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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제의 커피, 두 개의 반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상은 댓글 6건 조회 39회 작성일 21-09-07 16:12

본문

어제의 커피, 두 개의 반지 /이상은

 

 

 

 저는 지금 어제 마시다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하루쯤 지난 커피를 우리 집에서는 어제의 커피라고 불러요. 일본인 만화가 ABE Yaro(安倍夜郞)의 심야 식당이라는 만화에서 어제의 카레라는 꼭지를 읽은 후부터지요. 심야 식당에서 ABE Yaro는 카레를 냉장고에서 하룻밤 재웠다가 따뜻한 밥 위에 올려서 녹여 가며 먹어요. ABE Yaro의 어제의 카레는 냉장고에서 일박(一泊)하는데 우리 집 어제의 커피는 식탁에서 작은 접시를 뒤집어쓴 체 하룻밤을 지내요. 푸대접이죠.

 

 “새로 내려서 마시지!”

 안방에서 장롱 정리를 하던 아내가 말을 건넵니다.

 “어제의 커피도 좋아. 어제 커피는 시작은 내가 하고 완성은 시간이 하지. 그래서 어제의 커피는 내가 내렸지만 나도 그 맛을 몰라.”

 아내가 정리하던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나와 식탁에 앉습니다.

 “어이구. 또 실없는 소리 한다. ”

 아내가 저를 흘겨봅니다.

 

 아내가 상자에서 반지 두 개를 꺼냅니다. 하나는 실반지이고 다른 하나는 반짝이는 스톤이 가운데 박힌 반지입니다.

 

 아내가 실반지를 나에게 들어 보입니다.

 “이 반지 기억나. 당신이 사준 거지. 쇠고기 두 근 값 정도 줬을 거야. 내가 시장 가는 길에 반지 가게 앞을 지나다 몇 번 눈길을 줬더니 당신이 지갑을 털어서 사줬어. 우리가 단칸방에서 살 때였지. 우리 아버지, 이 반지를 보시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쉬시더라. 이 반지가 애처로워 보였나 봐. 가느다란 실반지가 우리 부부 가난한 살림처럼 보이셨겠지.”

 

 아내가 이번에는 스톤이 박힌 반지를 들어 보인다.

 “이 반지는 내가 샀지. 지하철역 앞 가판대에서 제일 화려해 보이는 반지를 골랐어. 아이스크림 두 개 값쯤 줬을 거야. 다음 친정에 갈 때 끼고 갔지. 아버지는 이 반지를 보시고 잠깐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 그러시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시며 반지가 참 예쁘다 하셨어. 아버지도 이 반지가 이미테이션인걸 아셨을 텐데 말이야.”

 아내가 한숨을 내쉽니다.

 “이제 진짜 반지를 사서 끼고 갈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네. ”

 아내의 목소리에 눈물 몇 방울이 섞였습니다. 저는 이럴 때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아내에게 변변한 결혼반지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했습니다. 제 형편이 넉넉지 못했습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때였습니다. 모두 제 탓이지요. 그러니 제가 반지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아버지의 침묵도 헛웃음도 슬펐어.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당신이 좀 원망스러웠어. 이 반지들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웠어.”

 아내가 두 개의 반지를 손바닥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이 반지들에서 다른 것들이 보여. 실반지에서는 아들 녀석 얼굴이 이미테이션 반지에서는 딸 아이 얼굴이 보여. 이제 아버지의 침묵과 웃음이 슬프게만 보이지는 않아. 침묵 속에서는 괜찮다 괜찮다 하는 위로 말씀이 들리는 듯 하고 웃음 속에는 예쁘다 내 딸 참 곱다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 해.”

 

 제가 마시던 어제의 커피를 아내도 한 모금 마십니다.

 “어제의 커피! 맛이 나름 괜찮네. 오늘 이미테이션 반지를 버리려고 했는데 그냥 두기로 했어. 두 개의 반지! 오늘 보니 그때와는 다른 그림이 되었어. 이제 슬프기만 한 그림은 아냐. 시간이라는 녀석이 내가 그린 그림을 많이 고쳤네. 당신 커피 맛을 바꾸어놓듯 말이야.”

 

 아내가 두 개의 반지를 상자에 넣어 안방으로 돌아갑니다. 언젠가 아내는 반지를 들고나와 식탁 앞에 또 앉겠지요. 그리고 오늘과는 다른 반지 이야기를 하겠지요.

 

 산다는 것, 새로운 그림 그리기와 끝없이 고쳐 그리기가 아닐까요? 아내가 고쳐 그린 반지 그림의 오늘 제목은 “괜찮다. 예쁘다.” 정도일 듯합니다.

 

 어제의 커피가 아직도 조금 남았습니다. 하루를 더 재워볼까요? 그럼 그저께의 커피가 되나요. 또 어떤 맛이 날까요.

 

 해야 할 이야기가 한 가지 남았네요. 내가 평생 고쳐 그린 내 그림의 마지막 제목은 “여러분. 고맙습니다.”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제의 커피 한번 마셔보세요.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참으로 오랜만에 찾으셨네요. 지근에 살면서도 어쩌다 보니 먼 이웃 나라가 되었지 싶습니다. 글을 보면서 맥락은 달라도 언뜻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실반지와 스톤이 박힌 반지 길이길이 보관하셔야 겠습니다. 두분의 삶의 한 단면을 말해 주는 소중한 증적이기에...

하나, 신혼 생활 거의 일년 지난 어느날 흑백 텔레비전을 사들고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수유리 단칸방을 찾아가면서 기분이 좋았는지 자꾸만 실실거리며 웃음을 짓던 아내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둘, 마산에 이사 와서 전세집을 전전할 때였습니다. 어느날 이사하고 보니 거실 장식장 윗쪽 모서리 한켠에 "백금 다이어 반지"를 발견했지요? 잃어벼렸다고 난리법석을 떨 것을 생각하며 전화가 불가능했지요. 공연히 남의 물건 지니고 있다가 봉변을 다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편편치 않아 엄청 불편했답니다. 며칠만에 주위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연락을 했지요. 거두절미하고 "이미테이션"이니 버리라고... 얼마나 힘이 빠지고 어이가 없던지 털썩 주저 앉았었지요.

이상은님의 댓글의 댓글

이상은 작성일

네 오랫만입니다.
가까운 곳에 계시는데 뵙지 못했습니다.

글을 부지런히  쓰야하는데 게을러 가끔 씁니다.
글이 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교수님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앗, 이상은 선생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여기서 선생님의 멋진 글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상은님의 댓글의 댓글

이상은 작성일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식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이렇게나 반가운데 그동안 집을 못 찾으셨죠?
이제, 새 집 찾으셨으니 어디 가시지 마셔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자주 뵈어요.
저는 임영숙입니다.

이상은님의 댓글의 댓글

이상은 작성일

반갑습니다.
편집장님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