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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장에 선출 됐다는 유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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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4건 조회 1,025회 작성일 20-06-30 07:25

본문

반장에 선출 됐다는 유진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랄까. 유진이가 반장에 선출 됐다는 뚱딴지같은 얘기였다. 오늘 아침 유진이가 등교하기 무섭게 아내가 소리를 낮춰 따라오라며 안방으로 향했다. 평소에 비해 너무 생소한 아내의 행동이 하도 괴이해 쭐레쭐레 따라 들어갔더니 문을 닫고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조금 전 등교를 돕기 위해 들어갔던 유진이 방에서 할머니! 사실은 나 어제 우리 반 반장으로 선출 되었어라고 얘기하더라고. 그러면서 한동안 할아버지나 제 아비에게 얘기하지 말고 비밀을 지켜달라는 거듭해서 당부를 하더란다. 그렇지만 기약 없이 함구하는 게 능사가 아닌 듯해서 입이 가볍다는 지청구를 들을 각오를 하고 귀띔한다는 얘기였다.

 

지난 춘삼월에 중학교에 입학 예정이었다. 그런데 괴질인 코로나-19의 패악으로 입학과 개학이 몇 차례 늦춰지다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상황에 이르러 비대면인 언택트(untact)의 온라인 개학(416)을 했었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68) 등교해 대면(face to face)하는 중학교 교육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등교한지 겨우 나흘 째 되던 날인 어제(611) 예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반장 선거를 실시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몇몇이 반장 후보로 추천 되었단다. 그런데 투표결과 자기가 절반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음으로써 얼떨결에 반장에 선출됐다고.

 

어제 밤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했던 유진이가 뜬금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능청스럽게 얘기했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장 선거가 실시되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각인 820분까지 등교해야 해요. 그러니 내일 아침 7시 무렵에 깨워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마고 약속을 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6시에 기상해 조간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유진이가 졸린 눈을 반쯤 뜬 채 비시비실 제 방에서 나오더니 할머니가 잠든 방으로 들어가 이내 새벽잠에 빠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날 무렵에 깨웠다. 그쯤에서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등교해야 약속된 시각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 학교에서 있었던 반장 선거 소식에 깜깜한 나는 아이를 깨우면서 우리 유진이! 오늘 반장 선거에서 친구들이 추천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농()을 던졌다. 그 얘기를 들으며 아이가 속으로 얼마나 뜨끔했을까.

 

어제 하교하여 오늘 아침 등교까지 그 긴긴 시간 동안 자기가 반장에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얼마나 입이 근질거렸을까. 공연히 폼을 잡고 으스대거나 크게 명예로운 자리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거나 숨겨야 할 일도 결단코 아니다. 아침에 할머니에게 얘기하더란다. 제 아비가 그런 쪽은 아예 넘보지 말 것이며 혹시 누가 추천하더라도 단호하게 고사(固辭)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런 활동은 자기희생이 필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책임이 전제되어 힘들다는 생각을 에둘러 얘기했지 싶었다. 그런 아비 때문에 자기가 반장에 당선되고도 곧바로 가족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의 심정이 어땠을까. 같은 반()이라도 얼굴을 마주한지 겨우 나흘째인 친구들이 순수하게 뜻을 모아 투표했던 소중한 결과이지 않은가. 따라서 정해진 기간까지 맡겨진 소임을 다해보는 것도 그다지 나쁠 게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서 구태여 사양하거나 피해야 할 이유가 없지 싶다.

 

반 백 년도 넘는 아주 오래된 얘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시절 반장을 쭉 맡았던 경험을 되새겨 봐도 결코 후회되거나 에둘러 피하고 싶은 역할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우리 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학교 출신도 아니고 힘이 센 축에 끼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가정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지도 못했다. 그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소수자인 마이너리티(minority)에게 친구들이 뜻을 모아 반장으로 추천해 주었다. 그 시절 여퉜던 다양한 경험들은 금쪽같은 정신적 자산이 되어 삶에서 행동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유진이가 반장을 맡는 걸 반대하고픈 마음은 아예 손톱만큼도 없다. 왜냐하면 사소할지라도 그를 통해 체득할 리더십(leadership)에서 얻을 깨우침이 매우 유익하고 쏠쏠할 터이기 때문이다.

 

유진이는 어느 모로 봐도 천재성을 지녔다거나 특출한 재능을 지니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다. 그런 까닭에 남에게 드러내 자랑할 바가 없을지라도 크게 손가락 질 받을 만한 결정적인 흠결 또한 없다. 하지만 영혼이 밝고 맑으며 매사에 긍정적이다. 게다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도 곧이곧대로 이실직고 하고 용서를 구하는 합리적인 품성을 지니고 있다. 지난 초등하교 시절 친구들과 놀이를 하다 실수를 하고 나서 도망치거나 흔적을 감춰도 무방할 상황에서 어른들도 단안을 내리기 힘든 신통방통한 탁월한 결단을 해 놀라게 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아울러 친구들과 친화력이 강해 잘 어울리면서도 자기주장을 삼갈 줄 아는 절제력을 지닌 때문인지 주위에는 놀라울 정도로 친구들이 많다. 흔히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해 한다고 하지 않던가. 유진이에 대한 생각의 이면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여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비불외곡(臂不外曲)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그런 위험이 따를지라도 자신의 허물을 구태여 숨기거나 에둘러 부정하려 들지 않는 원만한 성격으로 매사에 긍정적인 낙천가 기질이 다분하다.

 

반장으로 선출 되었다는 얘기를 듣던 자리에서 할머니가 이렇게 얘기했다는 전언이다. “비록 네 아비가 이런 경우가 발생할 개연성을 예측하고 꿈도 꾸지 말 것이며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도록 일렀던 뜻은 충분히 존중한다. 그럴지라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친구들이 너를 믿고 뽑아 줬기 때문에 네 자신이 싫지 않다면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의 삶은 네 자신이 주체이고, 옳지 않거나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라면 구태여 일부러 피하거나 포기해야할 이유가 없기에 다소 무거운 책임이 따르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네가 옳고 떳떳하게 바른 길을 당당히 헤쳐나간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튼실하게 마음을 다지도록 응원을 했다고 전해줬다.

 

2020612일 금요일


댓글목록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배려심, 포용력, 희생정신이 있어야 반장도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성이 갖춰진 사람을 말하겠지요.
유진이가 아버지, 할아버지에게서 훌륭한 인성을 물려받은 것 같군요.
그러고보니까 교수님 은근히 집안 자랑하시는 거 아닙니까?
학생 때 반장을 하는 것도 나중에 인생 사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60 가까이 살면서 반장, 회장  한 번 못한 초라한 인생인데,
팔마회 초대회장을 한 번 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마라톤 대회 나가다 보면 제 부친 또래의 어르신들도 뛰십니다.
칠마회(칠십 대 어르신들 마라톤 모임) 어르신들이 '칠마회'라 찍힌 조끼를 입고 뛰시는데, 지금은 다들 진급하셔서 팔마회로 바꿔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팔마회가 결성이 안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중에 팔순 되면 팔마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하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저도 한번쯤 회장 소리 듣고 싶네요. 제가 팔마회장 취임하는 날 교수님도 초대하겠어요. 교수님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해드림 사장님도 초청해야지요.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유진이 한테 축하한다고 전해주십시오^^

교수님, 홈페이지 시험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새회원 가입으로 해서 댓글을 단 후
본문 수정을 해봤거든요.

다시 한 번 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해들임님의 댓글

해들임 작성일

교수님, 이제 수정이 됩니다.
한 번 해보십시오.
고맙습니다.^*^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교수님, 유진이가 많이 대견하시죠
축하드려요.
지금은 아직 중학생이지만
앞날이 탄탄대로이기를 기원합니다.
덩달아 저도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