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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당한 통행세 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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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3건 조회 872회 작성일 21-08-2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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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통행세 징수


매년 여름이면 되풀이 하는 새벽 등산이다. 그러려니 여기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돌아보니 어느덧 스무 해 가까워오고 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유월 중순부터 얼추 넉 달 안팎을 깜깜한 새벽  네 시(時)인 인정(寅正) 무렵 집을 나서 동네 뒷산으로 야트막한 청량산(淸凉山 : 323m)에 등정했다가 약간의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세 시간 정도가 소요되어 맞춤하다. 더위를 피하려고 꼭두새벽에 나서는 다소 별난 산행이다.


급전 직하되어 심각한 건강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꼬박 4년간 산림 관리를 위해 밤밭고개 언저리에서 덕동 쪽으로 개설해 포장한 임도(林道)로 4km 남짓한 길을 오가며 걷고 또 걸었다. 일구월심으로 공을 들여가며 거의 매일 걸었던 덕택일까. 부지불식간에 체력이 여퉈지며 또 다른 욕심이 스멀스멀 솟구쳤다. 걷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 이른 봄 어느 날이었다. 무모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정상을 오가는 등산길 걷기에 도전했다. 산은 그런 나를 야멸치게 내치지 않고 다소곳이 품에 안아 줬다. 그렇게 꽤나 까다로운 등산길을 파고든지 어언 18년째이다. 매주 최소한 5차례 오르내렸기에 최소한 4천 번 이상을 오갔던 셈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도 거침없이 왕복할 있을 만큼 낯이 익어 친숙한 노정이다.


노령에 한 여름 불볕더위에 등산은 무리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대부분 새벽잠이 없어져 뒤척이게 마련이 아니던가. 이런 터수에 맞춤한 게 새벽등산이리라. 하루 중에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각에 기상하여 간단한 아웃도어(outdoor) 차림을 하고 어두운 산길을 밝힐 손전등이나 헤드랜턴 하나 들고 나서면 만사형통이다. 성패의 결정적인 관건은 꾸준히 등산에 나설 단호한 결기 여부에 달려있지 싶다.


내가 다니는 등산로 초입의 길옆에 자그마한 육각정(六角亭)이 있다. 여기에 새벽 4시 30분까지 도착하면 동행할 대여섯을 만나 함께 산행할 수 있도록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고희(古稀)를 넘기고 팔순(八旬)에 가깝다. 나머지 한 둘은 이순(耳順)의 중반을 넘겼다. 이렇게 무리지어 새벽등산을 하는 이유는 과거 등산길에서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며 다른 측면에서는 홀로 오갈 때 무료함을 면키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나에 비하면 이들은 전문 등산인 같이 체력이 좋고 보행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 다니기 어려워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지낸다. 어쩌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서면 중간에 적당한 기구의 운동을 하다가 그들이 출발하고 난 뒤에 외톨이로 쫄래쫄래 따라가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런 때문이리라. 벌써 여러 해 동안 새벽등산을 계속함에도 첫 번째로 산 정상(頂上)을 밟아 봤던 적이 없다. 기껏해야 6~9번째가 고작이었다.


인정인 새벽 4시에 나선 길이라고 해도 여름인 때문에 대책 없이 흘러내리는 땀과의 줄다리기는 불가피한 전쟁이다. 게다가 나는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서 매일 속옷은 물론이고 겉옷까지 흠뻑 젖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쭈뼛대기도 한다. 요즘 같이 열대야가 지속되는 혹서기(酷暑期)에는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던 땀수건을 짜내가며 닦아도 감당해 내기 어렵다.


새벽등산은 오직 길바닥만을 주시하고 걷기 때문에 잡다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좋다. 오늘도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걸었다. 정상에 도착하여 운동할 무렵에 희뿌옇게 날이 밝아왔다. 그리고 하산 하는 과정에서 동녘 산마루에 해가 솟아오르는 일출시각은 대충 5시 47분경이었다. 거의 매일 마주하는 광경임에도 동녘에 불끈 떠오르는 햇볕이 펼치는 황홀경은 늘 새로운 맛과 감흥으로 다가와 신비롭다. 그런 때문에 나른한 피곤함에 젖은 채 터덜터덜 걷는 하산길이건만 마냥 즐겁고 흐뭇하다.


지천명의 끝 무렵에 처음 걸을 때는 중간에 한 번 쉬었다. 그런데 18년째인 오늘 새벽엔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생체 리듬 때문일까 아니면 가는 세월의 영향인지 자그마치 네 번이나 쉬면서 휘적휘적 걸었다. 그동안 땅위로 나있는 길을 비롯해서 수림도 조금씩은 변했으리라. 모든 게 알게 모르게 세월 따라 변하고 있다. 게다가 해가 여러 번 바뀌면서 시나브로 새벽에 오가던 등산객도 옛 사람이 하나 둘 보이지 않는가 싶더니 새사람 몇이 새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해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새벽에 오가는 등산객에게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부당한 통행세를 받아내려는 몹쓸 모기 족속들만은 털끝만큼도 변할 기미가 없이 되레 당당한 모습이 얄미워 죽을 지경이다. 그들이 집요한 공세를 취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으르렁 왈왈대는 꼬락서니가 영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손을 놓고 있다.

 

자고로 세금은 현금이나 현물로 징수했다. 그런데 이 철면피한 불한당인 모기 들은 등산로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통행세 운운하며 현물인 ‘피’를 징수하는 탈법을 저지르는 만행을 일삼고 있다. 그 옛날 현물로 징수하던 예이다. 장리쌀(長利米)을 얻거나 갚을 때 반드시 쌀로 하던 셈,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고 해마다 내던 도지(賭地), 연납(年納)으로 모곡제(募穀制)였던 이장(里長)에게 수고료로 거둬 주던 벼(稻)를 비롯해 대장간 이용료로 대장장이에게 주던 벼와 이발을 하고 가을에 이발비 대신에 이발사에게 주던 벼 따위가 있다.


모기의 행패가 두렵고 마뜩치 않다고 이 더운 여름에 한 겨울처럼 긴 옷으로 중무장하고 틈새를 꽁꽁 싸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도 등산길에서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적인 헌혈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돌아와 팔다리에 벌겋게 부어오른 곳에 벌레물린데 바르는 약인 “계안”을 바르며 잔뜩 약이 올라 벼르며 중얼댔다. 내일 등산에는 절대로 허망하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며 단호하게 응징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문제이기에 맹추 같은 엿돈이의 실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21년 8월 5일 목요일
 

댓글목록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선생님은  새벽 등산에는 상당한 경험과 관록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새벽등산을 18년 그리고 새벽등산 에서 느끼는
 동녘 하늘에 떠 오르는 햇빛이 펼치는 황홀경 만끼하면서, 새로운 맛과 감흥으로
피곤함도 잊은체 즐겁고 흐뭇한 표정이 정말 부럽습니다.
또 모기와의 전쟁으로 옛날의 모곡제등 지난날 추억이 새삼 상기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건안 하시길 바랍니다.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제목이 참 재밌습니다.
어쩜 저런 제목을 뽑을 생각을 다 하신지요?
저도 매일 산을 오릅니다. 303M 인지라 저에겐 앙성맞춤이지요.
정상에 올라가서 운동 기구 한 시간 하면  2시간 조금 더 소요됩니다.
매일 산에 오르는 재미로 살아요.
새벽등산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큰일이잖아요.
저는 아무리 더워도 점심 먹고 가거든요.
선생님, 항상 조심해서 등산하십시오.
'엿돈이' 라는 말에 웃고 갑니다. 선생님은 0.00001%도 엿돈이 아닙니다.

하재남님의 댓글

하재남 작성일

선생님 오랫만입니다.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이 그려져
안심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건안하시고
좋은날에 뵙기를 기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