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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일곱 개의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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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844회 작성일 21-05-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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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보석

윤복순

 

아들딸이 왔다. 두 식구가 열세 식구로 늘었다. 애들이 온다고 해서 많이 꺽정스러웠는데 막상 오니 집이 꽉 차고 사람 사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식당도 갈 수 없어 살림 못하는 나는 미리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남편 생일이 음력 5월이라서 양력으로 하면 6월 말 7월 초가 된다. 덥고 시아버지 제사가 이틀 뒤 있어 올해 처음으로 양력으로 했다. 양력으로 하니 포도밭이 문제가 된다. 곁순과 넝쿨손 따기, 나비 만들기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왜 이리 사는 일은 복잡하고 쉬운 일이 없는지.

동생이 반찬을 보내왔다. 고추조림, 머위나물, 파김무침, 깻잎볶음 등. 딸이 잡채를 해왔다. 계란찜과 조기를 구워 놓았다. 뼈다귀탕을 했다. 김치가 맛있어 모두 좋아한다.

저녁식사 후 마트에 갈사람 하니 저요, 저요 손자손녀들이 모두 따라가겠다고 했다. 서울 손자가 제 어미와 귓속말을 나누더니 가지 않겠단다. ? 웃기만 하더니 내 귀에 대고 뭐라고 하는 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뭐라고? “할아버지 생일파티 때문에

밥 먹기 전에 케이크부터 자를까? “내일 아침에 해요했는데 무슨 생일파티 때문에 못 간다는 것인지. 손자손녀들 데리고 마트 가는 길은 재미있다. 나는 대장이라도 된 듯 맨 앞에 서서 일렬로 내 뒤를 따르라고 한다. 남편이 맨 뒤에서 지켜준다. 3부터 여섯 살 까지다. 큰 놈들이 건널목을 건널 때는 손을 잡아준다.

어린 것들 넷을 두고 큰 놈들만 데리고 갔다. 제일 무거운 수박은 큰 손자가 음료수, 떠먹는 요구르트, 과자, 컵라면 등을 사서 룰루랄라 돌아왔다.

집에 들어선 순간 함성이 절로 나왔다. 거실이 파티장이다. 벽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그 위에 풍선으로 HAPPY BIRTHDAY를 만들어 달았다. 걸개엔 장미가 한 다발이고 별이 반짝인다. “저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신 노고에 보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부모님을 공경하며 효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일동.” 이라 쓰여 있다. 이것을 같이 만들려고 손자손녀를 마트에 가지 말라고 했나보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개구리 떼 합창 같다.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서로 불을 끄겠다고 야단이다. 그렇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며칠 전부터 이불 빨래하고 청소하고 반찬걱정을 했는데.

초등학생인 손녀들이 편지를 써왔다. “외할아버지께. 외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손녀 민희예요. 내일은 외할아버지 70번째 생신날!! 외할아버지의 70번 째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한 날만 있기를 바랄게요. 코로나가 없어지면 저번처럼 우리가족 다 같이 여행가요. 코로나가 사라질 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할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는 손녀 민희 올림.”

1학년짜리 쌍둥이들도 삐뚤빼뚤 편지를 써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친손자도 편지봉투를 들고 왔다. “우리 준우도 편지 썼어?” “아니, 아직 못 써. 할아버지 용돈.” 온 식구가, 손자들과만, 아들딸 사위 며느리와, 딸네식구들과, 아들네식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케이크만큼 달콤한 저녁시간이 흘러갔다.

손자들이 크면서 열세명이 자기만 집이 좁다. 손녀들과 나는 거실에 이브자리를 폈다. 잠들기 전 손녀들의 일상을 들어주는 시간이 즐겁다. 5학년짜리가 평일엔 시간이 빠듯하단다. 아침식사 후 1학년짜리 쌍둥이들을 챙겨 학교에 가 동생들을 교실까지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간다. 집에 와 숙제를 하고 미술학원에서 동생들을 데려온다.

저녁식사 후엔 동생 숙제며 공부를 1시간 봐준다. 아르바이트인 샘이다. 6학년 언니와 교대로 학원에 동생을 데리러 가고 각각 동생 한 명씩 맡아 알바를 한다. 알바비로 한 달에 만원을 받는다. 1학년이라 집중을 못해 작전을 세워 가르친단다. 다 맞추면 포인트를 올려주고 해찰하지 않으면 과자를 주기도 하면서. 샤워할 때도 데리고 들어가서 먼저 씻겨 내보내고 저가 나중에 한단다. 잘 때도 2층 침대에서 한 명씩 데리고 잔다.

딸이 애들 다섯을 키우니 이렇게 야무지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된다. 저희들끼리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 짝 소리 없이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쌍둥이들도 언니 말을 잘 듣는다.

다음날은 포도밭으로 갔다. 일주일 사이 포도 잎이 많이 자랐다. 곁순과 넝쿨손이 언제 잘라줬냐는 듯 일손 느린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넝쿨손도 바쁘지만 풀이 많아 오늘은 풀 뽑기를 해야겠다. “할머니 새싹을 왜 뽑아요?” “이것들이 포도나무가 먹고 자랄 영양분을 다 빼서 먹거든” “나쁜 놈이어요?”

모처럼 포도밭에 애기들 소리로 꽉 찼다. 나쁜 놈 또 나타났다고 하더니 누나들 나 좀 도와줘.” “여기도 많아서 못 도와 줘.” 시끌벅적하다. 매일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의 끙끙 앓는 소리만 듣던 포도나무들도 오늘은 어린 애기들 소리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여섯 살 손녀는 거미가 무섭다고 울고 1학년짜리 쌍둥이들을 달팽이를 잡고 논다.

6학년짜리 손녀가 잘못 한 것이 있다고 한다. 1학년 때 나쁜 짓인지도 모르고 콩 벌레를 잡아 남학생 신발에 넣었다고 한다. 다른 애들도 다 그런 장난을 했단다. 제 신발에도 있었단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나겠죠? 그래,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해.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고 행동해. 6학년은 어른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네가 제일 큰 언니라 동생들이 다 보고 따라하거든.

더운 날이 아닌데 땀을 죽죽 흘린다. “힘들어?” “아니요 엄청 재밌어요.” “할머니집에 또 오고 싶어?” “큰 놈들은 지친다고 다 차안으로 들어갔다. 여섯 살짜리 손자만 나를 따라다니며 괭이밥 또 나타났어요.” 에너지가 넘친다. 이 원석들을 보석이 되도록 잘 키워야 할 텐데.

손자손녀들이 떠난 밭은 다시 정적만 흐른다. 포도밭 전체를 태양광발전하려다 반절 남겼다. 애들이 오면 마음껏 뛰어놀고 풀도 뽑고 포도도 따며 정서적 안정을 찾고 마음도 순화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한 포도밭의 추억이 지친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요즘도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처음 봤던 나이와 심장을 되찾는다.” 고 했다.

 

2021.5.17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고희를 맞은 부군의 생신 축하 드립니다. 아드님과 따님 식구가 모두 모인 즐거운 모습이 제게도 전해져 몹시 부럽습니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르는 여러 손자와 손녀들의 따스한 마음과 어린 손주들을 곱게 키우는 아드님과 따님 내외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늘 행복하고 보람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