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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좋은 일 한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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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42회 작성일 20-06-20 20:19

본문

좋은 일 한 번 했다

윤복순

 

일요일 늦잠을 잘 거냐고 묻기에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밭에 가겠다고 했다. 올해는 포도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편의 안식년이다. K에게 무료로 빌려줬다. 익산에서 일하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을 새벽 6시에 데려다 준다. K는 김제 아주머니들을 태우고 온다. 저녁에 또 밭으로 데리러 간다. 아주머니들 출퇴근을 도와주는 것이다.

농촌엔 일요일이 없다. 농번기에는 부지깽이도 돕는다고 한다. 이런 때 나라도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 남편을 따라 나선 것이다. 나는 숙련을 요하는 나비 만들기나 알 솎기는 못한다. 곁순과 넝쿨손을 딴다.

포도는 새 순이 나면 잎이 금방금방 자랄 뿐 아니라 포도송이도 같이 나온다. 알이 아주 많이 달리니 적당한 숫자만 남기고 다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알이 크게 잘 자라고 잘 익는다. 잎과 알이 같이 크는데 곁순과 넝쿨손은 두 배로 빨리 자란다. 넝쿨손이 영양분을 다 빼어 먹어 알이 크게 자라지 않는다. 알 솎기만큼 중요한 게 넝쿨손 따주기다.

K부부가 일요일이나 하루 쉬지 뭐 하러 나오셨냐.”며 깜짝 반가워했다. 일은 못하지만 부지깽이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단다. ‘나도 모처럼 좋은 일 한 번 하게요.’ 쉬엄쉬엄 하라고 한다.

일손이 모자라니 넝쿨은 그야말로 쑥대머리 귀신형용이다. 하우스 3동을 끝낼 요량이었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새참 먹으라고 부르는데 점심 맛있게 먹겠다며 쉬는 시간도 없이 손을 놀렸다. 줄기가 자라 위에 것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깨금발로 했다. 뒷목 뿐 만아니라 허리까지 아프다.

포도야 잘 자라. 그리고 맛있게 익어.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어려움 다 겪고 자라니까 시집 잘 가야지. 파이팅 하자. 동요를 불러줬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침나절 보다 훤칠하게 더 큰 것 같다.

K네 포도농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가을에 제값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격이 맞지 않으면 1년 농사가 헛것이 된다. 올해 농사 잘 지어 농협 빚도 갚고 허리를 펼 수 있길 기도하며 일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끙끙 앓았다. 기어서 집에 들어왔다. 벌러덩 누워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서야 겨우 샤워를 했다.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도 나도 좋은 일 한 번 했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하늘만큼 업 되었다.

 

2주쯤 전이다. 신문방송학과 다니는 학생이라고 소개한다. 온라인 강의를 듣는데 숙제가 많단다. ‘코로나19와 마스크로 제목을 잡았는데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약국도 작아 극히 일부밖에 보여줄 것이 없으니 큰 약국을 찾아보라고 했다. 몇 군데에서 거절을 당했다고 꼭 해주면 좋겠단다. 나도 싫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통 연락이 없더니 내일 찍으러 오겠단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니 다 못한다고 했단다. 출근 시간에 맞추겠다고 해 더운데 청소 좀 했다.

마스크가 의약품도 아닌데 왜 약국에서만 살 수 있는지, 약사가 코로나19에 위험한 직군은 아닌지, 프로그램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마스크 수급에 대한 애로사항, 마스크 판매하면서 좋았던 일과 기분 나빴던 일 등 일곱 여덟 가지 얘기를 나눴다. 공적마스크 판매 프로그램에 클릭해서 주민번호 입력하고 판매하는 것도 보여줬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괜히 무식 탈로 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불편하고 귀찮았지만 진심으로 오라고 했다. A학점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찍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돌이켜보니 4개월 정도 마스크와 함께 살았다.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했을 때 나는 안 할 생각이었다. 컴퓨터 실력도 없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손도 느려서이다. 사람들은 줄을 서고 떠듬떠듬 주민번호를 넣었다. 빨리 하려니 띠롱띠롱 번호 틀렸다고 컴퓨터는 경보음을 울려댔다.

못 산 사람들이 몇몇 불평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고생한 것 이상의 대접을 받았다. 할머니 한 분은 행여 내가 아프기라도 할까 아침저녁으로 오셨고, 내 또래의 아주머니들은 대단하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지치지 말라며 김밥이며 잡채 등을 직접 만들어다 주고 식당에서 포장 해다 주기도 했다. 과일이며 빵이 떨어지지 않았다. 토요일엔 우체국에 다니는 아줌마가 입력을 해줬다. 덕분에 잘 버티었고 체중이 눈곱만큼 줄었다. 수입도 조금 생겼는데 좋은 일 했는가 보다. 죽어도 빠지지 않던 허리둘레가 1mm 정도 준걸 보면.

좋은 일을 하는데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핸가 태풍으로 큰 피해가 났을 때 나도 벼를 세워주러 가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하는 줄을 몰라 가지 못했다. 거창한 것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련다.

인터뷰하는 날 몹시 더웠는데 하루가 금방 갔다.

 

2020.6.6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의 동네에 "가슴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를 뜻하는 "가우정 약국"이 있습니다. 60대 초반의 약사인데 평소에는 보조하는 젊은 여인이 함께지키고 있는데...... 금년 봄부터 마스크를 판매하는 시간이 되면 부인과 아들이 나와 함께 일을 하더군요. 아들은 컴퓨터에 개인정보 입력, 부인은 마스크 챙겨 돈을 받고, 약사분은 전체 관리 감독..... 마스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온 가족이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어쨋던 윤 선생님도 마스크 때문에 많은 고생하셨겠습니다. 그리고 부군의 안식년을 위해 올해 포도 농사를 짓지 않으신다니 조금은 편하시겠습니다.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포도 먹으러 한번 가야겠군요.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늘 멋지게 사시는 선생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