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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7-25 09:46
  •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 강대선
  • 수필in
  • 2022년 07월 20일
  • 신국판
  • 979-11-978643-2-2
  • 15,000원

본문

기억은 장관에 붙잡힌다

노을은 구름 뒤로

붉은 머리카락을 풀어놓고

먼 섬에서 울던 바람은 개펄로 올라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운다

한때는 투사처럼 글을 쓰고 싶었으나 투사는 창과 방패를

잃고 패잔병처럼 주저앉아 있다

 

바람이 휘두르는 채찍에 하얀 갈기를 세우고

일렬횡대로 밀려드는 해마

부풀어 오르는 고뇌의 시간

하얀 비늘에 적어 내리는 십만 페이지 햇빛이 물결치고

바다 저 멀리, 구름은 흘러내린 상념에 먹빛으로 짙어져 있다

번개 치는 저편에서 푸른 영혼을 붙잡는다

작가의 말 4

 

 

1

고양이 바코드 14

그 여자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20

스파링 26

은박지에 물린 시간 31

책벌레를 만나다 36

호랑이와 감자 41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47

가을, 그 사이에 뭔가 지나갔다 54

무한광변로(無限廣變路) 61

코로나 블루 70

평화 75

 

 

2

사고(思考)뭉치 84

촛불의 심장 89

과일가게 94

볏짚으로 지은 집 101

겨울 반딧불이 107

구더기 경전 112

나비가 달다 119

너에게 잠수하다 124

돌담길 편지 131

상처화 138

낙화 143

 

 

3

당신이라는 미늘 150

두 겹의 잠 155

백치 아다다 160

분절 166

이른 바람에 172

이승과 저승 177

저기요, 여기요 183

초록 교정 188

탱자꽃 하모니 193

화무(火舞) 198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광주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으로 가슴에서 핏빛 꽃이5. 장편소설 우주일화, 퍼즐. 가사수필집 평화발간. 한국해양문학상, 한국가사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김우종 문학상,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송순문학상, 에세이스트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먼저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갈기를 세우고 일어선다. 땅에 주저앉아 우시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는 작은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한다.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든다는 생각, 끝없이 이어지는 울음 속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회색으로 드리운 유년의 어느 풍경에서 기억하는 것은 상여가 나가는 날, 눈이 따갑도록 내리쬐던 햇살과 상여꾼들 사이에서 상여를 매던 아버지의 검고 굳은 얼굴과 한갓진 곳에서 태워진 옷가지에서 올라오던 연기와 그 연기를 바라보던 사촌 동생의 슬픈 눈빛과 타버린 잿더미 위를 유영하던, 알 수 없는 막막함 같은, 무게를 저울질할 수 없는 우울함이었다.

다시 한 떼의 기억이 갈기를 하얗게 세우고 밀려든다. 유년의 어느 여름날, 개장수에게 팔려 간 강아지 이 나를 찾아와 낑낑대고 있다.

나는 을 곳간에 숨겨두었으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다시 개장수를 불렀다. 개장수의 손에 을 넘길 때 나는 멀찍이 서서 안 팔면 안 돼요?”라고 말했으나 이미돈을 받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른들의 말에서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배워버린 것이다. ‘판다는 말에는 비정과 낭패와 체념이 함께 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것들이 팔리는 순간은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만 같은 굴욕감과 상처를 드리우는 것 같다. ‘이 팔려 간 그날은 내 마음에 비가 내려 빗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사실, 이런 기억은 생각하기 따라서는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들이 갈기를 세우고 돌출하는 이유는 그 순간이 내겐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못처럼 박혀 뺄 수 없는,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시간. 그런 시간이 나를 찾아올 때면 나는 저기압으로 들어가 비를 맞고 돌아온다. 그렇다고 매번 슬픈 기억들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금이 간 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민들레처럼 입을 함빡 벌리게 한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열었던 생일 파티의 기억, 친구들과 포도 농장에 놀러 갔던 기억, 처음으로 여학생과 손을 잡았던 기억, 아내의 배 속에서 아기가 들려주던 심장 박동 소리 등등은 비 온 뒤의 하늘처럼 맑고도 화창하게 올라온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갈기를 세우고 푸른 초원을 달려온다. 끝없는 슬픔도 없고, 영원한 기쁨도 없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기억으로 시간이 지나간다.

태초부터 기억들은 이 해안으로 밀려왔을 것이다. 까마득히 떨어진 아득한 거리에서 이곳으로 몰려든 하나의 거대하고 고고한 생명의 기억들이 햇빛에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커피를 들고 등대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연인의 대화 한 토막이 들려온다. 나는 자기만 있으면 돼. 어떤 말들은 밀어내고 싶어도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사로잡는다. ‘자기라고 부르는 가장 소중한 이가 있으면 다른 것은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자기란 말처럼 말랑말랑한 말이 있을까.

_‘해마가 몰려오는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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