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ROTC 반지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ROTC 반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1,214회 작성일 21-04-24 17:45

본문

ROTC 반지

윤복순

 

공주 성()이 놀러왔다. 성은 멋쟁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핸드백이며 반지 목걸이 귀고리 다 맞춰서 입고 신는다. 성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공주라고 부른다. 약국에 약 사러 온 손님으로 만나 20여년이 지났다. 그녀가 나를 동생아, 동생아 부르듯 나 또한 그녀를 성 성 하고 부른다.

성은 내가 선머슴같이 하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여자는 가끔씩 멋도 낼 줄 알아야 한다며 당신 옷이며 가방을 준다. 비싼 것을 받아도 될까 망설였는데 잘 받는 것도 복 짓는다고 해서 고맙게 받는다. 그녀는 줘서 행복하고 나는 받아서 행복하다.

너 주려고 가져왔으니 한 번 껴보란다. ‘나 반지 끼는 것 안 좋아하는데.’ 내 몸 중에 그나마 봐줄만한 곳이 있다면 손이다. 몸에 비해 작고 손가락이 쪽 빨았다. 약지에 끼워준다. 딱 맞다. “너 오늘부터 이것 빼면 반절 죽여 놓는다.” 단호하다.

엉겁결에 반지를 끼게 되었다.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다. 눈에 많이 익다. 그녀가 가고 난 뒤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ROTC라 쓰여 있다. 남편 동기들 모임에서 부부가 같이 끼고 있어 결혼예물로 주고받은 것인 줄 알았었다.

대학 다닐 때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사람과 짝을 이뤄 40년 넘게 살고 있다. 그 남자가 ROTC생 이었는데 반지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가 끼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가 임관을 앞두고 여행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군대 가면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아 기꺼이 동행했다. 일주일 동안 무주, 해인사가야산, 대구, 대전계룡산, 공주 등을 구경했다. 그때 그가 돈을 다 썼던 것 같다. 여행 후에야 임관 반지 값으로 여행경비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도 돈이 있었다면 당장 반지 하라고 줬을 것이다. 유야무야 지나갔다.

졸업 후 같이 살고 싶어 격식 갖춰 결혼식 올려줄 때까지 기다리질 못했다. 모든 것을 생략하고 식구들만 모여 초 간단 식을 올리고 숟가락 두 개 밥그릇 두 개로 소꿉놀이 같은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없는 것 천지여서 반지는 생각도 못했다. 좋아한다면 빚이라도 내서 샀겠지만.

결혼생활 15년 쯤 흘렀을까. 시어머니께서 혼잣말처럼

나도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셨다.

절에 무슨 행사 있어요?”

아니다, 너 반지 하나 해주고 애비 용돈도 주고 싶어서 그런다.”

저 반지 있어요, 그리고 애비 봉급이 얼만데 용돈을 줘요.”

너도 나중에 봐라, 해 주고 싶지.”

시어머니도 며느리 보면서 금가락지 하나 못해줘서 항상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남편이 군대생활 30여년 가까이 하고 퇴직할 때 동기들이 나에게 피앙세 반지를 만들어줬다.

장교들의 반지는 학교를 대변하는 집단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폭격기 조종사에서 시작됐다. 2차 대전 당시 그들의 귀환은 50%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위험지역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고 누가 그 임무를 맡을 것인가 물었을 때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반지로 톡톡 책상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고 그가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을 ring knocker라 부르게 되었고 반지도 그 때부터 생겼다.

반지로 두드리는 사람(ring knocker)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국가의 위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는 장교들의 우국충정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남편은 처음부터 우국충정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반지 값으로 애인하고 여행갈 생각만 한걸 보면.

시어머니는 아들이 반지 값을 타가고는 반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서운하고 괘씸했을까. 그런데도 이 불량아들을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고 사셨다.

공주 성이 나에게 준 반지는 그녀의 아들이 ROTC장교였고, 연인이나 약혼자가 없어 어머니와 짝을 이뤄 맞춘 반지일 것이다. 에메랄드가 참 아름답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명암이 다르다.

어느 해 멕시코 칸쿤에서 여자의 섬에 가면서 보았던 카리브의 물색과 비슷하다.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다 눈이 피로하면 눈을 감고 그 바다를 떠올려 보곤 하였는데 이제부터는 이 반지를 보면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예쁘고 모자지간의 정이 있는 반지를 내가 껴도 될까. 전화를 했다.

, 아들이 해준 반지를 내게 주면 어떻게 해요?”

돈으로 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의미심장한 반지니까 주지.” 그녀의 아들은 가정을 이뤄 딸을 낳고 시민권도 얻어 잘 살고 있다.

저녁때 동네아주머니가 민들레꽃에 꽃이 맺힌 냉이줄기를 여나무개 묶어 선물이라고 가지고 왔다. 소박하고 청초함이 장미보다 예쁘다. 함박웃음과 박수로 받았다. 반지자랑을 하며 축하해주려는 꽃다발 같다고 했다. 음료수병에 꽂아 책상위에 놓았다. 노란 민들레에 녹색 냉이 줄기가 에메랄드가 박힌 황금 반지, ROTC 반지와 닮았다.

성이 준 반지가 신혼여행 코스프레를 즐겼던 임관 전 여행을 소환한다. 그때 반지를 맞추고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안 돼.” 소리가 바로 나온다. 여행 내내 마음이 달뜨고 몽롱했었다. 감정이 살아있었고 사랑도 풋풋했고 같이할 미래가 아름다워 모든 것이 내 세상 같았다. 내 삶에서 강물에 비친 봄날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시간이다. 황홀했던 그날들을 꺼내준 반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반지를 뺐다. 추억을 추억상자에 보관하듯 아주머니가 준 민들레 냉이 꽃다발 같은 순수함과 반지 값으로 다녀온 여행의 달콤함을 담아 곱게 쌌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공주 성 내외가 여느 때나 다름없이 아들 며느리 손녀를 보러 미국에 갈 것이다. 그때 이 반지를 며느리에게 주라고 돌려줘야겠다.

다윗의 반지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성이 나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내가 성에게 다시 돌려주려는 마음을 담아 마음 심()자를 새기고 싶다.

무덤덤한 일상이었는데 그 여행 때처럼 신록 같은 미소가 마구마구 지어진다.

2021.4.14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저에게도 반지에 대한 아릿한 추억 하나가 있답니다. 지난 82년 여름 경부고속도로 금강유원지 제2금강교에서 고속버스가 추락하는 사고나 났지요. 그 버스에 아내와 두 아들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가족은  다치긴 해도 죽음은 면했지요(그 사고로 승객 절반 장도가 명을 달리했음), 두 아이는 1개월 남짓에 퇴원했고, 아내는 2개월 뒤에 퇴원했으며, 저는 6달 동안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했었답니다.

그런데 먼저 퇴원한 아내는 나를 간호하는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할 형편이라서 퇴원과 동시 제 병상을 4달 동안 지켰지요. 그런데 어느날  내 먹거리를 사오다 지인을 만나 중간에 쉬다가 지갑을 놓고 와 결국 지갑을 잃어버렸지요. 그 때 지갑 속의 얼마간의 돈과 아내의 대학 졸업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 때 약속했지요.

아내의 모교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통해 후배들 졸업 때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 더 만들도록 부탁해 졸업반지를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찰떡 같이 약속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켜지지 못했지요.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 찍혀버렸답니다.

하도 억울해  몇 해 전 아내 모교 담당자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했더니, 딱한 사정을 감안해 새로 만들 수 있겠다고.... 그런데 이번엔 아내가 칠십이 넘어 대학 졸업반지 뭐하러 다시 만드느냐며  거부해서 중단하고 말았답니다.

결국 아내에게 약속한 자기의 대학 졸업반지 다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은 보기 좋게 부도 수표가 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법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아내에게 하는 약속은 부도내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네요. 그런게 조금은 켕기자만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라니 당당하게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