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이렿게 보냈다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자유글 이렿게 보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782회 작성일 21-09-25 17:02

본문

이렇게 보냈다

윤복순

 

아들이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데 8시 조금 못되어 도착했다. 명절 교통체증으로 별로 고생하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손자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전부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 나왔다. 아들은 얀센 백신을 접종 받았다. 예비군이라서 맞을 수 있었는데 백신 덕을 톡톡히 봤다. 2~3주 전, 팀장과 식사를 했는데 팀장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도 아들은 음성을 받았다. 며느리 손자 손녀는 미 접종자라 아들만 왔다.

아들과 남편은 장보기를 하러 가고 나는 약국 문을 열었다. 예약 받은 포도를 빨리 가져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포도가 보이니 여러 사람들이 와서 살 수 있냐고 묻는다. 다 끝났다고 예약 받은 것이라고 죄송하다고 1년 뒤에 보자고 했다.

추석날과 다음 날은 요란한 비가 예보되어 있다고 남편과 아들은 미리 성묘를 갔다. 내가 산소에 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런 음식도 준비가 되지 않아 술과 포도만 가지고 갔다. 사과 배보다 남편이 직접 농사지은 것이니 포도 한 송이 놓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내 나이쯤 된 아저씨가 약국 문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약사님 연세에 돈이 없어 오늘 같은 날 약국 문을 열었겠어요.”라며 정말 고맙다고 고개까지 숙인다. 난 동네약국이고 평일에도 9시 까지 문을 열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우리는 복이 많아요. 늦게까지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인사를 자주 받는다. 한 가지는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나도 기쁘다.

오후 5시에 약국 문을 닫고 차례 음식 준비를 했다. 나물 세 가지만 하려고 했는데 도라지는 국산이 없어 나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샀다고 한다. 고사리 나물은 봄에 뜯은 걸로 만들고 시금치나물을 하려 했는데 목사님이 주신 가지가 많아 가지나물로 대체했다. 색상이 맞지 않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차례상 잘 차리는 것만큼 중요하다.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샀다. 전도 송편도 떡도. 조기, 병어 대신 서대, 홍어 등 생선은 남편이 맡았다. 돼지고기 쇠고기 적도 뚝딱 했다. 장봐다 손질을 다 해 놨기에 수월했다. 예전에 비하면 겨우 시늉이나 내는 편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리 없다.

새벽부터 운전하고 온 아들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명절 맛은 나지 않지만 몸은 편하다. 추석명절의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어질 수는 있을지, 세태에 따라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일찍 잠이 깬 남편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과일을 숫자 맞춰 씻어 놓고, 목기를 닦아놓았다며 깨운다. 병풍을 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술 올릴 사람도 없으니 차례도 금방 끝났다.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아침 식사하면서 남편이 아들에게 차례주 한 잔 마시고 푹 자라. 운전하고 올라가려면.” 나도 한목 거들었다. “소영()이네 올 때까지 대대적으로 낮잠이나 자자.” 성묘를 미리 다녀와서 한갓지다.

설거지를 마쳤을 때 거짓말같이 비가 갰다. 비가 갠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이다. 작년 이맘때 버섯 땄던 기억이 나서 버섯이나 따러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도 아들도 술을 했으니 어떻게 할까. 아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남편은 어제 부자유친 했으니 오늘은 아들 독차지 하며 모자유친 하란다. 버섯이 없을 거라면서.

원대병원 앞까지 걸어가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도 거리도 한가하다. 정류장에 앉아 아들이랑 둘이서 사진을 찍었다. 버스 안에도 우리 둘밖에 없다. 우리를 위해서 명절날도 못 쉬고 운전하는 기사님이 고맙다. 뒷북치기 선수인 나는 그때서야 송편이라도 몇 개 가지고 올 걸, 이런 마음을 얘기하니 기사는 말만으로도 고맙단다.

버섯은 한 티끌이 없다. 버섯 따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다. 올해는 시절이 빠른 가 상사화도 다 시들었다. 맥없이 못 먹는 버섯만 발로 툭툭 찼다. 버섯을 많이 따서 자랑을 신나게 늘어놓으며 남편 코를 남작하게 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아들은 차 시간도 모르고 나가 적당히 기다리니 차가 오고, 버섯 하나 없는 빈산을 느릿느릿 찾고, 도로변에 절푸덕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직장얘기 애들 키우는 얘기 서울 사람들 얘기를 엄마랑 나누면서 여유라는 단어의 뜻을 확실하게 알았다고 한다.

오후에 딸네 식구들이 왔다. 사돈께서 인삼을 보내줬다. 금산이 댁이니 매년 이리 많이 보낸다. 깨끗이 씻어 베란다에 널면서 누구 몇 개 누구 몇 개 몫을 지웠다. 마음이 대보름달 만큼이다 넉넉하다.

아들은 올라가고 딸 사위와 공원으로 달맞이를 나갔다. 하늘도 달도 말할 수 없이 깨끗하다. 식구들의 건강을 빌었다. 초등학교 1학년 쌍둥이들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하니 코로나 빨리 물러가라고 했단다. 나보다 낫다.

 

딸네랑 가까운 영광여행이나 할까 했는데 딸이 수업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찍 가겠단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딸의 열정이 부럽다. 손자손녀랑 여행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포도밭에 갔다. 애들 먹을 것을 한 알 한 알 상하지 않게 따서 4상자 만들어 줬다.

애들이 떠나고 나니 허전하다. 남편이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할 일이 있는데도 그냥 가자고 한다. 매일 다니던 길이 아닌, 동네로 논길로 길을 잡는다. 들녘의 색깔이 참 곱다. 갑자기 우리 논에 가보고 싶다. 시내버스를 타고 논이나 둘러보고 오자고 하니 논의 위치를 모른단다. 친정아버지 살아생전엔 당신이 관리해 줬고 지금은 남동생 친구가 맡아서 짓는다.

청소를 하다 친정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전날 남편이 나 약국 문 닫는 시간에 맞추느라 장인 장모님께는 못 들렸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바빠서 못 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놀면서 안 가는 것은 양심불량이다.

남편은 포도 출하가 끝나니 긴장이 풀린 것 같다. 점심에 술 한 잔 하고 잠이 들었다. 한낮이라 햇볕도 뜨겁다. 4시쯤 출발하자고 할까 생각중인데 남편이 깼다. 시내버스타고 성묘가자고 하니 아주 좋아한다. 얼마 만에 시내버스 타고 친정에 가는 걸까. 애들이 초등학생 때까지 어린 것들 손을 잡고 버스가 오지 않아 가네 못가네를 몇 번이나 해야 차가 왔었는데.

시내버스 타고 친정동네에 갈 생각에 마음이 젊어졌다. 시내버스 외엔 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애들은 어리고 기다리다 지치고 버스에서 내려 애기를 없고 20분 이상 걷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은데 시내버스를 타고 친정 부모님 산소에 간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

시내버스 시발점이 공원 뒤라서 그곳으로 갔다. 마트 앞에 차 시간표가 있다. 3시 몇 분차는 갔고 4시 반 차가 있다. 차는 한 시간에 한 대 꼴이다. 정류장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기분이 가을 하늘의 솜털구름이다.

4시 반이 되었는데 차가 오지 않는다. 마트 주인 말로는 휴일이라서 차 한 대가 쉬는 모양이라고 한다. 520분차로 가면 산소까지 걸어야 할 시간을 감안하면 캄캄할 것 같다.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하나도 속이 상하지 않고 시간 낭비했다는 약 오른 마음도 없다. 한가위라서 일까.

 

2021.9.23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추석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날씨가 참 좋아요.
가을 맘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외아들인 때문에 매년 명절이면 부모님을 위한 차례를 모시는 까닭에 서울쪽의 사촌이 모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차례엔 아예 참석을 못하는 처지랍니다. 그래서 두 아들과 손주외 함께 차례 모시고 나면 하루 종일 절간처럼 고요가 깃들 뿐이지요. 추풍령 이남에는 사돈에 팔촌도 없으니 명절엔 늘 그렇게 쓸쓸이 지낸답니다. 그래도 올 추석날 밤엔 두둥실 떠오른 달보면서 지난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