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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무릎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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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5회 작성일 21-06-19 19:55

본문

내 무릎이 늙었다

윤복순

 

어제는 아침 운동을 나가지 않았다. 매우 드문 일이다. 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릎이 나이를 먹어 심통을 부렸다. 전에 어머니가 깨진 동이 태 매어 쓴다고 하신 말씀을 실감한다.

여러 해 전 중국 여행 때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고장이 났다. 신주단지 모시듯 달래어 일상생활을 하며 어지간히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대신에 운동화만 신고 등산은 하지 않고 둘레길이나 걷는다.

며칠 전 결혼식에 다녀왔다. 차마 운동화를 신고 갈 수 없어 정말 오랜만에 구두를 신었다. 예식장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오르니 바로 무릎이 신호를 보낸다. 한 번 고장 나면 원상회복은 언감생심이고 쓸 만하게 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파스를 붙이다 바르는 소염진통제로 대체했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또 아프다. 달래서 될 일이 아닌가보다.

이십여 년 전이다. 매 일요일마다 네 집이 모여서 전국 유명 산을 등산했다. 남편과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 그래도 그때는 사십대 후반 오십대 초반이니 새 각시나 마찬가지다. 일행들과는 열 살 여섯 살 차이가 났다.

그 때 나는 어느 산을 갈 것이며 코스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담당이었다. “전국 여행지도책을 컬러판으로 사서 그 시기에 가볼 산을 찾느라 신문과 지도책을 뒤졌다. 쉽고 단순한 코스를 두고 종주나 원점회귀 코스를 골랐다. 적어도 우리 팀은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허세를 부렸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신나고 일요일이 금방금방 돌아왔다. 일행들이 직장에서 이웃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 목적지에 가는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단비엄마 친구 아들 얘기다. 그 애가 중학교 입학하는데 대학생 정도의 키와 몸무게가 된다. 교복을 사러 갔다. 주인이 어느 학교냐고 물었고 W중학교라고 했는데 주인이 잘 못 듣고 아니 등치만 보고 W고등학교 교복을 준 것이다. 친구나 아들이나 그 학교 교복을 모르니 입어보고 맞아 사왔다. 입학식 날 위풍당당하게 입고 갔는데 선생님이 고등학생이 왜 중학교 입학식에 왔냐고 물었고 고등학생, 고등학생놀림이 되었단다. 우리도 그날 한바탕 웃었다.

태백산에 갈 때였다. 가을이었다. 익산에서 태백까지는 멀어 새벽 3시에 출발했다. 유일사에서 출발해 정상을 찍고 백단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갈 때는 M이 올 때는 K가 운전 담당이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조금씩이라도 눈을 붙이자고 했다. 살짝 잠이 들었다. 폭발음이 들렸고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렇게 죽는 구나...... 정신을 차렸을 때 살아있었다. 차는 낭떠러지 바로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추어져 있다. 타이어 펑크가 난 것이다. 고속도로의 시속이니 큰 사고가 났어야 하는데 모두 말짱했다. 일곱 명의 일행 중 누군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선업을 지었던 것 같다.

3년 동안 전국의 명산 150 여 곳을 다녔다. 그 때는 꼭 완주를 해야 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젊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이 하는 것은 다 했다. 아니 더 앞장서지나 않았을까. 호기심 때문에 옆길까지 구경하다 뒤쳐지니 내려올 때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무릎연골 다 닳는 줄도 모르고.

국내 여행을 마치고 해외여행을 다녔다. 일정 외에 새벽에 저녁에 호텔주변을 걷고 시장 구경을 다니며 남들보다 더 많이 쏘다녔다. 1년에 두 번씩 코로나19전까지 그랬다. 걷는 것을 좋아해 틈만 나면 걷고 일요일에는 보통 5시간 많게는 8시간을 걷기도 했다.

많은 등산과 여행으로 눈은 처음 보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입도 집에서 못 먹어본 것을 먹으며 호사를 누렸다. 발도 가끔 발마사지를 받으며 호강을 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무릎만 혹사를 시켰다. 한 번도 무릎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발은 많이 걸은 날 족욕이라도 하고 애썼다고 주물러 주기도 했지만.

오늘은 아침운동을 나갔다. 평소의 절반 정도 걷고 그냥 돌아왔다. 평지를 걷는 데는 괜찮은데 내리막길에선 무릎이 시큰거리고 땅기면서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걸음이 느려지고 절뚝거려졌다.

병원에 갔다. 아직까진 처방받아 먹는 약이 없어 건강한 편이라고 자신하며 살고 있다. 무릎이 아파서 왔다고 하니 바로 사진을 찍으란다. 양쪽 무릎 연골이 닳은 표시가 난다. 퇴행성관절염이 시작된 것이다. 의사는 이 나이까지 잘 관리해 왔다며 혹 요사이 쪼그리고 앉아 일을 했냐고 묻는다.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중에 노는 것이 아니니 일요일 포도밭에 가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내가 먼저 서두른다. 알 솎기니 뭐니 전문적인 것은 못해 주로 풀을 뽑는다. 풀을 뽑는 것은 단순노동으로 머리를 진정시키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밭이 깨끗해진 것을 보면 힐링도 된다. 물론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철푸덕 앉아서 풀들과 얘기를 하며 한다.

의사는 연골주사를 맞을 거냐고 묻는다. ‘내가 할머니인가 벌써 그걸 맞게.’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먼저 경구투약부터 해보자고 했다. 봄에 밭둑에서 캐어 온 우슬에 닭발을 넣어 삶아놓았다.

남편이 70대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아들 손자 등 3대 열세명이 해외여행 다섯 번 하기를 넣었다. 나는 손자 손녀가 아직 어려서 조심스러웠는데 어린 애들 걱정할 것이 아니라 늙은 내 무릎부터 챙겨야할 것 같다.

산은 꼭 정상까지 올라야하고, 일을 하면 그날에 끝을 내려고 쉬지 않고 한다. 돈도 백만 원을 채우려고 1억 원을 채우려고 아등바등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겠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귀를 딱 맞추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 얼굴에 주름이 생긴 만큼 무릎연골도 닳았다. 모든 것이 다 늙었는데 무엇을 하든 꼭 끝을 보려고 죽을 둥 살 둥 하는 성격만 아직도 늙지 않은 것 같다. 저 죽는 줄 모르고.

그나저나 내 무릎은 며칠이나 더 지나야 쓸 만하게 될 건지....

2021.6.10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걷기를 시작한지 스무 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동네 뒷산을 오르내렸지요. 그런데 겨우 희수(喜壽)에 이른 지금은 무리를 하는 것 같아 일주일에 두 번은 의식적으로 쉽니다. 그런데 더더욱 저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산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나를 앞질러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사실입니다. 그정도 다녔으면 전문가나 도사가 되어야 하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답니다. 그 누가 가는 세월을 이겨낼 장사가 있을까요.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가만 보니 선생님은 일도 운동도 쉬지 않고 하신 거 같습니다.
이젠 쉬엄쉬엄 조금씩만 하세요.
그래도 걷기는 멈추면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