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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법정 스님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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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창우 댓글 2건 조회 1,440회 작성일 20-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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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앉았다 일어날 때 허리가 찌릿찌릿한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걷거나 움직이면 통증은 바로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허리 통증이 생긴다는 것이 불안해서 허리 통증을 조기에 치료해야겠다는 마음에 침을 맞으러 진주 시내에 있는 모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사가 침도 맞고 추나요법으로 치료도 해봅시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한의사가 하자는 대로 침도 맞고 추나요법 치료도 받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나오자마자 허리 통증이 부쩍 심해지고 걷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날(한의원 다녀온 날)은 멀리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저의 처가에 중요한 집안 행사가 있어서 안성까지 운전해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의 손녀(처남의 딸)가 다음 날 결혼식을 한다는 겁니다. 처남 부부가 자녀들과 함께 부모님과 같이 사는, 요즘 보기 드문 모범적인 가정입니다. 물론 처남이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사연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남 부부가 예전에(젊은 시절) 객지에 나가서 자영업을 했었는데, IMF 때 사업이 어려움에 빠지자 객지 생활을 접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처남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같이 산 지가 20년이 넘었고, 드디어 처남의 장녀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품을 떠나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필 처조카 딸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내가 한의원에서 엉터리로 치료를 받고 운전도 힘들 정도로 허리 상태가 부쩍 나빠져서 걷기조차 힘들어서 처가에도 안 가려고 했습니다. 허리 통증 핑계를 대면 될 테니까요. 그러나 내 허리가 안 좋다고 해서 처가 행사에 빠진다면 아내에게 두고두고 시달릴 것 같아 처가에 가긴 갔습니다. 거의 울다시피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3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처가에서 나의 허리 통증을 진단하신 장모님은 척추협착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모님도 나와 똑같은 증상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내가 허리 통증이 심해서 걷다가 푹 주저앉을 지경이라고 하니 장모님도 그러셨다고 합니다.

내가 허리가 갑자기 이렇게 망가진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들어보고 추정해본 바로는, 내가 앉았다 일어날 때만 잠시 찌릿 하는 정도의 통증만 있었을 뿐 걷거나 달릴 때는 멀쩡했으니 일단 가벼운 허리 디스크 증세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치료를 엉터리로 받는 바람에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걸어야 할 정도로 허리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입니다. 나는 지금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굽히고 걷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성질 같아서는 멀쩡한 사람을 잘못 치료하여 꼬부랑 할머니로 만든 엉터리 한의원 원장한테 당장 쳐들어가 난리를 치고 싶지만……

일단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고 정밀 진단을 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마라톤 인생에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허리 통증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허리 통증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내가 느닷없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다니! 어쨌거나 나는 졸지에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처가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처조카 딸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조카딸 결혼식이 예전 우리 시대의 결혼식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더군요. 일단 결혼식에 주례가 없이 자유스럽고 파격적인 분위기로 예식이 진행되더군요. 신랑·신부 부모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와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는가 하면, 신랑·신부도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하객들에게 자신들의 결혼 생활 각오를 밝히기도 하더군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하고 창의적이고 자유스러운 결혼식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결혼식에서는 보통 주례 선생님이 근엄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 일쑤입니다. “신랑·신부는 서로 이해와 사랑으로.” 또는 신랑·신부는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이런 따위의 극히 형식적이고 무책임하고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분들(주례 선생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라 당부하는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부부들은 이혼을 많이 하고 가정이 깨지는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례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떤 스님의 주례사입니다. 법륜 스님이 예전에 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에 실린 법정 스님의 주례사를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법정 스님이 폐암 투병 중 쓴 책으로, 스님의 생전 마지막 저서가 되었고 책의 제목처럼 법정 스님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반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떠났지만 그분이 남긴 수많은 저서는 우리에게 따끔한 죽비가 되어 우리의 혼을 깨우고 있습니다. 그럼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어떤 주례사라는 꼭지 제목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법정 스님이 좋은 책을 많이 쓰고 워낙 유명한 분이시다 보니 여기저기서 법정 스님한테 지인들로부터 주례를 서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나 봅니다. 그럴 때마다 법정 스님은 내게는 주례 면허증이 없어 해줄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사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던 법정 스님이 생전 딱 한 번 주례를 선 적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례사를 자신의 저서에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의 주례사를 읽으면서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습니다. 역시 법정 스님의 주례사는 법정 스님의 명성에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법정 스님의 주례사 내용이 무척 궁금해질 겁니다. , 이런 좋은 것은 맨입으로 알려주면 내가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소개하겠습니다. 책의 내용 일부를 원문 그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옮겨 적겠습니다.

 

- 삶의 동반자로서 원활한 대화의 지속을 위해, 부모님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숙제를 내주겠다.

 

숙제 하나,

한 달에 산문집 2권과 시집 1권을 밖에서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 산문집은 신랑 신부가 따로 한 권씩 골라서 바꿔가며 읽고 시집은 두 사람이 함께 선택하여 하루 한 차례 적당한 시간에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 시를 낭송함으로써 항상 풋풋한 가슴을 지닐 수 있다. 사는 일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

1년이면 36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집 안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해서 쌓인 책들은 이다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의 자취로, 정신의 유산으로 물려주라. 그 어떤 유산보다도 값질 것이다.

 

숙제 둘,

될 수 있는 한 집 안에서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소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이다.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말라. 광고에 속지 말고 충동구매를 극복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날은 두 사람이 다 숙제를 이행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숙제의 이행 여부는 이다음 삶의 종점에서 그들의 내신성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

 

, 어떤가요? 이런 주례사 들어보셨습니까? 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내가 이래서 법정 스님을 미치도록 좋아하고 법정 스님의 책을 좋아하고 법정 스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을, 지난번 언급한, 진주교도소에서 소장을 하시다가 지난 7월에 대전으로 복귀하신 그분에게 작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소장님은 마라톤 마니아일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로서 거의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신다고 소개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몇 년 전 대전에서, 남자 직원 결혼식 주례를 서신 적이 있다고 들었고, 앞으로도 주례 청탁이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내가 술자리에서 소장님께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물하면서 다음에 주례 서실 때 이 책을 주례사 교본으로 삼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볼 때 소장님은 그렇게 하실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웬만한 소장 같으면 직원이 감히 소장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식으로 말하면 불쾌감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분 인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감히 주제넘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지금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세간에 좀 알려진 사람이었다면 여기저기서 나에게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는 청탁이 쇄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신바람 나서 우렁찬 목소리로 법정 스님의 주례사를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그대로 낭독해 줄 것입니다. 법정 스님의 주례사를 그대로 낭독만 해도 최고의 주례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례사가 끝나면 즉석에서 법정 스님의 이 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신랑·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이란 말입니까? 주례 선생이 주례 끝나고 신랑·신부에게 선물 주는 거 봤습니까? 세상에 나처럼 훌륭한 주례 선생 봤습니까?

 

그런데, 지금 내가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누구 하나 나한테 주례 서달라고 청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탄식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명한 사람이 못돼서.

 

(마라토너와 사형수중에서)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추나요법! 제 큰 아이(현재 40대중반)가 대학시절 허리 디스크로 서울에서 추나요법 최초로 시술한 S박사에게 1년 이상 직접 시술을 정기적으로 받으며 동시에 약도 복용해서 완치 했답니다. 그 당시 대부분 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장기간 시술과 투약으로 치료비가 엄청 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여튼 하루 이틀 추나요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명 주례사를 다시 대하며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빙그레 웃음을 지어 봅니다. 어쩌다 제가 재직한 대학의 학과 창설교수가 되다 보니 1회졸업생들을 시작으로 상당히 여러 번(100회 남짓) 주례의 자리에 섰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주례에게 주례사에서 해주길 원하는 바가 다르고 소개해 달라는 내용도 엄청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주례의 뜻대로 일률적으로 주례사 내용을 결정하지 못할 경우도 상당히 많았답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앞으로 주례 설 기회가 있다면
법정 스님 숙제 하나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