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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퇴고를 되새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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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0-11-0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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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를 되새겨 봄

 

어느 모로 뜯어봐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글쓰기가 가능할까. 대학에서 서른 해를 넘겨 머물면서 전공서적을 30권 남짓 집필했었다. 그리고 일터에서 물러날 무렵부터 펴내기 시작한 수필집이 이제까지 15권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서 집필한 책이 50권 안팎에 이른다. 그런데 그들 모두에는 하나같이 많은 요인의 오류나 모순 따위가 씨줄과 날줄로 뒤엉켜 있어 다시 들여다보려면 낯이 뜨겁고 더럭 겁부터 나기 때문에 아예 외면한 채 지낸다. 어디에서 연유한 참담한 현상일까. 어떤 집필일지라도 과부족 없이 옹골찬 진솔함을 가득 쓸어 담은 옥동자를 꿈꿨었다. 하지만 천성이 칠칠치 못한데다가 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으로도 신실하지 못해 엄벙덤벙 시늉만 낸 채 얼렁뚱땅 얼버무리려는 버릇이 빚어낸 참사가 그런 화를 자초했으리라.

 

누구나 글을 쓰면서 글을 다듬어 고치는퇴고(推敲)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는 사색의 힘을 단련시키고, 글 쓰는 집중력을 높이며, 문장력 수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겨냥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로 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첨가(添加), 둘째로 주제와 다르거나 중심 소재와 불일치하는 소재나 군더더기 같은 수식어를 없애는 삭제(削除), 셋째로 문장을 이동시켜 내용과 내용, 문장과 문장, 내용과 문장 사이의 상관성을 제고시키는 이동(移動), 넷째로 전달효과를 높이기 위해 더더욱 적절한 어휘나 포현으로 바꾸는 대체(代替), 다섯째로 퇴고와 퇴고 사이에 충분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뜸을 들였다가 수정해야 효과적이라는 휴지(休止), 여섯째로 매 번 퇴고 할 때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고 특정한 한 가지 종류만 선택해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효과적이라는 일회일사(一回一事) 원칙 등으로 갈래지을 수 있다.

 

퇴고에 대해 혹자는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다는 의미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주장한다. 과연 무진장 반복하는 게 능사일까. 보편적으로 퇴고는 대충 단락의 균형, 상투어 사용빈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오류, 단어의 오자나 탈자, 어휘나 문장의 모순 따위를 살피며 따져 수정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 어느 것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퇴고가 시작되고 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류의 발견 실태를 그래프로 그리면 가파른 증가세(增加勢)를 보이다가 일정한 정점(頂點)에 도달하면 거의 제자리를 맴돌 게 마련이다. 이 정점에 다다르면 릴리즈 타임(release time : 放出時間)*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릴리즈 타임 이후에는 아무리 시간을 추가해도 오류의 발견이 늘어나지 않아 자칫하면 중국의 고사에서 나오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현상이 나타날 위험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 도달하면 과감하게 퇴고를 종료하는 게 테스트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무진장 퇴고를 반복함은 실익이 없기 때문에 애꿎게 애먼 삽질만 자꾸 해대는 모양새이다.

 

컴퓨터용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 포함되었을 개연성이 있는 에러(error)를 걸러내기 위한 테스트(test) 과정은 글의 퇴고 과정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만하다. 이 테스트 과정에서는 사내 테스트인 알파 테스트(α test) 과정과 사외 테스트인 베타 테스트(β test)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먼저 알파 테스트란 해당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팀에서 여러 가지 테스를 해서 에러를 제거하여 1차 시제품(prototype)인 알파 버전(α version)을 만드는 과정이. 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작품을 검토하면서 퇴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베타 테스트는 알파 버전을 사용자(user) 중에서 원하는 그룹을 모집하여 시험적으로 사용해 보면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정해 나가며 2차 시제품인 베타 버전(β version)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는 제약회사에서 당뇨나 고혈압에 대한 신약을 개발해 임상시험에 자발적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투약하면서 약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기 글을 읽게 한 뒤에 느낌이나 평을 겸허히 수용하는 퇴고 과정을 거쳐 완전한 글을 지향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베타 테스트를 원래 취지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 대안이다. 배우자나 가족에게 글을 감상토록 한 뒤에 내려지는 냉정한 평이나 지적 사항을 겸허히 받아들여 보다 완전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기법의 도입이다. 이 원리는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 알파 버전의 시제품을 거쳐 베타 버전의 시제품으로 발전시킨 뒤에 정식 버전(formal version)으로 완제품이 다듬어져 시장에 출시(방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얘기이다. 그림에 입문하는 초보자는 줄 창 남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 그리는 임모(臨模)단계를 거쳐서, 남의 그림에다가 자기 생각을 보태서 그리는 방작(倣作)단계를 지나 오랜 세월 시나브로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기의 고유한 가치관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화풍(畫風)단계에 올라 화가의 반열에 우뚝 선다는 얘기이다. 어찌 생각하면 마음을 문자로 나타내는 글쓰기는 참으로 쉬울 법해도 맹랑한 구석이 숱하다.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있게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글을 쓸까? 우선 글을 쓰면 필자 자신이 그를 통해 무언가를 느껴 만족하거나 힐링(healing) 될 수 있다면 일단 글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다음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읽으며 공감하지 못할 경우 실패한 글로서 세상에 선보일지라도 철저히 외면당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주위 지인들에게서 공감을 얻었을 때 비로소 정글같이 험한 세상에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이 밀 여지가 있지 싶다.

 

이런 맥락에서 무인(武人)들이 수련하는 정신 자세는 본받을만하다. 그들의 수행 과정에서 흔히 단련(鍛鍊)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들의 귀띔에 따르면 단()같은 자세를 천 번 반복해서 연습한다는 뜻이고. ()같은 동작을 만 번 되풀이 하여 연습하는 뜻이란다. 이는 검술의 한 동작이나 태권도의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나까지도 천 번 혹은 만 번 연습을 통한 수련 결과임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단순한 작업처럼 보여도 그를 올곧게 나타내 누군가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하려면 지난한 창작의 고통과 치열한 퇴고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산고(産苦)의 진통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서 달궈진 쇳덩이를 수없이 메질하는 단조(鍛造) 과정과 찬물에 넣었다가 건져내는 담금질 과정이 반복되지 않으면 쓸 만 한 강철의 연장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연유에서 글을 쓰면서 퇴고는 쓸데없이 신경 써야하는 덤거리 같은 가욋일이 아님을 깨닫고 어물쩍 넘기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자세야 말로 마무리를 시작할 때처럼 신중하게 하면 매사에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신종여시 즉무패사(愼終如始 則無敗事)”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철학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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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즈 타임(release time : 放出時間) : 원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 일단 개발된 제품에 포함되었을 버그(bug)를 찾아내려고 디버깅(debugging)을 시작했을 때 상태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에러 발견 상황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다가 일정한 정점(頂點)에 이르면 증가세가 정지된 채 수평 상태가 지속된다. 이 시점에 이르면 디버깅을 계속해도 추가적인 버그가 거의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중단하고 방출해야 할 시점이라는 관점에서 릴리즈 타임이라고 한다. 또한 볼링을 할 때 출발점에서 볼링공 구멍에 손가락을 끼고 앞으로 내닫다가 그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야 할 가장 적정한 순간 다시 말하면 쥐고 있던 공을 손에서 놓는 최적의 시점을 릴리즈 타임이라고 한다.

 

시와늪 , 2020년 가을호(49), 20201022

(202061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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