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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무거나 경험하려 들지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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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4건 조회 909회 작성일 21-10-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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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경험하려 들지 마소


아내가 아프다면 더럭* 겁부터 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미덥지 못한 아내의 건강 때문에 생긴 주책없는 증상이다. 사실 나도 강건한 체질이 아닌 때문인지 여태까지 잡다한 병치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나보다도 한층 더 병약한 모습을 보여 엄청 신경이 씌인다.


최근의 일이다. 아내가 지난 연말 무렵부터 창원으로 프랑스 자수(刺繡)를 배우러 다닌다. 자세한 내막을 샅샅이 꿸 수는 없지만 선생님이 연하(年下)로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며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던 전문가라 했다. 여럿이 함께하는 공식적인 강좌가 아니라 개인 집으로 찾아가 교습을 받는 눈치이다. 때문에 점심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식사를 제공해 준단다. 그런데 얼추 3주 전에 점심을 얻어먹고 돌아온 직후 심한 복통과 설사를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멎을 기미를 도통 보이지 않았다. 단골 병원을 찾아 진료 후에 약 처방을 받아 지시대로 따라도 요지부동이었다. 또 다시 덜컥 겁부터 났다.


겉으로 드러나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가지가지 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시 병원을 찾아가도록 내몰며 채근했다. 이번에는 좀 더 큰 병원으로 찾아가 X-Ray도 촬영하고 링거도 맞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진료 소견을 듣고 안심하며 여러 날 복용할 약을 처방 받아 왔다. 그렇게 세이레* 가까이 죽으로 연명하다가 어제부터 밥을 조금씩 먹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다. 다음 주일 목요일(5월 27일)로 예약된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백신을 접종 받으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할 터이다. 나는 을유생(乙酉生)이라서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접종했다. 하지만 기축생(己丑生)인 아내는 이제 겨우 1차 접종을 시작할 참이다.

 

부부가 서로 닮지 않아도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운명이 엇비슷한 둘을 짝지어준 걸까. 우리 내외는 튼튼한 체질로 태어나지 못했던가 보다. 내 생애 최초로 겪었던 건강 위기 얘기이다. 기껏해야 너 댓 살 무렵에 돼지고기를 먹고 탈이나 반 년 가까이 지독한 고생을 거듭하며 사경을 헤매다가 천우신조로 겨우 목숨을 건졌었다. 그 당시 주위의 모든 이들이 사람 노릇 못할 것 같다고 걱정을 많이 했을 정도였단다. 그리고 20대부터 50대 초반까지 고질병인 치질로 적지 않은 고생을 겪었다. 자그마치 20여 년 이상 끌탕을 치며 고생하다가 우연히 소개 받았던 의사의 간단한 수술을 받고 완치되었다. 한편, 그 중간인 30대 후반엔 고속버스 교통사고로 6개월 동안 입원하기도 했었다. 신이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었는지 고희(古稀)를 넘기면서 가벼운 뇌졸중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관련된 투약이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허약 체질을 빼닮은 아내는 유감스럽게도 나보다 한 수 위를 점유하려고 덤벙대고 있다.


지난 82년 여름 우리 가족은 몽땅 고속버스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 후 86년 봄 아내는 대장 절제를 위해 3차례나 배를 개복하고 닫는 위험한 수술을 반복하며 거의 두 달 남짓 입원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엔 난소에 물혹이 생겨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험난한 병고를 견뎌낸 뒤인 90년대 중반 무렵 죽이 척척 맞는 지인들과 유럽 여행길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때 원인 불명의 복통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하루인가 이틀을 병원에 입원했던 쓰디쓴 경험도 있다. 결코 평탄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별 탈 없이 지내려니 했다. 소박한 바람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던가. 지난 해(2020년) 정초에 심한 복통이 며칠 간 지속되어 진동한동 병원을 찾아 정밀 진찰한 결과 야속하게도 담낭 결석으로 판명되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간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지루한 기다림 끝에 가까스로 담낭 절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던 관계로 달포 남짓 호되게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


아내는 거의 평발에 가깝다. 그래선지 도무지 걷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줄을 제대로 꿰지 못했던 천려일실의 불찰이 하나 있다. 지난 86년 큰 수술 후에 퇴원하여 얼추 반 년 동안 두문불출 한 채 방에 누워 지냈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했던 때문에 마산에 친구가 하나도 없어 밖에 나다닐 핑계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운전이라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절절한 바람에서 승용차를 구입해 무조건 열쇠를 넘겨줬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었다. 그 시절부터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시나브로 길들여져 몇 발짝만 움직여도 차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척추 협착증까지 생긴 지금엔 아파트 단지 내의 둘레 길을 걷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처지로 전락하여 막막하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아내가 남편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단현(斷絃)*의 아픔이 두렵다거나 애절한 사랑의 아픔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는 이유가 결코 아니다. 오로지 남정네가 청승맞은 외기러기가 되어 잡다한 일상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겪는 수모를 감당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아내가 겪을 험한 꼴을 온새미로 지켜본다는 사실은 내가 직접 고문을 당하는 이상으로 곤혹스러울 터이기에 피하고 싶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아내에게 제발 건강에 관한한 섣불리 ‘아무거나 경험하려 들지 마소’라고 주제 넘는 참견을 하고프다. 원하는 대로 될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다가 뜬금없이 언젠가 상당한 주목을 끌었던 “임아! 저 강을 건너지 마소”라는 영화가 불현 듯 머릿속에 언뜻언뜻 어른거렸다.


=======


* 더럭 : 어떤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갑자기 생기는 모양. 또는 어떤 행위를 갑자기 하는 모양.
* 세이레 : 아이가 태어난 후 스무하루 동안. 또는 스무하루가 되는 날. 대개는 이날 금줄을 거둔다.
* 단현(斷絃) : 현악기의 줄이 끊어짐 또는 그 줄. 금슬(琴瑟)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가 죽음을 이르는 말.


경남문학, 2021년 가을호, 통권136호, 경상남도문인협회, 2021년 9월 5일
(2021년 5월 22일 토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 사모님이 편찮으시면 다럭 겁이 난다는 말씀이 어떤 기분인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요즘은 돈 많은 사람도 잘생긴 사람도 부럽지 않고 튼튼한 몸을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선생님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두 분 오래 강건하시어 회혼례까지 맞으시길 바라봅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이런 가을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해니 쓸쓸해지기도 하네요.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사모님의 병환에 선생님의 사랑과 애정에 감동을......
교통사고와 담낭 수술등 숱한 심적 고생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건강 잘 챙기시고 내내 평강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나 경험하러 들지 마소" 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주소 문자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사모님의 건강 걱정 하시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원래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 아주 오래오래 산다고 해요.
자주 아프니 병원에 자주 갈 것이고 적절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니까요.
두 분의 삶의 여정에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날씨가 선선해 졌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세요.

임영숙 올림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남편이 건강해서 오래 살면 아내가 먼저 가고요.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 남편이 먼저 가는 것 같아요.
남편과 아내, 각자 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겠지요.
두 분이 오순도순 도와주고 살다 앞서거니뒤서거니 갈 수 있다면 행복한 노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