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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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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1,070회 작성일 20-10-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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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여행

윤복순

 

오랜만에 딸네 식구들과 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대천의 북쪽인 오천이다. 가깝고 천주교성지 등 볼거리도 많고 항구라서 해산물도 살 겸해서 나섰다. 무엇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할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다 모처럼 소풍을 가니 기분이 들떴다. 손자손녀들은 바다를 좋아한다. 산에 가는 것을 특히 등산이나 오래 걷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산도 바다도 좋지만 익산을 벗어난 지가 하도 오래여서 확 트인 바다를 보고 싶었다. 명절 연휴라 도로도 사람도 걱정이었는데 뉴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귀향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한가하게 창밖 구경도 하고 손자들 조잘거리는 얘기도 듣고 생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출발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판엔 나락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자연의 색깔은 가을을 연출해 각지거나 모나지 않아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다.

첫 번째는 갈매못성지다. 경관이 아름답다. 이런 곳에서 외국인 신부와 한국 신자 등 다섯 명이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블뤼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돼 있는 기념관과 야외 예배당 수도원 등이 있다. 기념관의 작은 교회에서 한 관람객이 기도하고 있다. 수도원에 오르니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잠시 동안이지만 모든 근심걱정이 다 사라진 것 같은 평온함을 얻었다.

이 곳을 처형장으로 택한 것은 명성왕후의 국혼이 예정된 시기로 오천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탈이 없을 거라는 무당의 예언이었다.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가 침략을 시도한 서해의 외연도가 아스라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영향력이 있던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 전국의 죄인들이 이곳으로 와 처형당했다는 의견도 있다.

전래적으로 이곳 갈마진두는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누구도 그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해왔던 곳이다. 길을 내지 않아 오천항에서 배를 타고 다녀야만 했다. 바닷가에 순교한 다섯 명의 머리를 매달았던 날 하늘에 은빛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순교 터로 확인된 뒤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순교터 복자비 경당등이 완공되었다. 현재는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편리한 시간에 미사봉헌을 예약할 수 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을 성지로 만드십시오. 제가 성지순례를 여러분 댁으로 가겠습니다.”라는 신부님의 설교는 순례자를 감동시켰다고 한다. 순교한 우리나라 신도 두 명은 많은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했으며 다른 신도들은 죽음을 면했다고 한다.

앞의 바닷가로 내려갔다. 몽돌해변이다. 성지에서 조용했던 아이들이 제 세상을 만났다. 조그만 게와 조개를 잡으며 신이 났다. 나는 몽돌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맑고 청아해 한참을 앉아서 들었다. 딸이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차 안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사갈사갈사갈사갈 따글따글따글따글 어떤 악기의 소리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마음을 순화시키는 소리다.

어느 해 노르웨이 해변에서 밤 모양의 돌을 주웠다. 그 뒤로 거제의 학동해수욕장에서, 청산도 서편제길 해변에서 색깔이 다른 밤 돌을 주웠다. 몽돌해변에 오면 나도 모르게 돌 모양에 집중하는 버릇이 생겼다. 애들은 해변에서 나오면서 게도 조개도 다 물속에 넣어줬는데 나만 밤 돌 같지도 않은 것을 집에 까지 가지고 왔다. 애들만도 못하다.

충청수영으로 가는 길에 열 체크가 있었다. 조그만 면 소재지에서 주민들이 철저하게 방역을 한다는 게 충격이었고 감사했다. 성 주변에 주차할 곳이 없다. 이렇게 유명한 곳이었나, 나는 처음인데. 전국의 차가 이곳에 다 온 것 같다. 열 체크를 한 이유를 알겠다.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다.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다른 수영성에 비해 지형과 함께 경관이 잘 보존된 편이다. 내탁식 성벽으로 밖은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운 형식이다.

성에 올랐다. 이곳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찍은 곳이란다. 드라마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경치는 눈이 번쩍 뜨인다. 전국의 차가 다 올만 하다.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다산 정약용과 백사 이항복은 이곳 영보전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했다.

성이 아담하여 걷기로 했다. 걷는 사람이 없어 여유롭다. 차에 비해 사람이 없어 궁금했는데 오천항의 주꾸미 낚시가 유명하단다. 낚시배가 200척이 넘는다고 자랑이다. 차는 충청수영을 구경하러 온 사람 것이 아니라 낚시 온 사람들 것이다. 덕분에 성 한 바퀴 잘 걸었다.

여느 때 같으면 오천항의 식당에 들어갔겠지만 식당도 해산물 가게도 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구경하는데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다. 그러나 밥을 먹으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 위험하다. 차보고 놀란 가슴 해산물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겁이 났다.

해양경관전망대를 가기 위해 도미부인사당에 들렀다. 도미부인은 워낙 빼어난 미모여서 백제 개루왕의 부름을 받았는데 몸종을 변장 시켜 대신 보내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전망대는 사당에서 임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둘레길이라서 걷기 좋은데 손자들이 싫단다. 시간도 꽤 지났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집에 오는 길에 서천 수산시장에 들렀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모두 마스크는 착용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애들은 차 속에 있으라고 하고 어른들만 갔다.

전어 새우 꽃게 바지락 등등을 샀다. 전어는 회로 떠가지고 왔다. 과일과 송편으로 점심을 때웠기에 아이들이 잘 먹을 줄 알았다. 전어는 가시 때문에, 새우는 쪘는데 껍질 벗기기 불편해서 못 먹겠다고 한다. 손자들이 정말 회를 좋아하는데... 제철이라 전어와 새우를 샀는데 내 생각만 한 것 같다. 평소에 얼마나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살았으면 애들 생각을 못 했을까. 아직도 멀었다고 반성한다.

바지락과 꽃게를 넣은 라면은 12첩 반상보다 더 맛있는 저녁이 되었다. 사위가 운전하느라 술 한 잔 못하는데 안주가 좋으니 한 잔 하고 하루 밤 더 자고 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천여행 보다 그 날 먹은 꽃게라면이 더 오래 기억 될 것 같다.

콧바람 조금 쐬고 왔다고 명절을 보냈는데도 피곤함이 없다. 가을 들판과 갈매못성지와 오천항과 충청수영성이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린다.

 

2020.10.3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명절에 역사적인 의미가 서린 지역을 어린 손주들을 대동하고 나선 아름다운 여행 정말 즐거우셨겠습니다. 저는 추석날 차례를 모시고 곧바로 등산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행에 나선 것을 보고 내심 놀랐었습니다. 선생님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 그려보며 즐거운 여행 동참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