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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9 16:40
  • 내 얼은 한얼이다
  • 박준환
  • 전기
  • 2017년 8월 6일
  • 신국판
  • 979-11-5634-200-6
  • 18,000원

본문

내 앞에는 언제나 빛나는 미래가 놓여있다.
그 빛이 매일 나를 매혹시키고, 매일 나를 앞으로 이끌어간다.
그 빛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앞을 보면 갈 길이 멀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할 일이 많다.
올해 나이 미수(米壽). 평생 앞으로만 전진해온 사람이 뒤를 돌아보려니 아득하다. 돌아볼 것도, 추억할 것도 없다 싶었는데, 하나둘 기억의 창고를 들추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매 순간 나를 활활 태우고 완전히 연소시켜온 생애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 때 해방을 맞았고, 대학 입학과 함께 전쟁이 터져 통역장교로 참전했으며,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정신없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격동의 급물살에 휩쓸렸던 청년 시절을 지나 나이 서른을 넘겼을 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했고, 그때 만난 것이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한얼 사상이었다.
현대 첨단과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수한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 후 나는 이를 추구하고 알리는 일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그 실천을 위한 목적으로 세운 것이 사우수배일로(SBU) 한의과대학과 캘리포니아 경영과학대학(CALUMS)이다.
1977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10여 명의 학생을 데리고 시작한 이 대학은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버지니아 주의 6개 캠퍼스에서 총 2,0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형 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미국을 넘어 남미와 해외로 진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외적 성장과 함께 내적 성숙을 다지는 일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여는글 …4

1부
사우수배일로 한의과대학

학교의 태동 …15
미약한 시작 …22
사우수배일로 한의과대학 …28
CALUMS 경영과학대학 …32
교수와 교재를 찾아서 …38
한의사 법령의 역사를 말한다 …45
침술과 한약 …51
구당 김남수 침구법 …56
남미로 가자 …62
사상 의학과 정밀 의학 …69
함께 일하는 사람들 …73
40년의 발자취 …77


2부
한얼 펴기 운동

한얼 펴기 운동 …84
나의 얼을 찾다 …85
한국 역사의 회복 …91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97
한얼 연구소 …103
한국문화가 현대과학이다 …109
신과학과 고전 과학 …112
뫼비우스의 띠 …115
파동과 에너지, 결과 기 …120
홀론 이론과 의상 사상 …124
정신신체이론 …127
직감과 영성 …130
불확정성 이론과 퍼지 논리 …133

3부
소년의 야망

아버지의 유산 …139
마마보이가 골목대장으로 …143
해방되던 날 …148
칠곡 군수 잡아라 …151
소년의 야망 …154
학도호국단 감찰부장 …158
전쟁의 포화 속에서 …163
육군 통역장교 …167
60년 만에 받은 졸업장 …171


4부
미국에 뿌리내리다

잃어버린 대학 시절의 낭만 …177
경제학 박사가 되다 …180
잔디 깎고 벽돌 나르기 …183
리들리 농장에서 욕쟁이를 패주다 …187
미국 학생들 때리며 가르치다 …193
너는 박사 과정 하지 마라 …197
메릴랜드대학 해외분교 프로그램 …203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 …207
피 좀 흘려주고, 돈 좀 벌어오자 …211
한국 경제를 살리려는 계획들 …216
한국과 아부다비의 수교를 돕다 …221
배구선수 강만수를 아부다비로 …225
아메리칸 인디언과 한민족 …230
가발 장사로 나서다 …238
정치와 사업은 다르다 …241
한인회와의 짧은 인연 …246
미국의 정치인들 …253
연세대학교 남가주 동문회 …259
나의 가정 …264


추천사 …268
영원한 청년의 미수를 축하하며
- 이덕일
나의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
- 김용운
친구에게 보내는 노래
- 정시우
축시 …277
박준환 어아가
- 사이먼 김

박준환
1930년 대구에서 독립운동가 박태현의 삼남으로 태어나 계성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던 해 6.25 전쟁이 발발, 참전하여 육군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1955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도미, 경제학 전공으로 클레어몬트 칼리지에서 학사(1957), USC 대학원에서 석사(1959)와 박사 학위(1962)를 받았다.
1963년부터 2년간 메릴랜드 대학의 해외분교 교수로, 1965년부터는 칼 폴리 포모나 대학에
서 경제학 교수로 31년간 재직한 후 1996년 은퇴했다.
1977년 사우수배일로 한의과대학을 창설했고, 1997년 캘리포니아 경영대학을 분립했으며, 현재 양 대학의 총장과 이사장으로 교육과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평생의 화두인 한사상 전파를 위해 1997년 한얼연구소를 설립,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을 세계 속에 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내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s)은 광활하게 넓은 땅이다. 전국에 총 326개의 구역이 자치 주권 지역으로 지정돼있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5,620만 에이커, 아이다호 주의 크기와 맞먹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인디언들에게 주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큰 땅이 전혀 이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 땅만 내주고는 전기, 가스,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외면한 채 유배의 땅처럼 버려두었다. 그런 환경에서 한과 분노를 안고 배타적인 삶을 살아온 원주민들은 대다수가 실업자에 알코올 중독자들이고, 범죄와 자살률도 높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근년 들어 연방정부가 카지노 도박 산업을 허가하면서 보호구역 내 우후죽순으로 카지노가 들어서고 있으나 이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디언 부족 가운데 배운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언어와 문화 보존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한국 사람들을 데려와 비즈니스를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국에는 대기업보다 양말, 모자, 가방 같은 생활 물품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이 많았다. 이런 중소 규모 기업들이 나와서 공장을 세우고 원주민들을 고용하면 이들의 생활도 돕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도 자연스럽게 미국에 뿌리내리는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언어를 한글의 알파벳을 사용해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잘사는 나라도 아니었고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벌떡 일어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박차고 일어나는 나는 당장 네바다와 애리조나 지역의 인디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긍정적이라는 판단이 서자 일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때 찾은 사람이 조자용(1926~2001) 선생이었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깨비 박사’로 불리던 기인 조자용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일찍이 웨슬리언대학교와 밴더빌트대학교, 하버드대학원에서 공학과 건축학을 공부한 선구적 건축가였으나 민화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전통 민화뮤지엄인 에밀레박물관을 건립했고, 해외 민화 순회전도 열었던 조자용 선생은 민화 자료수집, 강좌, 연구 등을 펼치며 20여 권의 책도 출판한 ‘한국 민화의 중시조’이며 열정적인 민중 문화의 거인이었다.
_‘아메리칸 인디언과 한민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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