심지어 그 중에 하나는 반백년을 훌쩍 넘긴 후에 처음 마주하기도 했다.

 

고교생이었던 십대 후반 3년 역사를 오롯이 새긴 곳은 조용한 도시 청주이다. 그 당시 내세울 변변한 산업시설이 전무했던 내륙의 작은 도청 소재지를 미화시킨 표현이 교육도시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청주에 표준이 될 만한 번듯한 교육시설이 있다거나 모두가 선망할 명문학교가 없었다는 이유에서 하는 얘기이다. 지난 60년대 초반 온통 어렵던 시절 사회와 가정은 물론이고 개인 역시 여유가 없었을 뿐 아니라 몹시 궁핍했다. 그 시절 예민하고 설익은 청춘들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 갈등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런 때문에 마음은 빙점 아래에 머물기 일쑤여서 어둡고 칙칙했던 세월임에도 내일의 희망에 모두걸기를 했었다.

 

고교 3년 동안 쉰 명 남짓한 급우가 같은 반이었다. 따라서 반이 바뀌지 않았던 관계로 서로의 이해가 깊고 넓어 우정이 더욱 각별했다. 그런 관계로 자연스럽게 각자의 성격이나 집안의 내밀한 사정까지도 속속들이 아는 경우가 숱했다. 한편 학업을 마친 뒤에 대다수는 향리인 청주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고 스물 가까이 서울로 둥지를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서울에 자리 잡은 그룹의 모임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듯 내가 덤으로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S와는 졸업 후 쉰 네 해만의 만남으로 낯설었다. 아득한 쉰다섯 해를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더듬어도 그 시절 모습은 오간데 없고 백발이 성성했다. 믿기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가 미간과 눈매에서 아스라한 옛 모습을 찾아내고 수인사를 나눴다. S는 한 때 같은 집에서 하숙을 했었는가 하면 학교에서 실습활동을 함께하며 자별했던 사이였다. 졸업 후 간간히 전화 연락은 닿았어도 친구는 서울에 거주하는데 비하여 나는 마산에 둥지를 틀었을 뿐 아니라 가던 길이 달라 귀가 맞지 않아 엇갈렸지 싶다. 따지고 보면 삼청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해왔던 관계로 쉬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자린고비를 닮았는지 매정하게도 신은 은전을 베풀어 주지 않았다.

 

촌놈 한양에서 헷갈려 헤맬 개연성을 우려했을 게다. KTX로 낮 12시 무렵 서울역에 도착하리라 했더니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친구들의 정신적 지주인 K와 중학교를 비롯해 고등학교 6년 동안 같은 반이었으며 오랫동안 캠브리지 대표를 역임했던 O가 마중을 나왔다. 복잡한 출구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두 백발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오래 전에 만났을 때 둘은 까만 머리였는데 지금은 내 머리와 판박이인 백두옹이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멍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언제부터 흰서리가 머리에 내려앉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랜 동안 염색으로 위장하다가 결국은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는 씁쓸한 고백이었다. 우리 삼총사가 하나같이 은발로 칠갑을 한 모양새로 남의 눈에 구경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흘깃흘깃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훔쳐 살피며 서울역에서 종각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인사동을 찾았다.

 

같은 씨족으로 족대부(族大父)이며 낙천가인 H는 예나 지금이나 영혼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다.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에 능한가하면 파월군 고엽제대책위원회 총무를 역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고엽제가 단초였을까. 이런저런 병마와 거듭되는 드잡이를 비롯해 암 수술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내 건강을 챙겨주는 자상함에 먹먹했다. 대학 때 함께 자취를 하던 시절 끈끈했던 정을 일깨우며 꿈을 먹고 살았던 풋풋함을 되살려 주어 무척 고마웠다.

 

학군단 장교를 거쳐 전공을 살려 지금까지 토목회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의지의 사나이 P는 언제 봐도 믿음직하다. 누구보다 쉽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고 여태까지 일선에서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담대한 기개와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고교 시절 어렵고 힘들 때마다 P와 나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고민하고 좌절했던 각별한 관계이기도 하다. 한편, 언제 봐도 후덕한 왕자풍의 L은 아직까지도 자기 사업을 하는 때문인지 지칠 줄 모르는 젊음을 자랑하는 초로의 멋쟁이다. 대학시절부터 자주 만나던 자별한 그다. 그런데 언제나 한결 같고 화를 내거나 남을 험담하는 일이 없었던 호남이다. 또 하나 특이함은 이번에 만난 대부분이 한두 가지의 병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고 살아가는 형편이다. 그에 비해 이 친구는 단 한 군데도 이상이 없이 완벽해 모두의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어쩌면 점심 한 끼 먹고 헤어지는데 너무 많은 공을 들인 셈이 아닐까. 첫새벽부터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서 서울의 인사동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고 차 마시며 회포를 풀다가 귀가까지 10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아울러 KTX 요금도 만만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무척 즐겁고 행복해 상종가(上終價)의 기쁨을 만끽한 살 맛 나는 하루였다. 아직도 촌구석에 묻혀 사는 안방퉁소를 기꺼이 불러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신나는 일인가. 어디 그뿐이랴. 서울역의 마산행 KTX 플랫폼까지 따라와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움직이는 차장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어 주던 KP 그리고 H가 더할 수 없이 정겹고 고마웠다.

 

한맥문학, 20201월호, 352, 20191225

(20191029일 화요일)


댓글목록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우정은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늘 고속버스만 이용하시다가 KTX를 타셨네요?^^
은발의 세 신사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교수님 작품에 등장한 친구분들은 모두 행운을 얻은 셈입니다.
교수님의 작품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