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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팬데믹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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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1,028회 작성일 20-08-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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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윤복순

 

며칠 전부터 딸에게 방학하면 애들 데리고 집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다. 설날 이후 하루도 온 적이 없고 만나서 가까운 곳에 소풍을 간 적도 없다. 애들은 외갓집에 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놈의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진다.

딸이 직장을 다니면서 다섯 아이를 키우니 시간에 쪼들리고 지쳐있다. 3~4월 온라인 수업준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손자들도 처음해 보는 수업에 적응하느라, 엄마 아빠 없이 저희들끼리만 집에 있느라 마음고생이 컸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애들이 나가 놀지도 못하니 좀이 쑤신다. 여행 하번 못한 나도 한계점에 이르는 것 같다.

딸이 다음 토요일에 온다고 했다. 사람 많은 데는 위험하니 그냥 차만 타고 왔다 갔다 하자고 했다. 차 안에서 손자 손녀들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딸 사위의 직장생활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것도 사는 재미다. 오죽 바깥바람을 쐬고 싶으면 차속여행 생각을 했을까.

월요일 감염자가 세 자리 수로 늘어났다. 광복절 연휴 끝이라 그런가. 모처럼 손주들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허탕될까봐 불안하다. 그래도 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랬다.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서울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이다. 익산에서도 광화문 집회에 버스가 세 대나 갔다는 얘기가 나돌더니 바로 확진자가 나왔다. 한숨이 나오고 다리가 풀린다.

수요일 익산수필 모임을 취소했다. 무슨 글을 써가지고 갈까 회원들은 어떤 글을 써올까 기대와 기다림이 있었는데 가슴에 구멍이 나며 아쉬움만 남았다. 유치원생부터 줄줄이 학생인데 딸에게도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예쁜 손녀들이 우루루 달려들며 할머니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 하는 모습이 환청처럼 들릴 뿐이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말을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가 없어진다. 기운이 빠지고 답답하다.

아침 운동을 나가 혼자 걷다 체조하고 돌아온다. 밥 먹고 씻고 약국에 나와 신문 보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신문에 나온 영어 한 꼭지 공부하고 요즘은 법화경을 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쓰고 있다. 시간 보내는 방법이다. 똑같은 일상이 몇 달째이니 도통했을 법한데 무기력함을 느낀다.

아침밥을 먹으며 TV에서 어느 스님이 연잎 모자를 쓰고 걷기명상 하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발뒤꿈치부터 땅에 대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라고한다.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걷기는 명상이 아니라 운동이다. 운동으로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지면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고 건전해지니 운동이 곧 명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걸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같이 걸으라고 한다. 세상에 평화와 평정의 발자국을 찍듯 걸으란다. 발이 땅에 입맞춤하듯 걸으라고 한다. 땅에 많은 해로움을 끼쳤으니 지금은 땅을 잘 돌봐야 할 시간이다. 땅의 표면에 평화와 고요를 가져와서 사랑의 교훈을 나눠야 한다고 한다. 나는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감사하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내 발걸음이 세상의 평화와 평정이 되길 기원하면서 걸은 적은 없다. 지금 부터라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걸어야겠다.

아침운동을 걷기명상으로만 바꿔도 코로나19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기분으로 근무한다면 훨씬 하루가 활기차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칠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말이 당연히 줄어든다. 말이 많으면 비례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말로 죄를 짓는다고 하는데 죄짓는 일이 줄어 좋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딸의 전화다. 힘이 빠진 목소리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의 실력 격차가 많이 난다고 한다. 50~60%만 알아듣는 눈치다. 집에서 부모나 개인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챙겨주는 학생은 100% 이해를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 집 아이는 혼자 있으니 해찰하고 재미도 없고 이해가 떨어진다. 이렇게 가정 여건에 따라 아이들의 실력 차이가 벌어진다.

딸이 방학동안 세 아이들 수업인지도 체크를 해보니 이해 못하는 축에 들어간다고 한다. 아들을 데리고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가르치는데 속이 터진단다. 사람은 누구나 제 자식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높다.

아들이 어렸을 때다. 어떤 엄마가 자기 아들이 겨우 10등 안에 들어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그 정도면 잘 한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때 아들이 왜 저희들한테는 1등 하라고 하면서 그 아줌마네 아들은 10등 해도 잘 한다고 하냐고 물어서 난감했었다. 중간만 가면 건강하면 못된 짓 안하고 사고만 안치면 아주 잘 자라고 대단한 거라고 딸을 다독여 주었다.

엄마, 아들 공부 가르치다 혈압 올라 내가 죽는 게 낫겠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겠어?” 너는 죽으면 절대 안 되지. 공부 좀 못하면 어때? 어떻게는 길은 있게 마련이니 건강하게만 키우라고 했다. 2 아들이 제 양에 안차는지 애를 태운다. “일찌감치 포크레인 한 대 사줄까?” “만년 직장이네.”

한 대에 2억 원 하는데 문제는 다섯 대를 사야한다는 거란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쌍둥이들 까지 걱정할 게 뭐라고. 딸이 애들 다섯 매끼 밥 차려주고, 아무 데도 못 나가고 좁은 집에서 하루 종일 부대끼다 보니 예민해진 것 같다.

이런 때 딸네 식구들을 내려오라고 해서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어 놓은 숲길에서 딸 사위 손자 손녀 남편, 3대가 죽 한 줄로 서서 걷기명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뾰족해진 감정을 많이 두리뭉실하게 해줄 텐데. 이놈의 코로나19는 언제쯤이나 부모자식 간에 만날 수 있게 해줄지...

 

2020.8.24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손주가 온라인 원격수업을 듣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큰 일 났다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느 부모가 교과목별로 하나하나 챙겨가며  다시 복습을 시킬 수 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 아이들이 원격수업 개 머루 먹듯이 하고 나면 끝이기 때문에 성취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싶습니다. 요즘 방학인 녀석의 하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오늘은 새벽 4시에 잠을 깨워 등산을 했습니다. 공부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체력 단련이라도 하라고... 플래쉬를 켜고 정상에 도착해 쉬다가 다시 플래쉬를 켜고 내려오며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 이었답니다. 코로나19의 스트레스가 이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팽대하는 모양새인데 물러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큰 일 입니다.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따님께서 대단한, 요즘 보기 드문 애국자시네요. 자녀가 다섯씩이나 있다니! 충격적이네요! 존경스럽네요.
물론 다섯 아이 키우려면 고생은 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