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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5-22 13:46
  • 나는 떠나도 이것은 남는다
  • 이문봉
  • 수필in
  • 2023년 05월 20일
  • 신국
  • 979-11-92835-06-8
  • 15,000원

본문

늦깎이 나이에 유산 만들기

 

나는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무언가는 남겨주어야 했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도리일 거라 생각했다. 유산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재산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재산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냥 맨손으로 세상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늦깎이 나이에 유산 만들기에 나섰다. 그 일은 글쓰기였다. 인생 후반기에 가진 것 없는 내가 유산을 마련할 길이란 글을 쓰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듯했다. 재벌들처럼 물질적인 재산을 많이 물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선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자식들의 서가에 꽂아주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라 생각했다. 물질적인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겠지만 나의 글은 후손들의 영혼 속에 대물림으로 남아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은 노정이었다. 더구나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 글쓰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식들을 생각하면 그 길에서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사명감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산 만들기의 행보는 그렇게 해를 거듭했다.

 

나의 글은 자손들에게 물려줄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글을 어떻게 붓 가는 대로 허투루 쓸 수 있었단 말인가. 그 글들은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후손들의 서가에서 내 자신을 증거 할 유일무이한 유산이기에 진정성을 담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두 개의 인연에 천착했던 것 같다. 그 인연의 끈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근원적인 인연이고, 아내는 사랑하는 자식들을 있게 한 반려의 인연이다. 그분들은 나의 전 생애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귀중한 인연이다. 어쩌면 그 인연들은 나의 글쓰기에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간에 내가 썼던 글은 지금껏 살아온 내 일상의 편린들이라 하겠다. 그 편린들 속에는 내 삶의 정체성과 영혼의 이데아가 교직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빛바래고 보잘것없는 그 조각들을 한데 모아 소중한 유산으로 꾸며주신 해드림 출판사의 이승훈 대표와 임영숙 편집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책을 갑작스럽게 하늘의 꽃이 된 아내에게 남긴다.

 

 

머리말 늦깎이 나이에 유산 만들기 4

 

 

1부 아내의 김밥

영원한 거리 14

참새 엄마 21

식탁 위의 춤 30

달인을 만나다 36

모란꽃 한 송이 43

얼굴 없는 가수 49

하얀 깃발 55

 

 

2부 암탉

빈 둥지 63

70

어머니의 텃밭 79

어머니의 길 88

아버지의 산 93

지은이에게 99

세영이 106

 

 

3부 섬마을 선생님

스무 살에 길을 잃다 114

울지 못한 매미 120

창포 바닷가 128

파도 위에 띄운 편지 133

긴 짐승 150

 

 

4부 나를 위하여

꾸꾹새가 울면 비가 내린다 159

살풀이춤 164

위세와 허세 170

육자배기 1 175

육자배기 2 184

문필봉은 살아있다 190

다람쥐의 행복 197

동행 203

뒤에 선 남자 209

알몸의 퍼포먼스 216

마음으로 듣는 소리 221

어느 작가의 눈물 227

가상 여행 233

조르바와 연속극 239

O형 물탱이 246

휴가의 이중성 251

짚 인형 258

 

 

5부 유자 향의 바다, 고흥

고수 274

꿈속의 여인 281

은행나무 288

사라져 가는 것들 296

세미 302

외촌 아재 309

마빡이 형 316

자연산 남근석 321

돌쇠와 샌님 337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학교 3학년 때 순천사범학교로 옮겨 졸업하였다.

이후 섬마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제약회사로 이직하여 퇴임하였다.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하였으며,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겨울방학 때면 시골 마을 사랑방에서 놀았다. 사랑방에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아재가 있었다. 그는 닭서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방 사람들은 그 아재를 고수라고 불렀다. 고수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도 절대로 뛰는 법이 없다. 사랑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도 듣기만 할 뿐 별로 말이 없다. 고수의 말 없고 느려터진 성격은 모두를 몹시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듯 과묵한 고수였지만 닭서리를 할 때는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했다. 평소의 행동은 나무늘보처럼 느릿했지만, 닭서리를 할 때만큼은 행동이 살쾡이보다 더 민첩했다.

고수는 대낮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면 일부러 판초우의를 입고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골목에서 모이를 쪼던 닭이 비를 피해 담장 밑에 웅크리고 있으면 고수의 발길질이 불을 뿜었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닭은꽥 소리도 못 한 채 나둥그러졌고, 그 닭은 고수의 판초우의 속에서 은밀히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고 고수에게 도벽의 본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닭서리를 했던 집이 살기 어려운 과부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자기 집의 닭을 잡아다가 그 집 닭장에 몰래 넣어주기도 했다.

고수는 닭서리에 관한 한 모든 정보에 빠삭했다. 그래서인지 사전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의 닭서리는 지극히 경계했다. 그는 평소에 볼일이 있어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에 들를 때마다 그 마을의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그가 눈여겨보는 대상은 그 마을의 우회도로와 유사시를 대비한 지형지물,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외딴집 등이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런 호기를 놓치고 있을 고수가 아니다. 고수는 자기의 방식에 따라 닭서리에 참여할 행동대원을 선발했다. 영수와 동수를 먼저 지명하고 나서 잠시 뜸을 들였다. 다른 사람들이 혹시나 해서 고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뜻밖에 나를 지명했다. 갑자기 발탁된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의아한 눈초리로 고수를 바라보았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영수나 동수는 닭서리의 경험이 풍부하고 담력도 있었으나, 나는 그들에 비해 경험도 없고 담력도 약했다. 그는 나의 불안한 심중을 알기라도 한 듯 씽끗 웃으면서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깜깜한 밤중에 시오리 길을 걸으면서 고수로부터 나의 임무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서리할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지났고 진눈깨비도 어느덧 그쳤다.

_본문 고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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