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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8:01
  • 공병 이야기
  • 최우석
  • 에세이
  • 2015년 8월 31일
  • 변형신국판
  • 979-11-5634-104-8
  • 13,000원

본문

공병대는 골병대가 아닙니다

공병[工兵, 군에서, 축성(築城)ㆍ가교(架橋)ㆍ건설ㆍ측량ㆍ폭파 따위의 임무를 맡고 있는 병과. 또는 그에 속한 군인. 출처:국립국어원]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남자 셋이 모이면 축구와 군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는 화두가 됩니다. 가끔 ‘공병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제게 되묻습니다.
“공병이면 노가다(건설 관련 작업자를 뜻하는 일제 잔존어, どかた)부대 아닌가?”
공병이라 하면 연상되는 공사 작업, 공사판 등 막연한 느낌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오해와 불신이 소문과 섞여서 ‘골병 이야기’가됩니다. “삽자루가 닳고 닳아 숟가락만 해져야 제대한다.” 또는 “공병대에 근무하면 온몸이 망가지고 관절 마디마디가 남아나지 않는다.” 심지어 “골병드니까 골병대다!”라고까지 하며 온갖 억측과 폄하가 이어집니다.
공병이 기술병과이기에 평시에도 바쁘지만, 또한 전투병과이기 때문에 전시에는 더 바쁜 병과입니다. 공병의 임무와 그 역할은 전시, 평시를 막론하고 막중합니다. 그래서 공병은 다양하면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병으로 전역하였기에 어떻게 공병이 지금처럼 꼭 필요한 병과가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부족한 글재주지만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썼습니다.
공병에서 근무한 경험을 보태어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심심풀이 오징어땅콩 같은 책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운 군사용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였으며 알기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삽입하였습니다. 또한, 읽기 쉽도록 별도의 주기형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책의 구성이 다소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쓴 책이니 여러분의 양해를 미리 부탁합니다.

서문-공병대는 골병대가 아닙니다
일러두기


1.
공병의 체계적인 운용은 로마군단에서 시작하다

로마군단은 곡괭이로 싸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강한 국가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희생 없이 절대 만들 수 없다

2.
공병의 근대적 발전은 프랑스에서 주도하다

프랑스 공병의 아버지 보방(Vauban)
보방의 요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전쟁터에서 앞치마 매는 병사
프랑스군은 세계를 점령하다
전장에서 공병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전투력은 ‘창의력’이다#1
프랑스 병사의 배낭에는 원수 지휘봉이 들어있다
참호전과 마지노선 그리고 전격전
3.
영국 공병은 전 세계를 누비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지지 않는 군대
영국 공병은 대영제국의 역사와 함께 한다
영국 공병은 영국연방의 역사와 함께 한다
공병장교는 세계를 평정하다
공병장교는 세계 최초로 전차를 만들다
영국 공병은 장간조립교의 원조이다

4.
공병은 전 세계를 누비다

장간조립교(the bailey bridge)는 전 세계를 누비다
영국 공병의 현용 조립교
공병의 존재이유는 부교(floating bridge, 浮橋)이다
M4T6 부교 체계
전장에서 공병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전투력은 ‘창의력’이다 #2
리본부교 체계 (RBS, Ribbon Bridge System)
M3 수륙양용 부교차량 (M3 Amphibious bridging vehicle)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역사는 경고한다

5.
미국 육군 공병대(USACE, U.S. Army Corps of Engineers)

미국 육군 공병대(USACE)는 전 세계를 연구하다
잘생긴 맥아더 원수는 공병장교

맺음말-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청주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
참고목록

최우석


필자는 예비역 육군 소령으로 1994년 공병장교로 임관하여 전후방 각지에서 복무하였다.
전역 후 현재는 ‘카고앵커’를 만드는 명원실업의 대표이다.

프랑스 공병이 근대 유럽에서부터 마지노선의 구축까지 근대적인 공병의 전성기를 누리는 결정적인 계기는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다. 이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위기의식을 느낀 주변 국가들은 프랑스를 군사적으로 위협한다. 1793년에 프랑스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모든 젊은이들을 군에 소집하는 국민개병제를 채택한다. 프랑스군은 혁명에 의해 애국심이 고취된 많은 청년들이 기꺼이 입대하여 우수한 자원병으로 충원된다. 그와 반대로 혁명으로 인해 처형되거나 해외로 망명하는 등의 여러 이유로 대부분의 귀족출신 장교들이 군대에서 떠난다.

귀족장교들의 공석에는 전문지식과 야망을 가진 평민출신 젊은 장교들로 채워지게 된다. 무엇보다 프랑스 장교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상위계급으로 진출할 수 있는 문도 활짝 열린다. 이에 비해 그 당시 유럽의 다른 국가의 장교들은 상류층의 전유물로서 세습되거나 매관매직에 의해 장교가 되었다. 또한 상위 주요직위는 실력이 아닌 출신 가문과 그 서열에 따라 진출하게 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은 한국군은 UN군의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공병은 대부분 해외 파병부대의 주력이며 일부 경계 및 의료 등 지원부대를 편조한다. 공병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본 책 ‘한국 공병은 세계를 누비다’ 참조
프랑스 공병은 혁명을 통해 몽주(Gaspard Monge, 1746 ~ 1818), 카르노 (Lazare Nicolas Marguerite Carnot, 1753 ~ 1823), 퐁슬레(Jean Victor Poncelet : 1788∼1867)와 같이 직무에 능통한 전문지식을 갖춘 유능한 공병장교들이 군의 상위 요직에 진출하게 되어 공병발전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 당시 프랑스군 공병 대령은 고백한다.
“예전 장교들과 새로운 장교들은 아마추어와 예술가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예전 장교들이 모두 우리를 떠났다 해도 그들보다 우리가 못하지 않을 것이다. 군대에 많은 경쟁이 생길 것이며, 병사들 중에서 장군이 나올 것이다.”

1800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는 제노바를 포위한 오스트리아군의 배후를 기습하기 위해 눈보라치는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협곡을 행군한다. 아래는 쿠아네(Coignet)라는 척탄병이 행군하던 중 일개 하사관과 사단장 간의 일화를 기술한 것이다. 당시 ​사단장이던 샹발락(Chambarlhac)장군이 대포수송조인 20여명의 척탄병들에게 더 빨리 움직이라며 지시하였다. 장군의 지시는 지친 병사들에게는 위험하고도 무리한 명령이었으며 무엇보다 이는 대포에도 무리를 주는 부당한 명령이었다. 이에 이 대포수송조의 조장인 포병하사관이 사단장에게 말한다.
“이 대포는 제 소관이자 제 책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가던 길을 가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척탄병들은 제 지휘 하에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명령은 제 몫입니다.”
이런 발칙한 답변에 사단장은 상기되어 다가가자 오히려 포병 하사관이 한발 더 다가서며
“당장 우리 앞에서 비켜서지 않으면 이 쇠지레로 당신을 갈겨 칠 테요. 당신 갈 길이나 가시오, 아니면 저기 아래로 던져버릴 테요!”

이 사단장은 그해 6월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의 치열한 초반 공세에 겁을 먹고 혼자 도망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단은 와해되거나 패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세를 바꾸어 결국 승리한다. 이 일화는 200여 년 전 프랑스군도 상관의 잘못된 명령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올바르게 대응했음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주어진 타당한 임무에는 주인의식가지고 책임지고 완수하려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프랑스군의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나타난 독재자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 ~ 1821)은 자신만의 전략과 뛰어난 작전술을 부합시켜 대륙을 제패한다. 이후 약 100여 년은 프랑스군은 유럽 최강 육군으로 명성을 떨친다.

당시에 ‘프랑스 병사들의 배낭에는 원수 지휘봉이 들어있다.’라는 말이 있다. 당시 프랑스 군에서는 일개 사병출신이라 하더라도 실력과 지휘력을 인정받으면 장교로 임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론 장군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대육군[그랑드 아르메(Grande Armée)]에서 26명의 원수 중 베르나도트와 같은 사병출신 원수들이 많았다. 그중 특히 베르나도트는 17세에 왕실해병연대 병사로 입대했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나폴레옹 제정시대에는 제국의 원수가 되었고 심지어 원정 갔던 스웨덴 왕에게 조차 마음을 얻어 1818년에는 스웨덴 왕위를 이어받아 1844년까지 다스린다. 그의 후손들이 현재 스웨덴 왕가를 이루고 있다.
- ‘프랑스 병사의 배낭에는 원수 지휘봉이 들어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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