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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틈만 나면 꾸벅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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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000회 작성일 20-07-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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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꾸벅꾸벅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소파에 걸터앉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들거나 TV를 시청할 경우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이상한 증상에 빠진지 오래이다. 딴에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려고 맘을 먹거나 TV에 몰입할 요량이었음에도 얼결에 혼곤히 파고드는 잠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해 할릴 없이 졸고 있는 내가 무척 한심하다. 혼자 있을 때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멋쩍어 쓴 웃음을 짓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아 본다. 하지만 불과 몇 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로 잠과 밀월에 빠져드는 자신이 엄청 밉다. 그 방면에서 아내는 자웅을 겨루기에 맞춤한 호적수이다. 옆에서 아내가 그런 증상을 보일 때면 망설임 없이 정신 줄 놓지 말라며 가당치도 않은 지청구를 이죽이죽 늘어놓는다. 이런 경우를 두고 ()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하는 걸까.

 

아내의 경우는 나에 비해 일찍이 그런 몹쓸 증상이 나타났다. 멀쩡하게 뜨개질을 하다가도 금세 뜬금없이 졸고 있는 경우를 비롯해 TV를 시청하다가 순식간에 머리를 모로 떨구고 꿈나라 여행을 즐길 때가 숱하다. 그보다 가관은 내가 쓴 글을 한 번 읽어가며 맞춤법 오류나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있는지 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서 겪는 황당함이다. 컨디션이 정상일 경우 무사히 마치면 !”하면서 한숨을 내쉬게 마련인데 이는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표시이다. 그러나 쪼끔이라도 피곤한 상태이거나 늦은 밤일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달이 연이어 돌발한다. 기껏해야 ‘200자 원고지 15내외의 수필 한 편을 검토하다가 때로는 너 댓 차례 꿈나라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온탕과 냉탕이 되풀이 된다. 더욱 심할 경우는 중간에 포기한 채 다음 기회로 미루는 촌극도 발생한다.

 

가끔 밖에 나가서 강의하거나 집에서 컴퓨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는 경우를 위시해서 독서를 할 때는 몇 시간씩 같은 자세를 유지해도 되레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이 경우 눈이 침침하고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싶으면 의도적으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컨디션을 조절을 꾀한다. 편히 쉬면서 생각에 잠기거나 TV를 시청할 경우 상대적으로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기 때문에 쉬 졸릴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에 비하면 남들 앞에서 강의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비롯해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쪽이 훨씬 피로가 가중되는 중노동일터인데 증상은 정반대이다.

 

적어도 스무 해 이상 매주 4~53시간 안팎의 등산을 하고 있다. 여태까지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오갈 뿐인데 그 피로의 무게는 세월의 흐름에 비례해서 눈에 띄게 가중된다. 똑 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해 오르내리기 때문에 숙달되어 시간이 단축됨은 물론이고 힘도 덜 들어야 아귀가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는 희망 사항으로 욕심에 지나지 않으리라. 백세시대에 고희의 중반을 갓 지난 경우는 젊은이 취급을 당할지라도 나이와 가는 세월을 거역할 수 없나보다. 아무리 부정해도 이즈음 며칠 연이서 등산 뒤에 몰려오는 피로의 무게는 스무 해 전쯤에 느끼던 바와는 도저히 비견할 수 없다. 이런 때문일까. 서둘러 등산을 마치고 귀가하여 쉴 요량으로 소파에 걸터앉기 무섭게 민망한 잠의 농간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몽사몽의 경계를 넘나들며 곤혹을 겪기도 한다.

 

며칠 전 새벽 등산길에서 여름철마다 한동안 동행했던 엇비슷한 연배의 길동무 몇과 재회했다. 그들도 해가 지날수록 힘이 부치고 무리가 따른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 때문에 새 해부터는 산 정상 길 대신에 포장된 임도(林道)를 오갈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언제부터인지 산행 후 집에서 앉아 쉴라치면 부지불식간에 야멸치게 몰아치는 졸음의 유혹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쩔쩔매다가 아예 자리를 펴고 꿀 같은 낮잠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도저히 낮잠을 못 자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 아무리 몸이 아프거나 힘이 들고 지쳐도 낮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낮잠을 자던 어른들이 신기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낮잠과 스스럼없이 한통속이 되어 헤헤거리던 나를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한데, 젊은 날엔 비록 맛 갈 나는 양념같이 상큼한 낮잠 즉 오수(午睡)를 즐길지라도 멀쩡하게 앉아 있다가 피시식 고개를 떨궜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황혼녘 언저리에 이르면서 알 수 없는 블랙홀에 함몰되어 허우적이듯이 졸고 있는 흉한 꼴을 보이는 무르고 어정쩡한 내가 정녕 싫다.

 

프리미엄(premium) 고속버스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의 얘기이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다소 지친 상태에서 마산행 고속버스를 탔는데 운 좋게도 프리미엄이었다. 일반이나 우등에 비해 자리가 너를 뿐 아니라 의자를 침대처럼 눕힐 수 있는데다가 옆 승객 사이에도 커튼(가림막)이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을 구석이 없어 흡족했다. 썩 기분이 좋아져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제쳐 놓고 커튼을 친 다음 누워서 서울에서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復碁)하며 상념에 잠겼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무척 편안하고 부드러운 침대 속으로 끝없이 침잠(沈潛)하는 느낌에 휩싸이던 찰나였다. 그 순간 뭔가 드르렁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아뿔사! 그것은 혼곤히 밀려오는 졸음의 유혹에 대책 없이 무너진 채 무지개다리를 건너 오수와 어우러지는 합환(合歡)의 희열을 곧이곧대로 쏟아내는 달콤한 코골이 소리로 예삿일이 아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옆 승객의 기색을 살폈다. 놀람이나 민망함에 허둥댔던 나에 비해 아무런 낌새나 미동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서둘러 의자를 원래 위치로 바로 세우고 결기를 다지며 자세를 바꿔 곧추 앉은 채 잔뜩 긴장한 상태로 두어 시간 남짓 지나서 선산휴게소에 도착했다. 휴식을 위해 하차 하려니 잔뜩 긴장했던 때문인지 어기적대는 휘청걸음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어렸던 때 낮잠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와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어 맹꽁징꽁 어울리며 무던한 동행을 했었다. 고약한 낮잠에 길들여졌음일까. 볼썽 사납게 벌건 대낮에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망한 꼴은 늙음의 징표일까 아니면 나이 듦으로 인해 두꺼워진 민낯을 더덜이 없이 드러내는 뻔뻔함 일까. 어찌되었던 툭하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불치병(?)에 허우적이는 엄연한 현실을 왠지 온새미로 부정하고 싶을 뿐 아니라 헙헙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워 뻗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오기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웃픈* 감정의 낭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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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픈 : ‘웃기다슬프다를 합성한 신조어로서 젊은이들 사이에 통용되며 웃기지만 슬프다라는 의미이다.

 

2020614일 일요일


댓글목록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잠시 낮잠을 즐기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겠습니까? 잠이 오면 '아, 그래, 잠시 눈붙일 시간이구나.'하고 즐겁게 잠을 청하세요. 너무 자책(?)하지 마시구요.
인생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체력도 조금씩은 예전만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 역시 자책(?)하지 마시구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노쇠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막을 수 있다는 말에 픽 웃은 적이 있습니다. 샘, 아직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