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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낭만이 넘쳤던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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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26회 작성일 20-08-01 18:39

본문

낭만이 넘쳤던 옥상

윤복순

 

퇴근해 집에 들어가니 TV가 이상하다. 출연자의 얼굴이 넓게 나오더니 세로줄이 죽죽 그어졌다. 많은 비로 아파트 내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 시간이 한참 되어도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TV가 고장 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초로의 부부만 사는데 그놈마저 나오지 않으니 전기가 나간 것 마냥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다 없어진 것 같다. 남편과 우두커니 앉아 있다 마주보고 웃었다. 우리의 취미생활이 TV보기였나?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딸 방으로 갔다. 전에 쓰던 것이 있다. 손주들이 오면 만화를 보는 용이다. 무엇을 어떻게 손댔는지 채널 몇 개 밖에 볼 수 없다. 거실로 나와 도나 닦아야겠다며 좌선하는 자세로 앉았다.

남편이 이리저리 손을 보더니 잘 나온다고 얼른 오란다. 1인용 침대에 둘이 앉아 보려니 옹색하다. 이까짓 게 뭐라고 노인네 둘이 이리 궁상을 떨까.

43~4년 전, 가을에 농사지어 결혼식을 치러준다 했는데 같이 있고 싶어 식구들만 모여 식을 올리고 방 한 칸을 얻어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봄은 춘궁기라서 집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나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남편 보너스 받은 것으로 월세 방을 얻고 밥그릇 두 개 냄비 두 개를 샀는데 재미있었다. 내 월급은 모두 적금을 넣고 남편 월급으로 살면서 시댁에 돈을 보내야 했다. 없는 것 천지였는데 불편한 줄 몰랐다. 남편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여름이 되었다. 우리 방이 창고처럼 달아내 지은 것이라서 단열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퇴근해 집에 가면 한증막이었다. 하루 종일 문을 닫아두었던 데다 지붕이 시멘트 옥상이라서 더 더웠다. 거기다 대구이니 말해 뭐하리.

부엌 겸 샤워실로 썼는데 그곳도 시멘트로 덧대어 늘여지은 곳이라서 물을 끼얹을 때만 시원했다. 닦고 나오면 바로 땀범벅이 되었다. 선풍기가 없으니 샤워후의 열기가 쉬 가시지 않았다. 방도 맞통하는 창문이 없어 바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아파트 맨 앞 동 8, 앞 뒤 베란다 문을 열어 놓고 식탁에 앉아 이 글을 쓰는데 선풍기도 에어컨도 필요 없다. 쌀랑한 바람에 긴소매를 입어야 할 정도다.

더위쯤이야 남편만 있으면 다 이겨낼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복더위였을 것이다. 샤워를 해도 1시간도 못가 옷이 다 젖었다. 서너 번 쯤 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편이 물을 받아왔고 나는 대야에 남편은 수대에 발을 담근 체 꾸벅꾸벅 졸다 깨다 하며 날을 샜다.

밤이 되면 몸이나 마음이 더위 때문에 견뎌내기 힘들었다. 샤워를 하고 방에 있지 못하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걷다가 옥상 생각을 해냈다. 다시 씻고 옥상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기가 조금씩 느껴졌다. 낮에 달궈져서 열기가 남아있었지만 방보다는 나았다.

옆집 대청마루에 있는 TV화면이 훤히 보였다.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남편과 화면을 보며 변사라도 된 듯 내용을 지어내 주고받으며 즐겼다. 밤이 깊어갈수록 덥지 않았다. 횡재라도 한 듯 신이 났고 많이 웃었다.

밤마다 올라갔다. 유일하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TV와 맞춰졌다. 눈은 옆집 대청마루에 고정하고 귀는 라디오에 맞췄다. 그 당시 엄청 인기가 좋은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걸 볼 수 있었다. 탤런트 아무개가 여고생으로 나와 노래를 잘 불렀던 것만 기억난다.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올라갔다. 그때 형편으론 최고의 사치였다. 수박 한 통 살 돈도 없었지만 먹고 남은 걸 넣을 냉장고도 없었다.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보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올해는 벌써 여섯 통을 샀는데. 제일 좋아하는 게 수박이다. 내 별명이 수박상이다. 아침마다 수박을 잘라 통에 넣어가지고 출근한다.

여름 내내 옥상에서 놀았다. 남의 집 것이지만 TV도 볼 수 있었고 더위도 잊을 수 있었으며 하늘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었다. 때로는 누워 있기도 했다. 누워서 보는 하늘에는 고향집이 보였다. 모깃불을 피우고 마당 한 가운데제일 큰 멍석을 펴놓고 식구들이 누워서 보았던 북두칠성과 은하수... “이 더위에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대신 많이 사랑해 줄게.” 우리는 줄 것이 없어 정말 사랑만 받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옆집 대청마루의 문이 닫혔다. 추운 것은 괜찮다. 남편 품속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하늘이 보고 싶으면 쌀쌀한 공기를 온 몸으로 맞고 싶으면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요즘 같으면 날마다 남의 집을 훔쳐봤으니 스토킹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 더위에 어머니에게 선풍기 하나 사달라고 TV도 없다고 했으면 사 주셨을 것이다. 가난하다 더워서 고생한다, 부모님께 말하기 싫었다. 그 시절에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그런 말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하기야 한 번도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젊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TV는 액정이 나갔다고 한다. 길바닥에 내놓아도 가져가지 않을 것을 거금 들여 고쳤다. 새 것이 되었고 앞뒤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TV를 본다.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채널을 돌린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신혼 때 갖춰놓고 어려움 없이 살았다면 그때 우리 낭만이 펄펄 끊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옥상에서 TV채널을 찾기 위해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던 남자와 그 옆의 여자가 눈에 선하다.

 

2020. 7. 25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낭만이 넘쳤던 옥상"을 감상하면서 지난 60~70년대 신접살림을 차렸던 수많은 이땅의 신혼 부부의 단면이라는 생각에서 빙그레 웃음이 미간에 번졌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해 참으로 열심히 살면서 저축해 산업화 시대의 주역으로 살았지요.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을 수료한 뒤에 결혼을 하고 서울의 수유리 어느 개인 주택 문간방에서 전세 20만원으로 시작했지요.

그런데 세를 든 1년 반만에 자기 아들 결혼시킨다며 이사를 가라고 했습니다. 다시 전세 살기는 싫고 돈은 없기 때문에 그 당시 신 개발지로 주거 환경이 열악한 서울 강남의 도곡동에 13평짜리 아파트를 은행 융자, 친구에게 빌린 돈, 결혼 후 1년 반동안 저축했던 돈을 합쳐 구입해 살다가, 두 해 뒤에 다시 대치동 아파트(지금 그 유명한 동네)를 구입해 이사해서 살다가 마산으로 이사와서 여태까지 살고 있답니다. 그 당시 살던 대치동 25평 아파트는 지금 재건축되어 몇 십억 간다는데....... 오호통재라!!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이 더위에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대신 많이 사랑해 줄게.” 우리는 줄 것이 없어 정말 사랑만 받았다.
아, 참 멋진 시 한 귀절입니다.
어쩜 그리 인생을 시처럼 살아가실 수 있었나요?
법정 스님이 "아름다운 마무리" 책에서 '삶은 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례사를 하셨는데, 법정 스님이 윤선생님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