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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일요일 포도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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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18회 작성일 21-09-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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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포도밭에서

윤복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진 약국 근무를 하고 일요일엔 포도밭에 간다. 8월 중순부터 제법 포도물이 들어갔다. 진하게 연하게 알록달록하다. 가지마다 보무도 당당하게 가지런히 달린 송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를 늠름하게 마친 대학생 같다.

대학생이라고 안심은 아니다. 포도가 익어가면서 열과가 많이 생긴다. 알이 커지면서 자리다툼으로 터지고, 부실한 것은 성장통을 이기지 못해 저절로 터지기도 한다. 송이에서 한 알이라도 열과가 생기면 단맛 때문에 초파리가 꼬이고 그 진물로 옆의 알까지 짓무르게 된다.

포도 알이 쪼록쪼록 박힌 상태에서 열과 한 알을 빼내려면 옆에 것을 건드리게 된다. 손으로 잘 뽑아지지 않는 것은 끝이 뾰족한 가위로 찔러 잡아채듯 빼내기도 하는데 잘못해서 옆에 것까지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다. 서로서로 받쳐주며 자리잡혀있던 것이 하나가 빠지면서 공간이 생겨 위아래 알들의 목이 꺾기게 된다. 최상품의 포도송이가 등외품이 되고 만다.

포도농사 중 제일 속이 상하는 것이 열과다. 봄에 포도씨를 없애기 위해 호르몬 처리부터 알 솎기, 탄소동화작용 잘 하라고 한 줄기에 잎사귀 숫자까지 맞춰가며 곁순과 넝쿨손울 따주고, 시간 맞춰 물주고 소독해 주고 영양제 주고, 이리 키워 놨는데 출하할 날을 눈앞에 두고 포도알이 터지면 그간의 공력이 아까워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특히 올해같이 비가 와야 할 여름엔 오지 않고 가을장마가 있을 때는 더욱더 심하다. 남편의 한숨소리가 천둥소리만하다.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포도 제군 여러분, 봄엔 꽃샘추위로, 올 여름엔 유난히 더웠는데도 그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대학생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지역에서 어려서부터 엘리트로 관심을 받고 자랐습니다. 한 번 엘리트는 영원한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출하 되는 그 날까지 열과 되는 일 없이 잘 익어주기 바랍니다. 끝까지 옆에서 내가 돌봐주겠습니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대학 총장이야?”

열과 생기지 말고 반듯하게 익어서 적제적소에 잘 팔려나가라고 내가 치하 좀 해 줬어.”

포도밭이 반으로 줄어 몬당할 줄 알았는데 올해는 일이 더 많았다. 좁은 곳에 관리사와 창고 두 개를 지었다. 작년에 안식년을 한 관계로 가위부터 이런저런 연장 등 새로 장만할 것도 많다. 농사가 많든 적든 일거리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일꾼구하기도 힘들다.

 

4~5년 전에 밭둑에 소나무를 심었다. 산에서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웠는지 애기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한 뼘이나 될까 하는 작은 것들을 줄을 맞춰 심었는데 오뉴월 장마에 죽순 자라듯 자랐다. 키가 나보다 클 뿐 아니라 옆으로 가지도 많이 뻗어 칙칙한 솔밭이 되었다.

윗동 하우스로 열과 작업을 하러 가는데 소나무 밑에 솔버섯이 무더기무더기 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이 빠졌는데 그걸 본 순간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질렀다. 남편도 달려와 여기도, 여기도버섯 따는 손이 바쁘다. 어느새 열과 걱정은 무장해제 된다. 어린것들이 저도 장정소나무가 됐다고 이렇게 버섯을 키워낸 것이다. 신통하고 영특하고 자랑스럽고 온갖 칭찬을 다 해줬다.

남편이 포도농사 시작 전과 끝난 후는 체중이 7Kg 정도 차이가 난다. 나는 포도농사 해서 단돈 1원도 벌지 못한다 해도 체중이 조절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건강검진 때마다 과체중을 지적 받는데 운동이나 식이요법만으론 조절이 잘 안 된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겨울 농한기에는 달마대사의 배가 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남편 벨트 구멍 줄어드는 것만 좋아했다. 얼굴이 쪼글쪼글하다. 새까매졌다. 어깨도 처졌다. 사는 것은 어찌 변비 아니면 설사일까. 일이 없으면 무료하고 일을 할라치면 사대육신이 지쳐나야 하니 말이다.

솔버섯은 소나무향이 진하고 맛이 순하다. 추석 무렵에 나오는데 어린시래기를 넣고 된장국을 끊이면 밥도둑이 된다. 친정에서 가을이면 자주 먹었다. 어머니의 맛이 나야할 텐데. 솔버섯국 먹고 출하 잘하자.

 

가을장마로 연일 비가 내려도 출하는 시작되었다. 나는 포장을 할 줄 몰라 박스를 접는다. 2Kg, 4Kg 두 종류다. 요즘은 1~2인 가구가 많다보니 농협으로 출하하는 것은 거의 2Kg 이다. 한 번 물량으로 500박스 정도 나간다. 격일로 주문이 나오니 많이 접어 천정까지 닿게 쌓아놓는다. 4Kg은 주로 추석에 선물로 나간다.

계룡에 사는 동기 내외가 왔다. 그들은 매년 일손을 거들어 준다. 가족은 내가 살림 못하는 것을 알기에 밑반찬까지 해온다. 나이 먹어 친구가 찾아주기만 해도 고마운데 일을 도와주고 반찬까지 만들어다 주니 그저 황송 감사할 따름이다. 동기는 오히려 친구가 가까이 살아 자주 찾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공자의 말이 백번 이해된다고 한다.

유붕이 자원방래니 불역낙호라. 포도농사가 힘은 들지만 이렇게 친구들을 불러들일 수 있게 해주니 고맙다.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하면 쉽게 오지 않을 사람들이 출하 철 부지깽이라도 도와줘야 할 판국이 되면 포도밭으로 와서, 박스를 접어주고, 따 놓은 포도를 작업장으로 날라다 주고, 포장해 놓은 박스에 띠지를 부쳐 10박스씩 숫자를 맞춰놓는다. 500박스를 순식간에 차에 실으려면 헛갈려 미리 잘 맞춰놔야 한다.

올해는 일거리를 만들어주느라 박스의 바코드가 잘못되어 다시 인쇄해 온 것을 일일이 덧 부쳐야 된다. 그것도 친구들 몫이다. 그들은 정년퇴직한지 10년도 더 지났다. 일거리가 반갑다.

농사일은 매일 출근하면 삶의 현장, 61촌 하면 힐링, 잠깐 도와주면 추억. 나는 일요일에만 포도밭에 간다.

 

2021.9.6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포도에 대한 선생님의 진소란 심정을 알것 같습니다.

"포도 제군 여러분, 봄엔 꽃샘추위로, 올 여름엔 유난히 더웠는데도 그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대학생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지역에서 어려서부터 엘리트로 관심을 받고 자랐습니다. 한 번 엘리트는 영원한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출하 되는 그 날까지 열과 되는 일 없이 잘 익어주기 바랍니다. 끝까지 옆에서 내가 돌봐주겠습니다"

그런 포도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루어 짐작케 하는 내용에선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남편 벨트 구멍 줄어드는 것만 좋아했다. 얼굴이 쪼글쪼글하다. 새까매졌다. 어깨도 처졌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두 분의 농사 짓는 체력이 대단하시네요.
포도 상자 옮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터인데---.
그래도 포도송이들을 보면
행복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