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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보리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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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65회 작성일 20-06-06 19:17

본문

보리새우

윤복순

 

대구에서 신접살림을 할 때다. 남편 친구 K가 들렀다. 그 당시 익산에서 대구는 해외만큼이나 멀었다. 하루에 오고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없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제 내 월급 날 이었다. 월급을 올려줄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다. 주인에게 내 월급 좀 올려주라고 말을 하라고 하니 남편이 못 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방안풍수라 말을 못하고. 이래저래 끙끙 앓고 있었다.

K가 냉기를 눈치 챘는지, 우리의 세간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워 애처로웠는지 부산에 가자고 했다. 말이 신혼이지 자취생활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댁에 생활비를 보내야만 했다. 부산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가 보았다. 돈이 모아지면 제일 먼저 부산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살기 빠듯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은 없다. 부산에 도착해 그가 전화할 데가 있다고 다방에 들어가자고 했다. 매형이 부산 어느 회사에 근무하는데 온다고 했단다. 회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큰 회사였다. 회사 광고하는 것 라디오에서 TV에서 여러 번 들었다.

토요일이었고 충분히 근무 마치고 올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았다. 우리는 오랜만이라 할 얘기가 많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미안했는지 또 전화를 했다.

금방 온다고 했단다. 그 금방이 1 시간이 넘었다. 부산에 와서 구경하나 못하고 매형만 기다리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성의 한계에 도달하기 바로 전에 그가 또 전화를 했다.

거의 다 왔다고 쪼끔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30분이 지났다. 혈기왕성하게 말이 많던 우리도 말 수가 줄고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갔다. 나라도 괜찮은 척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제 월급 올려주지 않았다고, 오늘은 기다리다 지쳐,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빨리 이 국면을 벗어나고 싶었다.

겨울이라 밖은 깜깜하고 기다리기 3시간이 지났다. 그때서야 그 대단하신 분이 나타났다. 얼굴이 피곤해 보였고 웃음기도 없다. 나도 지쳐서 미워서 마음이 쉬 열리지 않았다.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해 말없이 뒤를 따랐다.

탕수육이나 기대했는데 근사한 횟집이다. K는 의대 졸업반 이었고 우리는 사회 초년병이라 일식집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먹는 지도 몰라 그 사람이 먹는 대로 따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쁜 그릇에 4인분씩 나오는데 정갈해서 더 맛이 있다. 그중 압권은 새우였다. 살아 움직이는 채로 나왔고 팔팔 뛰는 걸 어떻게 먹을까 했는데, 웬걸 탱글탱글 사각사각 입안에 달큰함이 그윽하게 퍼졌다. 머리와 꼬리는 구워 먹었다. 그 맛 때문에 오도리가 각인 되었는데 일본말임을 알았다. 새우가 살아 춤을 춘다는 뜻인데 우리 이름은 없을까.

생전 처음 먹어본 비싼 음식으로 입 호강을 한데다 배까지 불렀다. 남자들은 술도 한 잔 했다. 화나고 미웠던 매형에 대한 마음이 슬며시 살아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업무를 마치고 직원들 끼리 고스톱을 쳤는데 자기다 다 따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K는 안동 O씨로 성실하고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인데 매형은 불성실해 보였다.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도 모자라 화투까지. 그런 사람이 사준 것을 잘도 먹었으니 나도 한통속이라는 생각에 뒷맛이 좀 그랬다.

요리집에서 나왔을 때는 시간이 많이 늦었고 부산에서 울산까지 택시를 탔다. 늦은 밤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는데 누나는 다시 술상을 차리고 얘기는 밤을 새워 이어졌다. 남편은 K의 제일 친한 친구라 누나도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누나가 우리 둘째 언니와 대학 동기라고 몇 번이나 잘 왔다고 내 손을 잡아줬는지 모른다.

부산을 다녀오고 한 달쯤 지났을까 남편의 직장 동료 두 사람이 우리 단칸방에 왔다. 커피도 없어 옥수수 물 한잔을 내 놨을 것이다.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가는데 식사 준비를 하자니 솜씨도 없지만 지갑이 텅 비었다. 부뚜막에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난감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월급 받아 시댁에 보내고 적금 넣고 나면 매달 매뉴얼대로 살아야지 엉뚱한 지출이 생기면 보충할 방법이 없었다. 라면이라도 끊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대접이 아니었다. 그 동료들이 밥도 못 먹고 그냥 갔다. 남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몸이 오그라들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매형도 고스톱을 치다 늦은 게 아니라 돈을 빌리느라 늦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불쑥 부산에 왔다고 전화를 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지금처럼 신용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대기업에 다녀도 현금을 그리 많이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가난하던 70년대 중반인데.

처남이 친구와 친구 와이프까지 데리고 왔다고 하니 처남 체면은 세워줘야겠는데 돈은 없고 토요일이라 가불도 못하고 이리저리 전화해도 돈을 빌릴 만한 사람도 없고, 시간은 자꾸 가고... 돈 빌리느라 늦었다고 하기엔 창피하니까 고스톱 했다고 둘러댄 것은 아니었을까.

젊음은 때때로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 요즘은 아들딸네 집도 약속하고 가는데. 누나와 매형도 그 돈 메우느라 부부싸움 쫌 했을 것이다. 철없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그날 보리새우는 빈궁한 신혼시절 기억에 오롯이 자리한 최고의 사치이다.

K의 막내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2020.5.22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도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이를 지음 부산에서 3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부산의 횟집에서 보리새우를 대접 받았다는 것은 아마도 최고의 대우이며 대접이었지 싶습니다. 부산에서 진해쪽으로 오다가 용원항이 있는데 그 곳이 보리새우로 제일 유명했지요? 하여튼 횟집에서 그 비싼 살아있는 보리새우를 대접 받았으면 그야말로 칙사 대접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신혼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는 말해도 되고 물어봐도 되겠어요.
"그때 우리가 돈이 없어서 저녁도 대접을 못해드렸답니다" 라거나  "그때 돈 빌리러  다니시느라 늦게 나오신 거죠?" 라고 말입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찰가난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평생 가난을 질머지고 살다보니
요즘은 가난에서 구해줄 것은 로또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