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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연설/페이터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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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해드림출판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22회 작성일 19-11-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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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연설



사람의 칭찬 받기를 원하거든 깊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 그들이 어떠한 판관(判官)인가, 또 그들이 그들 자신에 관한 일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가를 보라. 사후(死後)의 칭찬받기를 바라거든, 후세에 나서 너의 위대한 명성을 전할 사람들도, 오늘같이 살기에 곤란을 느끼는 너와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진실로 사후의 명성에 연연해하는 자는, 그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의 하나하나가 얼마 아니 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기억자체도 한동안 사람의 마음의 날개에 오르내리나, 결국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네가 장차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칭찬에 그렇게 마음을 두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그것은 마치 너보다 앞서 이 세상에 났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호머의 시구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阿諛者)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길 자나, 모두가 다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난 것으로, 얼마 아니 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 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네가 죽은 몸을 의탁(依託)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현존(現存)하는 것, 또는 인제 막 나타나려 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속(迅速)히 지나가는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라. 그들의 실체(實體)는 끊임없는 물의 흐름, 영속(永續)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닥 모를 때의 심연(深淵)은 바로 네 곁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서러워하고, 혹은 괴로워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무한한 물상(物象)가운데 네가 향수(享受)한 부분이 어떻게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許與)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微小)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기꺼이 운명의 직녀(織女) 클로토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女神)이 너를 실 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싸움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에는, 때때로 그들의 분노와 격렬한 패기(覇氣)로 오늘까지 알려진 사람들…, 저 유명한 격노(激怒)와 그 동기를 생각하고, 고래(古來)의 큰 싸움의 성패를 생각하라. 그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전진(戰塵)의 자취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야말로 먼지요, 재요, 이야기요, 신화(神話), 아니 어떡하면 그만도 못한 것이다. 일어나는 이런 일 저런 일을 중대시하여, 혹은 몹시 다투고 혹은 몹시 화를 내던 네 신변의 사람들을 상기하여 보라. 그들은 과연 어디 있는가? 너는 이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는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네 육신과 영혼을 생각해 보라. 네 육신이 차지한 것은 만상(萬象) 가운데 한 미진(微塵), 네 영혼이 차지한 것은 충만한 마음의 한 조각. 이 몸을 둘러보고 그것이 어떤 것이며 노령(老齡)과 애욕(愛慾)과 병약(病弱) 끝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또는, 그 본질, 원형에 상도(想到)하여 가상(假想)에 분리된 정체(正體)를 살펴보고, 만상의 본질이 그의 특수한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생각해 보라. 아니, 부패란 만상의 원리 원칙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만상은 곧 진애(塵埃)요, 수액(水液)이요, 악취(惡臭)요, 골편(骨片). 너의 대리석은 흙의 경결(硬結), 너의 금은(金銀)은 흙의 잔사(殘渣)에 지나지 못하고, 너의 명주옷은 벌레의 잠자리, 너의 자포(紫袍)는 깨끗지 못한 물고기 피에 지나지 못한다. 아! 이러한 물건에서 나와 다시 이러한 물건으로 돌아가는 네 생명의 호흡 또한 이와 다름이 없느니라.

천지에 미만(彌漫)해 있는 큰 영(靈)은 만상을 초와 같이 손에 넣고, 분주히 차례차례로 짐승을 빚어내고, 초목을 빚어내고 어린애를 빚어낸다. 그리고 사멸(死滅)하는 것도 자연의 질서에서 아주 벗어져 나가는 것은 아니요, 그 안에 남아 있어 역시 변화를 계속하고, 자연을 구성하고, 또 너를 구성하는 요소로 다시 배분되는 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변화한다. 느티나무 궤짝은 목수가 꾸며 놓을 때 아무런 불평도 없었던 것과 같이, 부서질 때도 아무런 불평을 말하지 아니한다. 사람이 있어 네가 내일, 길어도 모레는 죽으리라고 명언(明言)한다 할지라도, 네게는 내일 죽으나 모레 죽으나 별로 다름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내일 죽지 아니하고, 일년 후, 이년 후, 또는 십년 후에 죽는 것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도록 힘써라.

만일 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이니까, 너는 그것을 쉬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일 죽음에 부수(附隨)되는 여러 가지 외관(外觀)과 관념을 사리하고, 죽음 자체를 직시한다면, 죽음이란 자연의 한 이법(理法)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람은 그 이법 앞에 겁을 집어먹는 어린애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죽음은 자연의 이법이요, 작용일 뿐 아니라, 자연을 돕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철인(哲人)이나 법학자(法學者)나 장군(將軍)이 우러러 보이면, 이러한 삶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라. 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때에는 네 조상 중의 한 사람, 옛날의 로마 황제의 한 사람을 생각하여 보라. 그러면, 너는 도처(到處)에 네 현신(現身)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라.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대체 어디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네 자신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머물러 있으라. 적어도, 치열한 불길이 그 가운데 던져지는 모든 것을 열과 빛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이러한 세상의 속사(俗事)나마 그것을 네 본성(本性)에 맞도록 동화(同化)시키기까지는.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 날의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不正)한 판관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에서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作者)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너를 물러가게 하는 것도 혹은 선의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재미난 기사

 

편집 2004.11.30(화) 12:03  

  “이래야만 내 마음에 평정이 올 것 같아서”



△ 8천여 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고교 국어>에 실렸던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을 10개 종합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 “마음의 평정만이 진짜 행복”임을 강조한 주인공 강송식씨. 김미영 기자


[인터뷰] 

8천만 원 들여 10개 신문에 29년 전 국어교과서 광고한 강송식씨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렸다. 행복한 생활이란 많은 물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것을 사리(捨離)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


70년대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지금의 40대들이 고교 국어교과서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는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이다.

1975년도 국정교과서가 펴낸 <고교 국어>의 8페이지(190~197쪽)가 지난 23일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이날 신문광고에 실린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은 19세기 영국의 작가 페이터가 번역해 소개한,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서기 121~180)의 명상록 일부였다.

고교시절 교과서와 국어선생님의 풀이에 따르자면, 앞서의 인용문을 소개하는 이양하의 동기는 ‘현실에서의 실의와 좌절, 분노와 회의’이다.

이양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을 집어 들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고 글에서 밝히고 있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아니 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 본다. 그리하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움으로, 분노로,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릴 때…

종합일간지 전면광고로 실린 고교 국어교과서 8페이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누가 어떤 목적으로 29년 전의 고교 국어 교과서를 발췌 수록해 10개 일간지들에 전면광고를 집행했을까?

일간지에 의견광고는 다양하게 실린다.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각종 단체들의 성명이나 정부부처의 담화가 일반적이지만, 이따금 개인들의 의견광고도 실려 눈길을 끈다.

IMF 당시 모피제조업체인 가우디의 배삼준 회장도 개인 자격으로 여러 차례 의견 광고를 냈고, 29일에는 익명의 한 시민이 29일 국가 화합을 강조하며 `노무현 대통령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신문에 의견광고를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개인들이 내는 의견광고들이 주목받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영리와 무관한 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개인 스스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내서 광고를 한다는 사실에서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들이 내는 의견광고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하여’  ’정치발전을 위하여’ 혹은 29일의 광고처럼 ’대통령에게 바란다’식의 공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그러나 23일 실린 국어교과서 ’페이터의 산문’ 광고는 특이했다.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아니 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라는 메시지는, 사회를 향한 울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철학자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처럼, 행복을 위해서는 스토아철학자처럼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렸다”는 유심론에 침잠하라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울림이었다.

짜증을 부르는 정치권의 다툼과 장기화되고 있는 불황과 대량 실업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페이터의 산문’은 “마음의 위안”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유별난 개인이 궁금했다.

거액의 광고료를 쏟아 부으며, 이런 광고를 한 개인을 찾아가 만났다.


“권력과 부, 명예 쫓는 시대 ‘마음의 평안’ 말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것인데, 로마의 황제가 ‘다 부질없다. 마음 편한 게 첫째다’라고 말한 거예요. 부, 권력,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말이예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그 말이 마음속에 남아 있고, 이 말의 뜻을 몸소 깨닫고 있어요. 20년 교직에 몸담았을 때도 학생들에게 이 말을 강조해 왔고요.”

이 광고를 집행한 강송식(67)씨는 정수기 사업을 하는 회사(한우물정수기) 사장으로, 이번 광고에 8천여만 원을 들였다. 정수기 광고는 없었다. 자그마하게 “OOO가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마음의 평안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게 유일했다.

강 사장은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페이터의 산문’을 보고, 많은 사람이 삶에 대한 용기를 북돋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광고를 실었다고 말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페이터의 산문’을 복사해서 나눠주곤 했죠.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큰돈을 들였지만, 이렇게 해야만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았어요. 사업도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접어든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고요. 그래야 제 마음의 ‘평정’이 올 것 같았거든요.”


‘20년 교직생활 버리고, 정수기 사업 뛰어들어’…이혼위기까지 초래

강 사장이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지는 올해로 19년째다. 경기고와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경기고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그는 사람을 좋아한 탓에 ‘술’을 즐겼고, 78년 고혈압·간염·동맥경화증이 한꺼번에 닥치는 바람에 몸져누워야 했다. 이때 ‘부항요법’을 접하게 됐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건강한 몸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항의 효험을 체험한 그는 교편생활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부항전도사’로 나섰다. 부항전도사로 나선 뒤 자연식을 접했고, 자연스럽게 ‘몸에 좋은 물’을 찾아 나섰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산성화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혈액이 탁해지고 산성노폐물이 증가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죠. 약알칼리수를 마시면 산성화된 인체를 중화시키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어요.”

강 사장은 82년 ‘겁 없이(?)’ 정수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정수기를 개발한다는 얘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리고 나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엄청난 개발비가 들어갔다. 한때 가정파탄의 위기도 겪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친구, 제자, 친지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어요. 1987년 마침내 정수기를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술투자에 집중했죠.”

그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그는 현재 직원 68명에, 연 매출 70억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회사를 키웠다.

그는 성공의 이면에 ‘페이터의 산문’이 한몫했다고 강조했다.

“부와 명예를 쫓았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좋은 물을 만드는 것, 그 일을 할 때 제 마음이 가장 평안했었거든요. 지금도 사업에 있어서 큰 욕심을 내지 않아요. ‘페이터의 산문’의 가르침 때문이었죠.”

-하략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아래는 지난 11월23일 지면 광고로 실린, ‘페이터의 산문’(75년 국정교과서 <고교 국어>)이다.


만일 나의 애독하는 서적을 제한하여 이삼권 내지 사오 권만을 들라면,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옛날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겠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아니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 본다.

그리하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내 마음에 달렸다." "행복한 생활이란 많은 물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것을 사리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

이러한 현명한 교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그 가운데 읽을 수 있는 외로운 마음,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생활의 필요조건이 되어 있는 마음, 행복을 단념하고 오로지 마음의 평정만을 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며, 목전의 현실에 눈을 감음으로써, 현실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현실을 아주 무시하고 망각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편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 그 위안은 건전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일종의 지적 오만 또는 냉정한 무관심이 황제의 견인주의의 자연한 귀결이요, 동시에 생활 철학으로서의 한 큰 제한이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반면, 견인주의가 황제의 생활에 있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되고, 견인주의자의 추구하는 마음의 평정이, 행복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의 한 기본적 자체가 된다는 것만은 또 수긍하지 아니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에 번역해 본 것은 직접 명상록에 번역한 것이 아니요, 월터 페이터가 그의 <쾌락주의자 에어리어스>의 일장에 있어서, 황제의 연설이라 하여 명상록에 임의로 취재한 데다 자기 자신의 상상과 문식을 가하여 써 놓은 몇 구절을 번역한 것이다. 페이터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세기말의 영국의 유명한 심리 비평가로, 아름다운 것을 관조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나는 그의 <문예 부흥>의 찬란한 문체도 좋아하니, 이 몇 구절의 간소하고 장중한 문체도, 거기 못지아니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황제의 생각도 페이터의 붓을 빌려 읽은 것이 없을 뿐 아니라, 한층 아름다운 표현을 얻었다 할 수 있지 아니한가 한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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