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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9 11:53
  • 고급스러운 신앙
  • 김형진
  • 해드림출판사
  • 2016년 08월 29일
  • 신국판
  • 979-115634-153-6
  • 12,000원

본문

당진 신평교회 김형진 목사의 신앙에세이집 [고급스러운 신앙]


신앙인들의 의식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책

현재 충남 당진의 신평교회에서 목회 중인 김형진 목사가 신앙인들의 의식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책 [고급스런 신앙]을 해드림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은 ‘하나님은 고급이시다. 따라서 우리도 고급스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선 저자는 펴내는 글에서 ‘그림 감상 자세’를 통해 유럽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감상 태도를 예로 들고 있다. 그림에 관한 전통 있는 유럽 선진 국민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진지한 감상과 화가에 대한 존경 그리고 그 예술적 가치를 헤아려 보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감상이 아닌 ‘구경’이거니와 그림 가격에 먼저 관심을 두는데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기독교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왔다. 서양의 개신교가 400여 년 전통을 가졌다면 한국 교회는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짧은 역사에도 한국이 참으로 어려웠던 시대 들어온 복음은 강력한 힘이 되었고, 한국은 복음을 기반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폭풍보다도 더욱 빠르게 교회는 성장했으며, 세계 최고, 제일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기독교 강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참으로 어렵다. 많은 목사, 많은 성도, 좋은 건물, 좋은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왠지 공허하고, 왠지 부족하고, 왠지 저력이 없다. 그리고 사회로부터는 온갖 지탄을 다 받는다.


폭풍처럼 성장한 교회

이는 급하고 빠르게 성장해온 탓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좀 더 지혜롭고 완급조절을 잘 하면서 성장해왔으면 이런 문제가 덜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욱 큰 문제는 성장은 했지만 역사와 전통이 없다는 데에 있다.
역사와 전통은 많은 오류를 수정하고 개선하며,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켜온 흔적이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중요하다. 단점조차도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와 전통이다. 신체조건은 백인이나 흑인이 우월한데도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1위인 이유는 역사와 전통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의 기독교는 역사와 전통이 너무나도 짧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놀라운 성장은 이루었으나, 한국 사회의 단점이 장점으로써 교회에 적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단점으로 적용되고 말았다. 수정과 개선의 시간이 짧았던 탓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개선하여 적용했더라면 한국교회는 더욱 수준 높은 교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도 그렇게 앞서나가는 교회를 보고 본받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이만큼 교회를 세워나갔다. 수많은 세월이 필요한 부분을 우리는 단번에 이뤄낸 것이다. 이젠 그 능력을 내적인 가치에 쏟아 부어야 할 때이다.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는 단시간에 수준 높은, 고급스러운 신앙생활을 이뤄갈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는 High Class다

저자는 여기서 교회와 국가와 사회와 개인 구석구석 내포된 고급스럽지 못한 신앙 자세를 짚어가며 좀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고급스러운 신앙’에서 고급이란 영어로 Luxury, Premium 등의 고급이 아니라 High Class의 의미한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고급이시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분이 제공하시는 믿음은 그 자체로 고급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저급한 것을 제공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과, 삶은 자동으로 고급이 되어야 맞다는 것이다. 고급의 반대는 저급이다. 그러므로 고급스러운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저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총해 신앙인들은 ‘지금 내가 믿고 살아가는 모습은 고급인가 저급인가.’,‘다른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며 따라오고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신앙생활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점들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며, 좀 더 나은 신앙인으로 거듭나도록 할 목적의식을 지녔다.

차례

프롤로그 04_ 저급에서 고급으로

Part 1. 졸부에서 귀족으로

15_ 선진국, 개발도상국
18_ 벼락부자가 된 나라
22_ 고급스러운 신앙
26_ 벼락신앙의 나라
30_ 벼락신앙에서 고급스러운 신앙으로


Part 2. 수긍, 수정, 수용

46_ 지사불오至死不悟
52_ 수긍, 수정, 수용
57_ 무식과 유식
60_ 부창부수夫唱婦隨
63_ 이삭의 축복?
67_ I am Sam
74_ 뱀 같이, 비둘기 같이
76_ 파레토의 법칙
79_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86_ 깨닫는 은혜

Part 3. 하나님은 공부하는 사람을 쓰신다

90_ 좋은 소통
93_ 레베루(Level)
97_ 갑신정변
100_ 에베소정변
106_ “배고파” “밥” “ㅇㅋ?”
112_ 2백억 원어치
117_ 건강한 관觀


Part 4. 하나님은 품격 있는 사람을 쓰신다

125_ 품격질서예의
128_ 구조조정
131_ Coward
139_ Like a Dog
144_ 옷이 사람을 만든다
149_ 우리 교회는 지리산 위에?
153_ A++ 등급의 품격


Part 5. 신앙의 자존심을 지키자

158_ 종교심
161_ 거룩은 자존심이다
168_ 아름다워요, 미란 씨
176_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184_ 쪼다
191_ 나는 영어 잘해
197_ 끼어들기 금지 위반
202_ 자존심은 타협이 없다


Part 6. 고급스러운 신앙은 신령하다

207_ 나는 신령한 자인가
211_ 베드로와 아볼로
215_ 영점靈占 vs 감동
219_ 무당도 알고 한다
226_ 기도 = 신령함

김형진

그는 참 세상 물정 모르는 목사다.
어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나서 그 교회 장로님들과 차를 마시는데, 한 장로님이 말했다.
“목사님, 말씀 은혜롭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목사님 말씀대로 다 맞춰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허허허”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말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 장로님 맞습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상일 한 번 해본 적 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로서 영적세계 물정은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린 나이에 부흥사로 부름 받고 어린이부터 시작해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 말씀을 전해왔다. 짧은 인생, 짧은 목회연수이지만, 그는 지금부터도 아내에게 신신당부한다.
“여보, 당신이 보기에 내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사람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하는 것 같거들랑 주저하지 말고 당장 알려줘야 해. 그땐 설교자의 자리를 깨끗이 내려놓을 거야.”
언제나 늘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목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충남 당진에 있는 신평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설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책상에는 이런 메모가 붙어있다.
“이번 설교가 내 인생에 마지막 설교다. 그렇다면, 혼신을 다하는 인생 최고의 설교여야 한다.”

시편 기자는 먼저 사람은 존귀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은 존귀하다.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하나님께 부여받았고, 가장 뛰어난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창1:26) 너무나도 존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존귀할지라도 멸망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굉장히 극단적이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언제나 옳다.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 무조건 존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존귀’라는 칭호를 붙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겠지만, 시편 29편 20절에서는 ‘깨닫는’ 행위를 그 조건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만큼 깨닫는 지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되 ‘멸망하는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혹자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사회에서도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도태되어 무너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구원은 실패로 끝날것이며 모든 것이 무너지되 그 모습이 이전보다도 더욱 심하게(마7:27) 될 것이다.

‘깨닫다’라는 행위를 나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학습을 통해 깨닫는다.
2. 유경험자의 증언과 조언을 통해 깨닫는다.
3. 실패를 통해 깨닫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이 세 가지 경우로도 이상하리만큼 깨닫지 못한다. 왜 그럴까? 왜 깨닫지 못할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쉬운 것이며, 간단한 것인데 왜 깨닫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고집이다. 고집은 위의 세 가지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아주 강력한 방어막이 된다. 그런데 세상에서의 고집은 고집에서 끝나겠지만, 신앙생활에서의 고집은 곧 교만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잠16:18)이라고 명확하게 결론 내리고 있다.
이런 고집이 무너져야 깨닫는 행위를 하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깨닫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바로 수긍, 수정, 수용의 단계이다.
_‘수긍, 수정, 수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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