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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6:25
  •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
  • 이종화
  • 시집
  • 2015/05/05
  • 무선 170쪽
  • 979-11-5634-077-5
  • 10,000원

본문

‘잔혹한 동시’가 논란인 가운데, 이종화 시인의 새맑은 감성이 돋보이는 시집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가 해드림출판사(대표 이승훈)에서 출간되었다. 시의 생명은 감성이며, 시의 수명은 그 감성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가 결정한다. 물론 시에는 다양한 맛이 있지만 일명 명작 시들이 문명을 거슬러 영롱하게 빛나는 까닭은, 바로 그 맑은 감성 때문이다.

‘티 없는 감성’으로 상징되는 동심이, 더구나 ‘존속적 잔혹성’을 띠니 다들 더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엽기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이웃나라에서나 있음직한 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뜩이나 잔혹한 범죄가 끊이지 않은 이즈음인데다, 요즘 완구점을 점령한 내용을 보면 태반이 싸움이고, 요괴이고, 게임이어서 아이들 정서가 지극히 염려스러운 이때인지라, ‘잔혹한 동시’로 우리 사회가 화들짝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아무리 문학적 비평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감성의 시원이라 할 동심조차 그러하니 비난보다 걱정이 앞서 쏟아지는 것이다.
‘잔혹한 동시’를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우수수 뜰 만큼 어린 아이의 감성이 회자된 가운데, 이순(耳順)의 섬세한 감성을 대하니 아이러니 한 일이다.


시를 쓰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게 만드는 시집

이종화는 마치‘감성 테러리스트’같은 시인이다. 허덕이는 일상 가운데 잠시 손에 들린 시집이, 버드나무 이파리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팔랑거려 줄 것이다. 시인의 비세속적 감성이 오뉴월 들판의 바람처럼 불어오는 시집이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이다. 시가 좋은 까닭은 이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데 있기도 하다.

그날도 시린 등짝에
휘감던 바람
설레임마다 꿈이 흔들린
내가 보는 얼굴은
언제나 남쪽이었다.(남풍 중에서)

그곳에 어느 하루해가 끝날 무렵
나는 슬며시 바람으로 날아오를 것이며
황금빛 구름이며
오래 전에 찬란하던 은빛
그 달과 별들을 다시 맞이하리(물의 노래 중에서)

어느새 돌아누운 달
낯선 자국 너무 많아
내 술잔 부딪칠 데도 없네

그래도 이젠 건너야만 하리
머뭇대는 낙엽 한 줌과
남은 계절 조금, 잠든
귀뚜라미 한 마리쯤 싣고서(멍든 달의 노래 중에서)


문단에 이름이 없고 무명인,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종화는 문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시인이다.
무명이란,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뜻도 있거니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뜻도 있다. 후자 의미의 반대말은 유명이다. 현재 유명하지 않은 시인은 모두 무명 시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이름이 좀 알려진 시인조차 일반인은 이름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해 모 대학 학생들 세미나에 꽤 이름이 알려진 시인을 소개한 적 있는데, 행사를 준비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은 해당 시인을 대부분 알지 못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시인 9할은 무명인 셈이다.
이종화 시인은 그런 의미에서 오직 시로만 말하는 시인이다. 시인이 처음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왔을 때, 시인의 시들이 다른 출판사로 흘러가면 어쩌나 염려했을 만큼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 시들은 눈물처럼 시리게 빛나는 감성을 담고 있었다.

이종화 시들은 하얀 구름을 적시는 달빛 같은 시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까칠하고, 예민하고, 급하고, 불안한 현대인의 감성을 순화시켜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시를 쓰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별과 별 사이 어둠
어둠과 어둠 사이에 별, 어느덧
밤바람에 우듬지를 떠도는 저 이름 모를 새
그래, 낮은 시선에 진리는 불편했으나
진실만은 그런대로 따스했으니

나는 또 다시 흔들린다
저 넓다는 세상으로
갈잎 하나, 별 하나 돌아서도
이 작은 머리 하나 세우고.(가을 밤 중에서)


저녁 종소리 여위어도
노을마저 등져도, 아쉬움은 없으리
때로는 따스했던 사연들
회개의 시간만은 아직 혼란스럽다

이제 소리죽여 몰려드는
무색의 시간들, 밤 파도
갯바위 눈썹을 적시듯.(불면 중에서)

본인은 낙서 수준이라며 겸손을 앞세우지만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감성 테러’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시를 읽으면 그 시의 맑음이 곤한 영혼을 씻기거나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에 그런 감성이 있어야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종화 시집에는 좋은 정서의 기운이 충만하다. 독자들은 그의 시집에서 그 기운을 넘치도록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기성 시 형식의 리듬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이종화 시들을 읽으며 새로운 리듬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 멍든 달에게 댓글을

1
남풍
물의 노래
서시에 대하여
가을 새벽
별을 보며
가을주막
방랑자의 노래

멍든 달의 노래
완벽함에 관하여
경계인
천장지구
가을밤 1
낯선 풍경들, 낯익은
불면
침묵의 착각
막걸리 한잔
첫눈
늦여름, 2013
월하주사
그리움이란
뼈 속에 잠든 미이라
늙는다는 것
가을밤 2
꿈꾸는 자에게

2
어느 야경
나무로부터
포구의 단상
하시메 사우드
심장마비
늙은 농부의 시
겨울 지리산
카라카스에서 온 편지
사마르칸드 가는 길
극락조
난청의 계절
북촌
겨울바다 유감, 2013
산동네
전사의 넋두리
만시 탄시
감사의 묵념
산 넘어, 너머
순수의 시절
젊은 날개
아주 어릴 적
산사의 밤
밤 기러기
늙은 생각
백수의 송년사

3
헌터의 귀가
홍합
겨울 산책
겨울강
거미줄
늦가을
친구
겨울 동요
겨울 선생님
장마의 틈새
백수 일지
백수를 찾아서
슬픈 실루엣
아내
노숙자의 노래
라면
가을 메모
저 세상에 제출할 보고서
칼 가는 자의 노래
땅쟁이
신호
고사목
살아가며
미망

4
겨울숲
그렇게
해바라기
젊은 날
지난여름 새로 만난
귀향
겨울나무
그렇더라
봄소식
가을 담쟁이
헌터의 넋두리
봄바람, 2014
노가다 십장 1
노가다 십장 2
노가다 십장 3
물고기에게
상사 죽이기
침몰
갯바위 낚시
가을 아침
잠꼬대
겨울에 멀어진 것들
태몽
메밀꽃 필 무렵
가랑비
아기새

이종화 시인
시를 잘 쓰는 시인이다.
본인이야 낙서 수준이라며 겸손을 앞세우지만 시인의 시를 읽고 나서
‘감성 테러’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그의 시를 읽으면 내 영혼이 정화된 듯한 느낌이요, 곤한 영혼을 씻어준다.
인사동에서 출판계약 하느라 시인을 딱 한 번 만났다. 이 시인을 더 만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시인의 시에서 얻은 순수가 흠이라도 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에게 절대 짜증도 내서도 안 될 거 같다.
그의 시에서 얻은 것들을 절대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화 시를 읽으면 나도 무언가 쓰고 싶어서,
그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세상에 숨어있는 시어를 찾아 아름답게 엮어내는 시인 이종화.
그가 자연 속에서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그의 첫 시집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에는 그가 발견한 철학이 가득하다.

머문 듯한 순간은 결국, 제 갈 길을 가는 것
홀로 빛나고 싶지도, 부딪칠 일도 없으리
그 많은 그리움의 눈가에 위로가
가난한 사랑에는 눈부신 축복을
죽은 자의 무덤에도 더 많은 빛을
남겨진 자도 눈이 맑으면
가슴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
- ‘별을 보며’ 중에서

방랑자와 같이 여기저기를 떠돌며 그저 묵묵히 길을 걷다 발견한 것은 곧 그 자신의 모습이 된다.
목적지 없이 삶의 길에서 의미를 찾는 시인의 발걸음은 모험이라기보다는 유랑에 가까울 것이다.

神이 머물던 자리에만 남아 있다는 진리
기품 없이 늙어도 탈락은 없다
끝없는 끝을 향한 소리 없는 행진곡
어느새 고요해진 강물도
깊어진지 모른 사랑도
언젠가는 한 구석에 주름을 남기겠지
- ‘완벽함에 관하여’ 중에서

그의 시를 읽다보면 지는 노을 앞에 기도하는 나이 든 자의 두 손이 떠오른다.
삶의 충만함에 감사하고, 공허함에 탄식하는 두 손 모은 기도.
그 기도에는 깨달음과 연륜이 있다.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보내고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또다시 봄이다.
마른 가지에 스치는 바람이 추워도 시인의 말대로 개나리가 반가운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옹기종기 비둘기처럼 노인네들
사람은 사람이 되어야 하네, 한 소리
또 하고, 지나가던 바람도 바람답게 다시 멈췄다
올해도 산수유보다 개나리가 더 반갑네
휴가 나온 저 졸병들도 반갑고.
- ‘봄바람, 2014’ 중에서

아쉬움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중에 발견한 것은 곧 그 자신이었다.
떠가는 구름에도, 감나무 밑에도 속속들이 보이는 것은 모두 과거의 추억이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시집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찾은 듯하다.

첫 바람 부는 날
나는 나를 띄운다
뼛속까지 비운 설레임은
나의 첫 하늘

나는 나를 띄운다
저 하늘에
나의 삶을 인증받기 위하여.
- ‘아기 새’ 전문

- ‘시인의 말’ -
-안녕하세요. 옆방에 사는 아무갭니다. 생신인가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저 보다 연세가 많으신데 진작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오래, 오래 사세요..

어쩌면 생의 마지막 바람을 기다리는 낙엽처럼 방마다 하얗게 누운 노인들, 두 분이 찾아 오셨다.
엉뚱하게 위험하니 케이크에 불붙이지 마라시던 어머니, 그 분들도 치매 인 듯, 서로 더듬대며 모처럼 웃으신다.
하긴, 환갑도 지난 당신의 아들이 난데없이 시를 쓴다면 한 번 더 웃으실까, 침침한 달이 오늘 유난히 맑다.
추석도 내일 모렌데 달도 푸릇푸릇, 자국이 멍처럼 보이네, 넋두리일까, 돌아보니 별로 남다를 것도 없이 지난 시간들, 낙서처럼 댓글이라도 달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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