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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제자 Y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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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073회 작성일 20-08-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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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Y 이야기

 

여름 휴가차 마산에 들렸던 Y부부와 우리 내외가 점심을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인접한 고성으로 떠났다. Y는 내가 재직했던 학과의 첫 입학생으로서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으며 올해 이순(耳順)으로 두 손주의 할머니이기도 하다. 재학 시절 나보다는 아내와 더 돈독했던 까닭에 지금도 아내와의 사이가 각별하다. 현재 수원에 거주하는데 한동안 연락이 두절 되었다가 지난 해 극적으로 다시 연락이 닿아 친정인 마산에 내려올 때면 어김없이 부부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녀는 아내와 그리고 남편인 심박사는 나와 각각 12살 차이인 띠 동갑이다. 제자인 그녀가 나를 방문하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울 게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그렇지 않음에도 기꺼이 동행하는 마음 씀씀이와 도량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80년 봄에 경남대학교로 일터가 정해졌다. 원래 신설된 전자계산학과(현 컴퓨터공학부) 소속으로 전자계산소를 책임 맡는 조건으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그해 공학계열을 뭉뚱그려 대단위로 510명을 모집해 이듬해(1981)2학년 초부터 전공 학과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사실상 발령을 받던 첫해는 소속 학과와 학생이 없는 상태라서 꼬박 한 해 동안 전자공학과 소속으로 지냈다.

 

전자공학과에 적을 두고 802학기말 무렵에 학생들이 희망하는 학과를 신청 받아 확정했다. 그 때 유일무이한 여학생을 제외하면 모두가 남자였기 때문에 그녀는 홍일점(紅一點)이었는데 우리 학과를 신청했다. 게다가 1학년 성적이 공학계열 전체 수석이었다. 강력히 천거하여 지급액이 가장 많은 5.16 장학금 수혜를 받기 시작해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거센 남학생들 틈에 끼어 졸업 시까지 전공에 전념해 성적이 뛰어났다. 그래서 은근히 대학원 진학을 기대했다. 대학 성적은 물론이고 미모까지 두루 갖춘 재원으로 널리 소문났던 때문이었든가. 졸업 후 곧바로 매파의 강력한 꼬드김(?)에 넘어가 결혼의 길을 택했다. 그런 빼어난 재원을 잽싸게 채간 총각이 물리학을 전공한 심박사로 현재의 남편이다.

 

재학시절 그녀는 우리 집에서 도보로 4~5분 거리의 주택에 살았다. 가까운 때문이었던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다. 서울에서 마산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통하는 이웃도 없을 뿐 아니라 마산 지역엔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타던 아내와 찰떡궁합이었다. 그녀는 아내보다 12살 어리다. 그러므로 아내와는 맏언니와 막내 사이 같았다. 게다가 우리 집의 두 아들이 유치원과 어린이 집을 다녔는데 그녀를 고모라고 부르며 따랐다. 하여튼 그녀는 분명 나의 제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나 두 어린 아들과 훨씬 가까웠다. 그런 때문일 게다. 최근에 그녀의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할 경우 나보다는 아내와 스스럼없다. 지난 정월 무렵이었다. 그녀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꽤 오래된 옛날 풍의 스카프를 매고 나타났다. 그 스카프를 꺼내 보이며 자기 대학 졸업 기념으로 아내가 선물해준 것이라며 평소에는 깨끗이 세탁해 장롱 깊은 곳에 고이 모셔 두는 특별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올해 65세인 심박사는 내 막내 여동생과 같은 나이로 성격이 무던하고 듬직하다. 대학과 연구소를 거쳐 현재는 기업을 운영하는 데 이지적인 학자풍이 맘에 든다. 나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다만 자기 아내의 대학시절 은사일 뿐인데 자기 아내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면 동행한다. 어쩌면 그런 과정이 불편할 터임에도 전혀 티를 내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바로 오늘의 일이었다. 찻집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아오고 빈 커피 잔을 반납하는 헤드레일 같은 심부름에도 군소리 없이 척척해냈다. 나의 경우 아내의 대학 은사 댁의 방문은 고사하고, 자기의 절친한 친구 집에 동행하자는 제안도 질색하며 손사래를 치면서 꽁무니를 뺄 궁리하기 바쁜 까칠한 성격인데 말이다.

 

그녀가 우리 집 살림살이 형편을 시시콜콜 꿰뚫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우리 집 집사라도 되는 양 철따라 이런저런 지역 특산품 따위를 연이어 보내온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통화를 주고받는데 대부분의 경우 나는 옆에 한 발 물러 서서 물끄러미 지켜볼 따름이다. 그러다가 지나치게 자주 보내오는 선물을 넙죽넙죽 받아먹기 민망하여 사현이 엄마! 우리 집 살림살이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집 살림이나 잘해!”라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E-Mail)을 보낸 것으로 고마움을 에둘러 전한다. 최근 보내온 특산품 중에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이다. 감자(강원도), 레드 키위(제주도), (제주도), 문어(주문진), 단호박(해남), 배추김치(수원), 총각무 김치(수원), 커피와 김(유명 쇼핑몰), 치킨 타올 등등이다. 여기서 김치를 보낼 때의 정성이다. 내가 멸치젓을 넣은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배추김치나 총각무 김치를 보낼 때 새우젓만 넣고 담은 김치라는 사실까지 메모해 보내는 자상함에 할 말을 잃게 했다.

 

그녀 부부는 지금 휴가 중이란다. 그저께부터 어제 오전까지는 남편의 대학 동창 4명의 내외가 강릉에서 골프를 치고 어제 밤늦게 마산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오늘 우리 내외를 찾아온 것이다. 정오 조금 전에 만나 이르지만 생선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곧바로 마산 시가와 항만을 한 눈에 조망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찻집을 찾았다. 거기서 커피를 마시며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 손아래 시누이가 사는 마산과 이웃에 자리한 고성으로 떠났다. 거기에서 하룻밤 머물고 내일(86) 산청의 조그만 암자 하나를 둘러보고 귀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직은 젊은 때문에 그런지 대단히 버거운 일정을 소화해 내는 휴가가 부럽기도 했다. 부부가 승용차를 번갈아 운전하며 수원, 강릉, 마산, 고성, 산청의 암자를 거쳐서 다시 수원의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 먼 여정에 몸살을 하지 않을까 오지랖 넓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창설교수로 몸담았던 대학의 첫 졸업생 중의 하나로 홍일점이었다. 그 무렵 내 나이 30대 중반이고 그의 동기생들이 막 20대 문턱을 들어설 시절이었기 때문에 풋풋하고 싱그러운 젊음이 풀풀 넘쳐났었다. 그런데 어느 결에 나는 일터에서 물러난 백두옹의 모습을 한 채 고희(古稀)의 중반을 넘어섰다. 그런가 하면 그녀 또한 올해 이순(耳順)에 접어들었을 뿐 아리라 두 손주의 할머니다. 새삼스럽게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헤아려보다가 공연히 쓸쓸해졌다. 가는 세월의 흔적은 지우거나 도외시하는 게 불가능한가 보다. 그들 부부가 만날 때마다 좀 마르신 것 같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내 체중은 늘 변함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보다 조금 늙어 보인다!”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좋으라고 에둘러 표현한 체면치레 인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보기엔 그 부부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흔적이 언뜻언뜻 어른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별나게 내게서 황혼의 고개를 넘고 있는 고단한 자국이 훈장처럼 선명하게 각인된 모양이다. 이런 현실을 대범한 척 수굿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이 들어가는 값을 제대로 하는 걸까.

 

202086일 수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잘 게시는지요? 참 훈훈한 이야기네요. 얼굴 아는 이는  천하에 가득해도 마음 아는 이는 드물다고 채근담엔가 있지요?
그  선생님의 그 제자입니다. 참 고맙고 반듯한 분이군요.
늘 건강 잘 챙기시고 40년이나 된 그 정 끝까지 이어가시길 바랄게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그런 제자를 두신 선생님, 잘 살아오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