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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투잡하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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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29회 작성일 21-07-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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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하는 할머니

윤복순

 

전화하니 나 좀 봐라, 깜박 잊었다.” 금방 내려오시겠단다. 그녀가 나랑 아침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 좀 데리고 다니란다. 그녀는 팔십대 할머니다. 당뇨 등 성인병이 있고 작년 가을에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철심까지 박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당신이 일찍 나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겠단다. 걱정 말고 집에 계시라고 했다. 어차피 당신 집을 지나 운동을 가니 내가 벨을 누르겠다고 했다. 첫날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문을 두드려도 무반응이다. 새벽이라 큰 소리로 두드릴 수 없어 두어 번 두드리다 집으로 와 전화를 했다. 여태 기다리다 잠이 들었단다. 당신 말만 하고 끊는다. 가시겠다는 건지 안 가시겠다는 건지. 다시 전화 해 천천히 내려오시라고 했다. 뭐든지 처음 하는 날은 들떠서 잠이 안 오다가 딱 그 시간에 여태까지 설레며 기다린 본정도 없이 잠이 드는 법이다.

토마토와 사탕을 준다. “뇌물이다. 누가 늙은이랑 운동한다고 하겠냐. 고마운 줄 다 안다.” “걱정 마세요. 찬바람 나면 못 다니시잖아요. 내가 뒤에 잘 따라다닐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과는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다. 성은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당신 말대로 많은 뇌물을 바쳤다. 나는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든 한 가지는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나 편 하려고 좋은 점만 본다. 나쁜 점을 보면 입에서 좋은 소리 안 나오고 스트레스 받고 부정적이게 되니 발전이 없다. 재미도 없다. 성이 뇌물을 바치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좋아하는데 당신 성격이 남에게 주는 걸 좋아하고 하나를 받으면 열 개를 준다.

성과 같이 걸으면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천천히 걷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해찰하기 때문이다. 운동시간도 한 시간 남짓으로 평소의 절반 정도다. 아파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동네가 나오고 논과 밭이 있다. 뜨거워지기 전 일을 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밭에 나와 있다. 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넉살이 좋아져서 모르는 사람들과 말도 잘한다. 얘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고 남의 밭이지만 농사 잘 지어 놓은 농작물 보는 것도 기분 좋다.

어느 해 제약회사 직원 때문에 많이 웃은 적이 있다. 남도 사람들은 팥을 퐅이라 하는 줄은 알았지만 파리를 포리라고 하는 것은 그날 처음 들었다. 약국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내가 부채로 잡으려 했다. 그때 직원이 나를 말리며 우리 엄니가 포리채로 포리 잡다 자빠져서 엄청 고생하셨어요.”한다. 포리라는 말 때문에 성과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고추 상추 부추 토마토 등 골고루 심은 밭에 커피 찌꺼기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삭혀서 거름으로 쓴다고 한다. 성도 커피 찌꺼기를 화분에 주려고 썩혔다. 거기서 파리가 나왔는지 날아다니다 방충망에 앉았다. 파리채로 때렸는데 파리는 못 잡고 방충망만 찢어져서 교체하느라 팔만 원이나 들었단다. 나보고 파리 말고 포리 이야기나 글로 쓰라고 해서 한참 웃었다.

다음날은 전화를 받지 않아 서둘러 나오니 우리 라인 앞에서 기다린다. 내가 부담스러우니 전화 받고 나오라고 했다. 어제 당신이 나 애통터지게 했으니 그것에 대한 반성이란다. 우리 집이 8층 이라고 몇 번이나 알려 드렸는데 10층으로 올라갔단다. 어느 교회 문패가 있어, 남의 집을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른 내려와서 기다렸다고 한다.

나는 무종교인이다. 상식 수준의 것이라도 알고 싶어 성경을 쓰고 금강경 법화경 등 불경도 읽고 썼다. 원불교 교전도 썼다. 이걸 알고 있는 성이 나를 연합종교 교주라고 부른다.

어릴 때 할머니는 내가 무엇을 물어 보거나 답을 하면 암만그러셨다. 물론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말을 긍정할 때 대답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커서 알았다. 성이 어떻게 그 말을 기억해 내고는 연합종교 이름을 암만교라고 하고, 너는 암만 암만 하면서 양손을 위로 올리면서 돈이나 받아내라고 해서 엄청 웃었었다. 성이 옛날 말을 그날 아침에 꺼냈다. “야가 암만교나 잘 지키라고 했더니 언제 기독교로 옮겼다냐.” 10층 교회 문패 앞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또 웃었다.

남편이 새벽같이 포도밭에 간다. 남편 출근 후 나도 준비해 운동을 나간다. 현관 앞에서 남편이 깜짝 놀란다. 성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물도 못 마시고 정신없이 나갔다. 개복숭아와 복분자 엑기스를 가지고 오셨다. 그 무거운 것을 직접 들고 오셨어요? 만나서 주면 내가 그것 때문에 집에 올라갔다 와야 해서 당신이 들고 올라왔단다. 그러면 벨이라도 누르지 왜 기다리고 계세요. 느네들은 젊어서 늦잠 자는 것 좋아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그랬단다. 아이구 이 못 말리는 짝사랑을 어떻게 할까.

그렇잖아도 엑기스가 다 떨어져간다. 나는 살림을 못한다. 밭에 매실나무가 서너 그루 있다. 매년 포도밭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들이 다 따간다. 내가 한 번도 담가본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줘서 먹는다. 일요일 밭에서 일하고 오면 얼마나 갈증이 나는지 엑기스에 물을 타 먹고 우유 한 잔 마시고 수박 반통을 먹으면 갈증이 조금 풀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엑기스 한 잔을 더 타 마셔야 겨우 가라앉는다.

성은 오늘은 뭐를 뇌물로 바칠까 연구하시는 것 같다. 감자를 오이를 가지를 마늘을 완두콩을 파프리카를 애플망고를 황태를 쇠고기를 시기적절하게 주신다. 당신과 놀아주느라 기 많이 빼기니까 잘 먹어야 한다면서. 나는 염치 좋게 덥석덥석 잘도 받는다.

아침마다 전화하면 거의 안 받는다. 미리 나와 계시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매일 전화를 돌린다. 오늘은 깜박 잊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겠다.” “병원 가시는 날이어요?” 투잡하려니 정신이 없단다. “TV볼라 사람들이 보내준 커톡 볼라, 이것이 투잡이지 뭐냐.” 나는 또 빵 터졌다. “그게 투잡이그만? 역시 성다운 발상이네.” 그래도 내가 먹물 조금 먹었으니 투잡도 알지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걸 알겄냐. 하신다.

매일 아침 성 덕분에 웃는다. 천천히 걸어 땀 한 방울 안 나지만 많이 웃기 때문에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고 했다.

 

2021.6.26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성과의 아름다운 동행 무척 부러운가 하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저도 요즘 새벽 4시에 등산에 나서는데.. 한동안 함께 다녔던 일행들이 다시  함께 다니자고 합니다. 하지만 항상 제가 늦어서 어울리지 못해 미안한데도 고쳐지지 않는 답니다. 매해 여름이면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에 오르내리기 스무해 가까워졌음에도 제대로 통성명도 않고 지내는 사이가 진정한 길동무인지 모르지만 오늘 새벽에도 그 분들과 스쳐 지났습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성', 참 정겨운 말입니다. 좋은 성을 두셨네요.^^
얼마 전 익산 달빛소리수목원에서 예쁘게 익은 보리수 영상을 찍고 있을 때였습니다.
"와, 포리똥이다 포리똥"
아이들이 '포리똥'을 알더라고요.
ㅋㅋㅋ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감사합니다.
밭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상추와 가지를 주셨어요.
성이 고맙다고 밥을 샀어요.  또 오이를 주시네요. 제가 종합비타민을 가지고 갔어요.
오늘 아침에는 옥수수를 주시네요.
성이 나랑 아침마다 만나 운동하는 것 너무 좋대요. 마치 연애하는 사람이 기다려지고 설래고 하는 것처럼 당신 마음이 요즘 그렇다네요.
운동은 안 되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