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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난다/이종건 [겨울 신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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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7회 작성일 19-12-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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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난다
                           이종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간장 달이는 향내가 꼼꼼하게 난다. 우리 집 호수(號數)에 가까이 갈수록 속일 수 없는 노인의 냄새이다. 그나저나 유쾌한 향내는 아닌 것 같다.
 계절이 바뀌어 창문을 좀 닫아 놓으니 여름철보다는 느끼는 정도가 심해졌다
. 답답한 공간에 괴롭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단독주택에 살 때는 잘 넘겼지만, 아파트살이가 불과 3개월째인데 이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하였다.
그러나 나름대로 조치를 하고 대비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의 나의 일상이다. 이웃 호수()의 눈치가 보인다. 아침마다 기저귀를 벗겨서 종량제 봉투에 집어넣고 벗긴 자리는 물수건으로 닦아내어 새로운 기저귀로 입혀드리는 동안 호흡을 참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적응해야 한다. 얼굴을 씻기고 축 늘어진 어깨를 부축하여 식탁에 겨우 앉힌다. 치아가 온전하지 못하여 틀니를 끼우기도 빼기도 하여 식사는 매일 죽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나 밥을 달라고 고집하신다.
 

오늘은 생선회가 먹고 싶다 하여 중앙시장에서 부드럽게 장만하여 아내가 밥과 함께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맛있게 드셔 보기가 좋다.
이미 어머니는 뇌에서 대소변의 인식을 하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줄줄 하여 항문이 열렸다고들 말한다. 간헐적 치매의 증상으로 함께 생활한 지가 7년이다. 하루 세 번 기저귀를 갈고 이틀에 한 번은 전신 목욕을 하지만 하다가도 줄줄 이다. 빨랫감은 늘어나면서 집 안에 노인 향이 그윽하다.
당신의 한평생 삶에 비하면 긴 시간은 아니나 하루하루의 생활은 남다르고 특별한 시간의 연속이 주변의 삶을 예사롭게 하지 않는다. 식구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지라 제각각 알아서 준비하고 감내한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공주로 계시는 한 분이시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들어오면 창 닫

아라.” 시도 때도 없이 밥 줘.”하신다. 어머니의 위장을 생각하여 식사로 죽을 드리면 죽은 싫다.” “떡을 먹고 싶다.” 간식으로 과일 깎아 주라.” 한 끼 거르기라도 하면 허기가 져 엉덩이를 밀고 식탁까지 행차하신다. 그러면 아랫도리는 범벅이다.
미리미리 시간을 맞춰 모셔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주변의 고통이 더 심하다.
공주는 언제나 배가 부르면 잠이 든다. 깨어 있으면 언제나 배가 고프다. 먹을 것이 가까이 있으면 즐겁다. 공주는 먹기 위해 사는가 보다. 백발 머리에 뽀얀 얼굴이 언제나 행복하게 보인다. “공주는 외로워…….” 라고 누가 말했나? 공주는 주변을 개의치 않는다. 대신에 자신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불철주야 공주님 담당 나의 아내는 시어머니를 사랑으로 정성껏 돌봐주는데 일상의 모습에서 천사 그 이상의 것을 본다. 온 가족은 할머니를 향해 인내와 양보로 매사를 살아간다. 우선으로 할머니가 먼저이고 그다음에 우리는 할머니에게 소속된다.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회생활에서도 다소의 불편함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가 외출할 시에는 가족 중의 한 명이 보초를 서는 게 우리 가족의 불문율이다. 나는 희망과 소망이 고마울 뿐이다.
 

긴 병에 효자 난다.”
하지만 이것은 자녀 교육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할머니의 생활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로병사의 생활을 오감으로 체험하고 있을는지.
 

 

 

 

*. 나이 든 부모의 병환을 겪는 일이야 일상이겠지만 그 가운데 부모가 수년 동안이나 치매를 겪는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치매 노모를 수발드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일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느 한 순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약한 내 정신이라면 버텨낼 수 있을까. 정신 분열이 올지 모른다.
 

나는 치매 노모 앞에서 성자가 된 부부를 보았다. 이글은 [겨울 신록]에 나타나는 효심의 지극히 일부이다. 특히 저자 아내의 신앙적 효심처럼 느껴지는 수발 이야기를 읽자면 마치 조선시대 어디쯤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치매 노모를 공주라 표현한다. 저자 자녀들도 묵묵히 감내한다.
도대체 이들 가족의 효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내게도 노모가 있어선지 저자 부부 이야기가 자꾸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종건의 [겨울 신록], 수십 년의 직장에서 정년퇴임한 저자가 지나온 삶과 현재를 되돌아보고, ‘백세시대의 제2기 인생 설계와 경영에 대한 지혜를 제시하는 책이다.
당시 100세 가까이 살았던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가 묘비명에 남긴 말이 이 책의 주된 메시지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_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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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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