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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처음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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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42회 작성일 20-06-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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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날

 

어제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마흔다섯 해(1975) 전의 깊은 잠에 빠졌던 추억을 소환했다. 손주 유진이와 식사를 하던 중에 아내가 뜬금없이 내일이 며칠이냐고 물었다. 뚱딴지같은 아내의 질문에 노망이든 것은 아닐 터임에도 불구하고 날짜 가는 줄도 모르나? 66일 현충일이지!”라고 퉁명스럽게 되받았다. 그랬더니 유진이에게 말했다. “내일이 마흔다섯 해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날 이란다라고. 그 말을 들으며 유진이는 어떤 상상을 했을까.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낄낄 대면서 그날 무엇을 했느냐고 파고 드는가 싶더니 끝내 히죽히죽 느물거렸다. 나는 여태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재내 왔다. 그런데 아내는 신통방통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내와 맺어진 연을 들추려면 자연스레 손위 처남인 김 박사가 등장한다. 지연이나 학연은 없었지만 K와 나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교분을 맺은 세월이 세 해 쯤 된 사이였다. 물리학을 전공한 K는 대학을 졸업하고 D항공 전산실에에 적을 둔 프로그래머였다. 그런데 그는 지나치게 고지식하여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면 곧바로 빚을 갚아야 할 정도로 앞뒤가 꽉 막혀 답답했다. 꽁생원으로 그 옛날 남산골딸깍발이를 빼닮아 자존심이 무척 강할 뿐 아니라 대쪽 같은 성정으로 곁을 쉬 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는 이따금 속내를 곧이곧대로 주고받을 수 있게 마음을 트고 지낼 정도가 되었다. 미혼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여직원이 많은 회사의 전산실에 재직하는 K에게 여자 친구 하나 소개해 달라고 진지하게 간청을 했었다.

 

원래 답답할 정도로 과묵한 위인에게 용기를 내어 어렵사리 청을 했는데 아마도 서너 달 동안 가타부타 귀띔이 전혀 없었다. 번지수를 잘 못 짚었지 싶어 잊고 지내던 어느 초여름 토요일 오후였다. 그날도 함께 회의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에 토요일인데 커피나 한 잔 하자며 소공동에 자리한 조선호텔 커피숍으로 끌고 갔다. 택시를 타고 소공동으로 향하면서 자린고비가 웬일로 이런 곳을 찾아가는지 당최 그 속내를 헤아릴 재간이 없었다.

 

아늑한 커피숍에는 젊고 풋풋한 두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K의 직장동료나 후배 정도로 여기고 호적 조사를 단념하고 무덤덤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슬쩍 살펴보니 둘 다 내 취향과는 딴판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 않고 낯설었다.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끝날 자리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눈치코치 없는 K가 시간을 질질 끌며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늘어놓다가 이윽고 저녁이나 먹자며 미도파 백화점 4층의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마뜩치 않아도 모처럼 인심을 쓰는 K의 마음 씀씀이가 하도 엉뚱하고 신기해서 잠자코 따랐다. 그 저녁을 먹던 시각 유제두라는 권투 선수가 동양타이틀 챔피언 전의 중계방송이 되었던 것으로 회억된다.

 

저녁식사 뒤에 거리로 나와 지하도를 건너서 명동 쪽으로 길머리를 틀 때였다. 슬며시 옆으로 다가온 K가 둘 중에 맘에 드는 하나와 데이트하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떨떠름한 채 애매한 태도를 보였지 싶다. 그런데 지하도를 나서기 무섭게 K가 그 중 하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딴에는 남은 여인과 데이트하라는 신호였을 게다. 그렇게 둘이 남아 목신의 오후라는 커피숍에 들려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 때 나나 그 여인 모두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연락처조차도 묻지 않았다. 그런 어정쩡한 상태였는데 며칠 뒤에 K가 내게는 여인이, 그 여인에게는 내가 만나길 원한다면서 다시 만나도록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둘 사이를 오가며 부추겨 다시 만나던 날 둘 다 예의상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생각이었다. 하늘이 내려준 인연은 거역할 수 없었던가. 그로부터 다섯 달 지난 동짓달 초여드레(118) 날 서울의 종로 예식장에서 부부가 되었다.

 

그 여인이 지금의 아내이고 그날 함께 나왔던 또 다른 여인은 아내의 대학 동기동창으로 마산 출신인 W여사였다. 그리고 K는 주위의 지인을 소개한 게 아니라 은근슬쩍 자기 여동생을 소개하고 맺어지도록 온갖 물밑 공작을 벌였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K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마산의 대학에 자리 잡고 둥지를 옮겨 여태까지 살고 있다. 한편 K는 미국 유학을 하며 학위를 취득하고 울산과 서울에서 대학에 재직하다가 정년퇴임하고 두 자녀가 뿌리 내린 미국으로 옮겨가 거기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처남인 김 박사는 나와 아내를 맺어준 중신아비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김 박사와 아내가 한통속이 되어 부린 농간(?)에 걸려든 희생양일까 아니면 아내라는 로또에 당첨된 행운아일까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 봐도 남는 장사였는지 오그랑장사를 했는지 가늠 되지 않는다.

 

쏜 살 같은 세월은 냉정했다. 모든 걸 더도 덜도 없이 꼭 내 됨됨이나 품을 수 있을 만큼만 허락했다. 내가 서른하나, 아내가 스물일곱에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어느 결에 고희의 중반을 넘어서 황혼의 언저리를 어정대고 있다. 젊은 시절 한가하게 한 눈을 팔거나 외도를 했던 적이 없음에도 내세울 게 없이 밋밋한 삶이 고작이었다. 하기야 야욕에 불타던 시절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좌충우돌하며 앞으로 내달렸는데도 얻거나 이룬 게 별로 없어 빈 쭉정이만 거머쥐고 있는 꼴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이 세상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이른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내와 처음 만났던 날을 거짓말처럼 잊고 지냈다. 이런 터수에 어렵사리 아내가 소환해 기억을 되살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늘(66) 우리 부부의 길을 엇갈렸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약속된 문인들의 배움교실의 수필반에 울력을 보태기 위해 서둘러 찬밥을 물에 말아 점심을 때우고 휘적휘적 창원의 문학관으로 향했다. 한편 아내는 나보다 한 발 앞서 손주와 함께 외출했다. 모레(68) 개학하는 손주 유진이의 머리를 깎이고 외식을 시켜주겠다며 총총히 백화점으로 향했다. 어쩌면 오늘 아내가 뭔가를 잔뜩 기대했던가? 문우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했다. 지아비의 귀가에도 시큰둥한 채 식사 여부를 묻지도 않는 아내가 내심 단단히 뒤틀어졌나보다. 밖에서 배움교실이 끝나고 부리나케 서둘러 돌아와서 아내와 식사를 했어야 아귀가 맞았던 걸까?

 

202066일 토요일

 


댓글목록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지금이라도 사모님하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근사한 저녁 한번 하시죠.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그리해서 사모님을 만나셨군요.
로또 제대로 예우하시지 못한 죄 엄청나게 큽니다. ㅎㅎ
사모님과의 만남이 참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여동생을 선뜻 소개할 정도이면
교수님의 품성을 김 박사님이 진즉 알아보시고 있었겠습니다.
앞으로는 6월 6일 잊지 마시고요.
기왕이면 7월 7일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