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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탑천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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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963회 작성일 20-05-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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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천을 걷다

윤복순

 

일요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까운 곳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 완행열차를 타고 순천에서 내려 국가정원을 하루 종일 구경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함라산 자전거 둘레길을 왕복 걷는다. 목천포에서 만경강을 따라 옥구 바다 만나는 곳까지 갔다가 대야로 나와 시내버스로 돌아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일요일에 누릴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재미가 없어졌다.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도 마음 편하지 않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위배된다. 휴일마다 탑천길을 걷는다. 탑천은 익산 금마에서 발원하여 대야면 광교리에서 만경강과 합류한다. 미륵사지의 석탑에서 시작한다 하여 탑천이다.

아파트 뒤로 나가 하천 길을 따라 걷다 미륵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다. 첫날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추워서인지 사람은 어쩌다 한 명씩 만났다. 주로 자건차를 타는 사람이다. 평소 같으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는 나룰 텐데 가까이 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최대한 멀찌감치 비켜서 간다.

익산에 확진자가 나온 것도 아니고 서로 마주보고 말을 건네는 것도 아닌데, 앞에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오면 다리를 건너 반대쪽으로 걷기도 했다. 언제부터 이웃이 바이러스처럼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바람도 없고 햇살도 좋았다. 어깨가 따끈따끈하니 기분이 한없이 업 되었다. 두 시간 갔다가 두 시간 돌아온다.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밭에 철쭉과 회양목을 심어놓은 곳이다. 햇볕 한 번 못 보는 발을 호강시켜 주기로 했다.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펴서 온 발에 햇볕을 가득 받게 해 주었다. 발가락이 곰실곰실 노래를 부른다.

탑천 양쪽으론 논이 있고 그 끝자락에 마을이 있다. 멀리서 보면 좋은 집도 비슷해 보인다. 시내에서 좀 떨어졌지만 이런 동네에 살면서 평일엔 직장에 근무하고 주말엔 농사를 지으면서 산다면 부러울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그 동네에 가보았다. 집이 크고 멋진 부자 동네다. 익산의 전원주택 마을로 별장 같은 마을이다. 예쁜 집들 구경하는 재미에 한없이 해찰을 했다.

탑천을 걷는 것은 목표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니 발길 가는대로 걸을 수 있어 좋다. ()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동네가 나온다. 그 곳으로 들어갔다. 양지바른 곳에서 할머니 한 분이 부러진 솔가지들을 모으고 있다. 멀찍이 서서

이리 쭉 가면 쌍릉 나와요?”

쌍릉이가 누구까? 우리 동네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디.”

쌍릉하고는 간이 천리인가 보다. 괜히 할머니에게 수수께끼만 만들어 준 것 같다. 왕자가 두 개나 들어가 백제의 서울이었던 익산이라 왕과 연관이 있을 거란 상상을 했다.

익산에서 중 고등학교 대학까지 나와 살고 있는데 안 가본 곳이 많다. 이번 참에 걸으면서 궁금한 동네에 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생활은 거의 시계추다. 새벽에 공원에서 1 시간 남짓 걷고 출근해선 하루 종일 약국에만 있다. 집에서 약국까진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출퇴근길에 거리 구경하는 재미도 없고 어디에 어느 동네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호기심 따라 걸으니 전북과학원이 나온다. 그 입구에서 열 체크를 받았다. 남편은 정상인데 나는 높게 나온다. 걷느라 땀이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모자를 위로 올리고 잠시 쉬었다 다시 재 봤지만 역시 높다. 어른들에겐 볼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냥 나오려는데 먼 길 걸어왔는데 구경하고 가란다. 다시 재보니 낮게 나온다. 체온계에 이상이 있는지 여러 직원에게 시험을 해 본다. 대여섯 번 확인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니까 익산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하루는 황등 방향으로 갔다. 뚝방이 비포장이라서 인지 걷는 사람이 없다. 농사철도 아닌데 논둑에 사람들이 있다. 양식장에서 물을 뺀다. 흙탕물에서 붕어들이 입을 뻐끔뻐끔 벌린다. 어릴 적 시골에서 모내기철에 방죽 물로 모를 심고 물 빠진 방죽에서 고기 잡던 일이 생각나 한참을 구경했다. 일하던 사람들은 새참을 먹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같이 먹자고 말을 걸 텐데 때가 때인지라 그들도 말이 없고 나도 붕어 놓는 것만 바라보았다.

포장도로를 따라 동네 속으로 들어갔다. 예사롭지 않은 녹색 잔디밭이 보인다. 개인 소유라고 하기엔 많이 넓다. 종자시험소다. 잔디가 아니라 보리밭이다. 당장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내 몸에 세균이라도 묻어 있어 보리에 지장을 줄까 망설였다. 큰길 따라 걷다 동네 속으로 들어가니 바로 보리밭이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 조금 밖에 걷지 않았는데 위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왔다고 당장 나가라고 할까봐 바짝 긴장을 했다. 대학 1학년 때 칠보수력발전소에 갔다. 들어가 조금 걸었는데 수위아저씨가 바로 쫒아왔고 허락 없이 들어갔다고 엄청 야단맞았다. 간첩이란 오해도 받았다. 그때 일이 생각나 실없이 웃었다.

빈집도 있다. 노인양반 두 분만 사셨는데 아버지가 먼저 가시니 객지에 사는 아들이 어머니를 모셔갔는가 보다. 그 세월이 꽤 지났는지 집은 주인 잃은 행색이 완연하다. 무너진 담장 사이로 뒤란이 보인다. 빛바랜 장독은 할 일이 없다고 손을 펴 보인다. 가꾸지 않았어도 머위가 쑥쑥 올라와 있다. 친정도 어머니 돌아가신 후 빈집으로 오랫동안 있었다. 그 많던 장독들은 시나브로 없어졌지만 텃밭의 머위는 봄철이면 어김없이 났다.

작은언니가 택배를 보냈다. 머위와 쑥 쑥부쟁이나물 등이다. “첫물이니 데쳐서 바로 무쳐 먹어라. 물에 담가 우려내지 말고.” 이럴 때 일수록 잘 먹고 건강 잘 챙기란다. 내가 머위 보며 친정 생각 한 것 어떻게 알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조금 잠잠해졌다. 마스크 사려는 사람들도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나는 탑천을 더 걸어야겠다. 아직도 가보지 않은 동네가 많다. 고샅고샅 마다 이야기가 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라고 했던가. 이번 참에 탑천이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다.

 

2020.4.2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코로나-19의 패악질로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성가신 문제도 있지만,
그 때문에 평소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나 일에 눈 길을 주거나 마음을 씀으로써
얻는 게 쏠쏠한 얻음도 있게 마련이던가요.

그럼에도 저는 매일 창살없는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이제 심신이 지쳐 가는 모양새로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다가는 이 시점에서.......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이 글 쓰실 때만 해도 코로나가 잠잠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은 다시 숨 막혀 오네요.
꼼꼼하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