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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경이로운 아내의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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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13회 작성일 21-06-01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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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아내의 끈기


기축생(己丑生)으로 올해 일흔셋에 접어든 아내의 끈기는 가히 힘센 황소를 빼닮았다. 무엇일지라도 하나를 잡으면 통째로 뿌리를 뽑거나 결말을 봐야 손을 놓는다. 하지만 자기 전공에 대한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그리 만든 원흉이었던 까닭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함구하련다. 전공한 그림에 계속 정진하도록 여건을 조성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두 아이들을 위해 희생토록 묵시적인 강요를 했던 때문에 전공과 담을 쌓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게다. 그런 한(恨) 때문에 집중하는 끈기가 강해졌을까. 아내가 어떤 일에 몰입하여 정진하는 모습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족탈불급일 뿐 아니라 흉내 내기도 어렵다.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꾸렸던 75년부터 마산으로 옮겨온 80년대까지 아내가 몰입했던 쪽은 자기 전공과 맥이 닿는 실크(silk)에 날염(捺染)하여 넥타이 만들기를 비롯해 손뜨개가 전부였지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교직생활을 하다가 결혼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꼼짝없이 갇힌 채 지내며 마음을 달랠 길이 막막했으리라. 그렇게 갑자기 확 바뀐 환경에서 그런 소일거리에서라도 위안을 받으려 했을 게다. 그 시절 내가 매던 대부분의 넥타이는 아내가 직접 만들었다. 한편 나를 비롯한 두 아이와 주위 지인들에게 떠주었던 스웨터나 목도리와 장갑 따위가 숱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밤낮없이 그 일에 매달리던 아내의 모습은 끈질긴 집념의 단면이었음에도 그 당시는 취미에 심취한 정도로 치부하며 지나쳤었다.


80년대 후반이었다. 아내는 모진 병마와 몇 개월 동안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수술을 거듭한 뒤에 퇴원하고 한 해 남짓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지냈다. 그러다가 뜨거운 꼴을 당하지 싶었다. 게다가 마산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기댈 구석이 없어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런 아내에게 승용차를 구입해 키(key)를 맡기며 바람이라도 쏘이라고 밖으로 내몰았다. 그게 패착이며 천려일실이었을까. 그 이후 우리 집 승용차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나는 여태까지 조수를 면치 못해 허울뿐인 장롱면허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지갑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이제 고희를 넘겼기에 못 이기는 척하고 슬며시 내게 운전대를 맡길 법도 하련만 아내는 그럴 기미가 도통 없어 보인다.


아마도 아내가 운전을 시작할 무렵부터 수영을 시작했지 싶다. 그러니 어언 서른 해를 훌쩍 넘겼다. 웬만하면 이런저런 가정사나 취미를 둘러대며 다른 운동으로 바꿀 수도 있으련만 아직도 열정이라는 관점에서 초심이 하나도 변치 않은 듯싶다. 얼추 스무 해 남짓 수영과 볼링을 병행하더니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치는지 볼링은 슬며시 외면하며 멀리했다. 하지만 수영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덕분에 손주 유진이가 제 할머니와 동행하면서 수영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꽤 많이 수련을 했던 관계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유진이는 수영에서 관한 한 할머니의 덕을 크게 누렸다. 어찌되었던 아내가 수영에 쏟는 열정과 끈기 또한 내가 따라 갈 수 없는 경지이다.


지난 2천년 초반부터 아내는 10년 가까이 퀼트(quirt)와 함께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것 같다. 그 무렵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어린 왕자님께 진상할 포대기를 비롯해 유아용품 만들기에 몰입한 채 날이 새고 저물었다. 내가 보기엔 멀쩡한 원단을 조각조각으로 오리고 이어 맞춰 기하학적 무늬의 조각 이불을 위시해서 잡다한 생활 용품을 만듦이 왠지 낯설고 탐탁하지 않았지만 잠자코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돋보기를 걸치고 밤낮으로 헝겊 조각을 이어 맞추고 꼬마 바늘로 한 땀 한 땀 이어가면 아주 작은 무늬와 형상이 만들어지고 화려한 색상의 조각이불이나 방석 따위로 변신할지라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 많은 정성과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전문점에 가서 구입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끈기가 적당한 선에서 멈췄으면 했었다. 참새가 감히 봉황의 뜻을 헤아릴 수 없는데도 말이다.


두 아이들이 성장한 이후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도 더 지난 어느 때부터 영어에 모두걸기를 했다.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강의를 듣는 가 싶더니 죽이 맞는 몇몇이 모둠을 만들어 외국인 강사를 초빙해 회화를 배우기도 했다. 영어를 시작하고 얼추 20년쯤 몰두했던 것 같다. 그런 때문에 우리 집 식탁엔 각종 영어 교재, 사전, 수업 내용을 필기하거나 단어를 찾아 기록한 노트 나부랭이가 항상 어지럽게 나 뒹굴었다. 또한 침침한 눈에 돋보기를 걸치고 깨알 같은 사전을 읽기 위해 초등학교 과학실에나 있을 법한 확대경을 들이대고 알뜰하게 기록 한 노트가 적어도 10권을 넘을 정도였다. 그렇게 평생 알콩달콩 할 줄 알았는데 최근 이쯤에서 영어를 접겠다고 했다. 어렵사리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갈고 닦던 시절 친구들과 몇 차례의 나라밖 여행길에서 배운 걸 알뜰살뜰하게 써 먹어봤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영어에 몰두하던 시절 그 진지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냐하면 일생을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아왔던 나보다도 더 집요하게 파고 들던 당찬 모습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 접어야 했던 전공을 벌충하려는 의도였을까. 오랫동안 올인(all in)하던 영어를 내려놓더니 곧바로 큰아이 화실에 나가 일주일에 세 차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또한 아울러 일주일에 3~4회 수영을 병행하기 때문에 단 하루도 온종일 진득하게 집에 머무는 날이 없는 공사다망하신 몸이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를 헌신짝 버리듯 홀대하는 까닭에 점심엔 어쩔 수 없이 혼밥족 신세로 전락했다. 그래도 뭐 대수인가. 아내가 건강을 제대로 지키며 활기찬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면 한 눈 질끈 감고 헙헙하게 넘겨도 결단코 오그랑장사가 아니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쓸개 없는 여자로 전락한 뒤로는 건강 문제로 여태까지 해오던 수영에다가 걷기운동을 더하길 바랐다. 그런데 걷기 대신에 뚱딴지 같이 ‘프랑스 자수(刺繡)’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지난 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차례씩 창원에 가서 개인지도를 받는다. 그 수업료와 재료비(현재 아내가 구입한 실은 자그마치 250가지 색깔의 실임)가 만만찮다. 그림을 공부한 때문에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존재였던가. 같이 시작했던 도반들은 아직 초급과정인데 자기만 중급반이라는 푼수데기 같은 자화자찬을 믿어도 되는 걸까. 물론 초급반에 비해 중급반은 교육비 부담이 훨씬 컸다. 요즘 아내의 모습이다. 밤에 거실의 등을 두 개 켜 놓고 나서도 침침하다며 스탠드 하나를 가외로 더 켜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돋보기를 걸치고서 수(繡)를 놓는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다. 어찌되었던 그를 배워 스타트업(start-up)*을 시도하거나 특별히 활용할 일이 없어 투자하는 알토란같은 시간과 재료비와 수업료가 쪼금 아깝다. 그럴지라도 그를 통해 심신의 치유를 받을 조짐이 역력하기에 아내의 경이로운 끈기와 왕성한 도전 정신에 무조건 응원하며 박수를 보낸다.


========


*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
* 스타트업(start-up) :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신생 창업기업을 지칭하며, 여기엔 3H 멤버(member)가 필요하다. 즉, 해커(hacker : 개발자), 하슬러(hustler : CEO), 힙스터(hipster : 디자이너) 등이 그들이다.


한맥문학, 2021년 6월호(통권 369호), 2021년 5월 25일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댓글목록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일흔을 넘기신 사모님께서 다방면에 쏟는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모님의 일에 대한 끈기와
왕성한 도전정신에 무조건 박수를 보냅니다.
은근히 선생님의 외조도 큰 도움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내외분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동진(同塵) 김 재 형 드림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사모님의 열정을 여러 편의 수필에서 낌새채고도 남았지만
고희가 넘으신 나이에도 이렇게 열정적이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공을 살려 계속 정진했더라면 세상에 이름  석 자 크게  회자될 분이었군요.
그런 열정으로 전업주부란 직업(?)이  꽤나 힘드셨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저야 배운 것도 일천하고 중뿔난 재주가 없다보니 전업주부가 딱 체질에 맞았지만요.
오래전에 제가 선생님께 메시지로 오타를 알려드렸을 때 제게 답장을 보내셨지요. 우리집 사람이 쓴 거라면서요.
거기에 마지막 문장에
<Thanks a lot>이 써 있더군요.
저는 그 숙어를 몰라서 큰아이에게 해석해 달라고 한 적이  있고요.
열정도 건강이 따르지 않으면 말짱 황이라는 걸 저는 너무도 잘 알기에
사모님의 열정에 제삼자로서도 크게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이런 수필이 참 좋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