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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연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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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27회 작성일 20-10-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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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교육

윤복순

 

매년 받던 약사연수교육을 온라인으로 받으라는 대한약사회 공문을 받았다. 마스크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라서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코로나19가 연수교육마저 바꿔놓았다. 생전 처음인 것이 또 하나 늘어났다.

연수교육 받는 날은 재미있었다. 나는 차가 없어 후배 차를 타고 간다. 보통 4~5명이 같이 타고 가는데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마치 소풍을 가는 분위기다. 평상시 자주 못 만나니 그간 쌓였던 얘기들이 끝이 없다. 얼마나 웃고 재미있게 가는지 연수교육 1년에 두 번 하자고 하라고 후배한테 말하기도 했다. 후배는 약사회 간부다. 그녀들은 동기로 학창시절 얘기부터 무궁무진하다.

나 때는 여학생이 몇 안 되었다. 동창회도 하지 않는다. 남자동창 몇 명이 익산에서 개업을 했는데 한 명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셋은 요양병원 약사가 되었다. 후배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같이 갈 사람도 없다.

언니 몇 살까지 약국 할 거야?” 하고 묻는다. 나 하는 것 봐서 저희들도 퇴직을 준비하겠단다. 그들은 나와 근 10살 차이가 난다. 실은 나보고 이제 그만 하란 얘기 같은데 눈치 채지 못한 척 마냥 그들과 같은 나이대로 착각을 한다.

익산에서 전주까지 1시간 동안 차가 들썩거릴 정도로 웃어 막상 강의실에 들어가면 기운이 빠진다. 좌석은 이름순으로 정해지는데 내 좌석에 앉으면 앞뒤좌우로 다 젊은 약사들이이고 안면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겨우 1교시 강의를 듣고 나면 졸리기 시작한다. 나이 먹은 태를 내지 않아야겠는데 속이 없는 눈 커플은 바위덩이라도 달아놓은 듯 자꾸만 내려앉는다.

교육 받으러 왔으니 한 가지라도 배워가자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떠보지만 몇 분 못가 또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만다. 차안에서 그리도 잘 떠들던 내가 맞나 싶다. 이렇게 내 실력은 나이를 먹으면서 쪼그라들어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바닥이 나고 매년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 하는데 연수시간에는 졸기만 하니 빈 깡통이 되어간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았을까. 전북약사회 연수교육을 사이버로 받으라고 연락이오고, 어떻게 찾아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대한약사회 연수교육을 이수한 자만 받을 수 있다.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한약사회 공문을 찾아 사이버연수원 홈페이지 주소를 치고 강의 신청을 해 보았다. 아무리 컴맹이라도 한글은 읽을 줄 아니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무엇보다 현역 개업약사들 중엔 나보다 훨씬 선배들이 많으니 나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의신청을 하려니 본인확인을 하라고 한다. 휴대폰과 email 방법이 있다. 휴대폰이 없어 메일로 들어갔다. 대한약사회 password와 비밀번호를 넣었더니 일치하지 않는다고 띠롱 한다. 이런 경보음에 미리 반절은 기가 죽는다. 분명히 수첩에 적어놓은 것과 같은데 일치하지 않는다니 답이 없다. 남편 휴대폰 번호를 입력했다. 내 명의로 되어 있지 않지만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휴대폰번호를 적어야 할 자리엔 남편 번호를 적어 놓는다. 본인 확인인데 될 리가 없다.

제약회사 직원이 내일 오겠단다. 학생들이 약을 사러 오면 해 달라고 할까. 강좌가 네 과목이니 네 시간이면 되니까 밤늦게 까지 받으면 될 것 같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메일로 해도 최종적으론 휴대번호를 넣게 되어 있다. 낙심하고 있는데 직원이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다른 페이지를 만들고 패스워드와 비밀번호를 내 약사면허 번호로 하면 된단다. 바보, 나는 왜 전화할 줄도 몰랐을까. 공문에 전화번호 메일 다 나와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컴퓨터를 잘 못하니까 미리 주눅이 든다. 나이 먹었다는 핑계로 남에게 의지하려고만 한다. 무엇이 두렵고 부끄러울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고 제약회사 직원 보기도 면이 서지 않는다.

사이버연수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올려놓고 강의 받을 네 과목을 선택해서 나의 강의로 묶어 주었다. 최고로 쉽게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주고 갔다.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도 기운이 다 빠져서 그 날은 듣지 않고 쉬었다.

다음날 직원이 적어주고 간 순서대로 나의 강의를 찾아 첫 과목을 클릭했다. 한 시간 강의인데 약 사러 오면 중지하고 혼자 있을 때 다시 듣곤 했다. 중간에 시험도 있다. 시험문제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강의를 대충 들어서 찍어 보았다. 정답이 아니라고 다시 하란다. 답을 맞힐 때까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중간 중간 테스트는 한 문제이니 틀리면 객관식이니 다른 번호를 넣어보지만 한 과목을 다 끝내면 다섯 문제가 나온다. 두 개 맞고 세 개 틀렸다. 내가 이렇게 실력 없는 줄 몰랐다. 학교 다닐 때는 꽤 상위권이었는데.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들을 수도 없고. 충격 받아서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는지 모른다. 겨우 정신을 차려 문제를 몇 번씩 읽으며 다시 시험을 봤다. 다섯 문제 중 한 문제라도 틀리면 이수되지 않는다.

한 과목 끝내는데 네 시간이 걸렸다. 기진맥진이다. 아무리 약국 일을 보면서 들었기로서니. 이놈의 코로나19, 연수교육을 받으러 가면 졸든 어쩌든 출석체크만 되면 시험은 보지 않았다. 그뿐이랴. 오며가며 차안에서 얼마나 웃고 즐거운데. 후배들 덕분에 기분도 업 되고 충전도 되었다. 동료들도 못 만나고 시험까지 보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피해자가 더 된 것 같다.

완전 방전되어 다음날은 강의도 듣지 못했다. 그 다음날 수험생같이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목소리를 더 키우고 시험에 나올만한 것들을 메모하며, 차분하고 꼼꼼하게 들었다. 중간테스트도 종합테스트도 다 맞추어 쉽게 한 과목을 끝냈다.

분위기가 좋아 여세를 몰아 셋째강좌도 들었다. 순탄하게 넘겼다. 마지막 강의도 연수교육을 다 마칠 생각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한 과목 받는데 네 시간 걸렸는데 세 과목을 거의 같은 시간에 마쳤다. 전북약사회 연수도 받았다. 대한약사회에 비해 쉽다. 아니 어느새 내가 사이버연수에 적응이 되었나 보다. 다섯 과목을 한 번에 다 받았다. 파이팅이다.

그런데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의실에서 받을 때도 오늘 강의 참 좋다 하며 들었어도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머릿속이 하얗다. 언제부턴가 내 머리는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오프라인으로 받으면 후배들과의 얘기에, 온라인으론 컴퓨터 작동까지에 힘을 다 뺀다. 주객이 전도된 이런 연수교육 수강과 교육 내용이 단 한 시간도 머물지 않고 바로 빠져나가는 내 머리 때문에 나는 점점 실력 없는 약사가 되어간다. 후배들이 언니 언제까지 약국 할 거야?” 묻는 말에 진지해 질 때가 된 것 같다.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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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지난 세기에 태어나 금세기로 이민 온 디지털 이주민인 나이든 세대가 비대면의 언택트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의 단면일까요. 대면사회가 인간적이고 정겹다고 느끼는 현실인데, 세상은 언택트 비대면의 메카니즘으로 변하면서 온라인 교육, 온라인 상담, 온라인 뱅킹 등등으로 치닫기 때문에 익숙치 않은 디지털 기기인 컴퓨터 등과 밀당이 마뜩치 않아 갈등을 겪는 상상을 해 봅니다. 내 맘과 달리 세상은 무섭게 변해 가는 게 세태의 단면이니 어쩌겠습니까. 언짢고 맘에 들지 않아도 하나 하나 조금씩 익혀가며 순치되어 가야 할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을.... 디지털 이주민의 비애를 다시 곱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