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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 출산편/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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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2회 작성일 19-12-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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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 출산 편
 
                                무라카미 하루키
 
얼마 전에 스물한 살이 된 장수 고양이 ‘뮤즈’에 대해서 썼는데, 이 고양이는 기묘한 에피소드를 많이 갖고 있어서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정도이다), 좀 더 이야기를 보태기로 하겠다.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서 몸이 움츠러든다.”는 미즈마루 씨에게, 또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한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미즈마루 씨-  하루키의 에세이가 연재되는 신문이나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화가)
 
뮤즈는 암코양이여서 몇 차례 새끼를 낳았다. 나는 딱히 혈통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어서 처음부터 밖으로 내보내서 제멋대로 나다니게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새끼들은 모두 아버지를 모르는 잡종뿐이었지만, 어느 새끼 고양이나 전부 생김새가 예쁘고 영리하고 귀여웠기 때문에 언제나 눈깜짝할 사이에 분양되어버린다. 그런데 뮤즈가 일곱 살인지 여덟 살인지 되었을 때, 알고 지내던 수의사가 “이젠 나이도 꽤 먹었으니 고양이의 몸을 위해서라도 슬슬 피임 수술을 해주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해서 그대로 피임 수술을 시켜주었다. 그때까지 전부 다섯 번 정도는 임신해서 새끼를 낳았다.
 
고양이는 보통 사람 눈을 피해서 어두운 곳에서 몰래 새끼를 낳는다. 내가 그때까지 길렀던 고양이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 낳은 새끼도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 뮤즈만은 반드시 밝은 곳에서, 그것도 내 바로 옆에서 새끼를 낳았다. 진통이 찾아오고 드디어 새끼가 태어나려고 하면, 야옹야옹 하고 울면서 내 무릎에 안기듯 기댄다. 그리고 호소하듯 내 얼굴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어 나는 “그래, 그래.”라고 말하면서 뮤즈의 손을 쥐어준다. 그러면 고양이도 앞발로 지그시 맞잡는다. 그러다 마침내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다리 사이에서 새까맣게 젖은 태아가 굼실굼실 얼굴을 내민다.
 
새끼를 낳을 때, 뮤즈는 상반신을 세운 채 양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나는 그런 뮤즈를 등 뒤에서 떠받치면서 양손을 잡고 있다. 고양이는 가끔씩 뒤돌아보면서, “제발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라고 말하는 듯한 요염한 눈초리로 나를 지그시 응시한다. 새끼가 밖으로 나오면 나는 그 태반을 자르고 버려준다. 고양이는 그동안 새끼 고양이의 몸을 사랑스러운 듯이 날름날름 핥아준다.
 
 
그것만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 고양이는 언제나 다섯 마리나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한 마리를 낳고 나서 다음 한 마리를 낳을 때까지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처음 진통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 새끼 고양이를 다 낳을 때까지 대체로 시간이 2시간 반쯤 걸리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와 뮤즈는 내내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풍경적으로도 무척 이상하고,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작업이다.
 
게다가 이 고양이는 웬일인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밤중을 지나서 새끼를 낳는다. 나는 그무렵 가게를 하고 있어서, 그렇잖아도 육체노동에 녹초가 되어 있는데, 한밤의 2시부터 새벽녘까지 고양이의 출산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니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도중에 아내와 잠시 교대라도 하고 싶지만(졸리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으니까), 뮤즈는 어찌 된 셈인지 새끼를 낳을 때에는 나에게밖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종종 “혹시 당신 새끼 아니에요?”라고 놀려댔는데, 내게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아비 고양이는 근처의 고양이이다. 내가 아비라니 어처구니없다. 야옹야옹.
 
 
하지만 출산을 하고 있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나와 그녀와의 사이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뭔가 중요한 일이 행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명확한 인식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것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양이냐 인간이냐 하는 구분을 초월한 마음의 교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로 기묘한 체험이었다.
 
왜냐하면 - 세상의 대부분의 영리한 고양이가 그러한 것처럼 - 뮤즈도 평소에는 우리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가족으로서 사이좋게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장의 얇은 막 같은 것이 존재했다. 때때로 어리광은 부리긴 해도, ‘나는 고양이, 당신은 인간’이라고 하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특히 이 고양이는 영리한 만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새끼를 낳을 때만은 뮤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배를 가른 전갱이처럼 유보 없이 내게 맡겼던 것이다. 그때 나는 마치 깜깜한 어둠 속으로 조명탄이라도 쏘아 올린 것처럼, 그 고양이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속속들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만의 인생이 있고, 그에 걸맞은 생각이 있고, 기쁨이 있고,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출산이 끝나면, 뮤즈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래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냉정한 고양이로 되돌아갔다.
고양이는 어딘지 이상한 존재입니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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