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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01 09:28
  • 홀로 걸은 국토 4천 리
  • 조성현
  • 해드림출판사
  • 2023년 11월 01일
  • 신국
  • 979-11-5634-562-6
  • 15,000원

본문

인생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매년 4월이면 길을 떠났다. 201441, 1번 국도 기점인 구 목포문화원을 출발하여 19일간 450km를 걸어 서울시청에 도착하였다. 나의 첫 번째 장거리 도보여행이자 국토종단이었다. 이듬해 4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목표로 해남 땅끝마을 출발하여 2차 국토종단 길에 나섰지만, 무리한 탓에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경상북도 상주에 진입하며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해 4월 상주에서 다시 시작하여 21일 동안 470km를 걸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녘땅을 바라보았다. 이젠 도보여행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종단을 두 번 하였으니 국토횡단을 하고 싶어졌다. 서해 최남단에서 동해 끝자락인 부산까지 걷자 하여, 횡단 17일간 430km를 걸었다. 두 번의 종단과 한 번의 횡단까지 1,700km, 4천 리를 넘게 홀로 걸었다. 이 글은 중년 남자가 홀로 걸어서 전국을 다니며 몸으로 머리로 쓴 기록이다.

왜 걸을까. 코미디언 이홍렬 씨는 쉰아홉의 나이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홀로 걸었다. 그는 진행하던 네 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중단까지 하며 나이 육십을 넘기 전에 국토종단을 결심하였다. 이것은 분명 생의 도전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일관한 나의 회사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 산악인들이 산이 있어서 산에 오른다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길이 있어서 길을 걷고 싶었다. 나에게 장거리 도보는 생의 도전이 아니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기에 거리를 늘렸을 뿐이다.

자동차를 타면 보이지 않지만 걸으면 보인다. 오천 년 역사를 지닌 작은 한반도는 광활한 시베리아나 만주 벌판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곳곳에 사람들의 흔적이 널려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일본 섬의 중간에 위치하여 외세의 침략도 잦았고,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은 땅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걷다 보면 소소한 유적지를 자주 접한다. 이 글에서는 세인의 관심을 끌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걸으면서 만나는 삶과 역사의 흔적에 나의 단상을 담았다. 글 속의 역사관이나 생활관은 나의 주관적 관점이므로 이견의 소지는 남아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날의 감상과 에피소드를 매일 스마트폰에 적어 기록하였다.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쓰는 기록도 만만치 않았다. 국토종단과 횡단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에 걸쳐 진행하였다. 책으로 엮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21년부터다. 몇 년 지났지만, 당시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인터넷 지도 거리뷰 덕분에 이번 기행 산문 집필이 가능했다. 걷다가 잠시 쉬어 간 장소도 찾아냈고, 길 곳곳에서 땀 흘리며 걷던 기억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날로그 세대인 내가 디지털 시대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 글에는 목포~서울 종단을 제외하였고, 해남에서 고성까지의 종단과 진도에서 부산 횡단 이야기를 담았다.

 

들어가며 4

 

국토종단과 횡단의 서막 - 천백 리 길 묵주기도 7

 

글을 마치며 298

 

 

1부 종단: 해남에서 상주 모동까지 360km

최장 거리 국토종단을 시작하다 / 해남 땅끝마을 18

엉뚱한 상상 / 강진 25

폭우를 만나다 / 장흥 34

조선족인가 재중동포인가 / 보성 38

한을 품은 너릿재 / 화순 42

바르게 살자? / 곡성 47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바가지 물 / 순창 54

도보도 세상도 원칙이 있다 / 임실 58

구수한 냄새, 포근한 농로, 순박한 견공 / 진안 64

우리가 가진 걷는 DNA / 무주 69

옆도 보고 뒤도 보고 / 영동군 학산재 73

슬픈 노근리 / 영동 노근리 79

디테일에 소홀한 결과 / 황간 85

쓸쓸한 귀가 / 상주 모동 88

 

 

2부 종단: 상주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471km

국토종단을 다시 시작하며 / 상주 모동 94

아무거나 신발 / 점촌 97

꽃구경도 좋지만 / 상주 함창 102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사람 / 문경 유곡 106

문경새재를 넘으며 / 문경새재 110

별미 저녁밥 / 제천 청풍 116

청풍명월에서 / 청풍대교 120

어디 살아요? / 영월 주천 124

산자락 밭과 달동네 / 평창 129

제무시와 황소 / 정선 133

장전계곡에서 먹은 라면 두 개 / 평창 장전계곡 141

저 높은 곳, 망자의 유택 / 진부 146

쉰내와 날파리 / 평창 이승복 기념관 151

1089m 운두령을 넘다 / 평창 운두령 156

절경 내린천과 함께 / 인제 내린천 159

사라지는 소우주 / 인제 기린면 163

그놈의 이데올로기 / 인제 합강교 169

좁은 물길 너른 물길 그리고 비경 인북천 / 용대리 176

어머니의 산 진부령을 넘다 / 고성 진부령 181

걸으면 보인다 / 화진포 186

휴전선 너머 / 고성 통일전망대 190

 

 

3부 횡단: 진도 팽목에서 부산까지 420km

이제는 횡단이다 198

팽목에서 세월호를 만나다 / 진도 팽목항 201

기억의 숲 / 진도읍 204

좁은 길로 가라 / 울돌목 207

히치하이크 / 해남 문내면 216

왕릉보다 값진 만의총 / 해남 옥천면 221

장흥으로 가는 길 / 장흥 수문해수욕장 228

득량은 슬프다 / 보성군 득량 232

벌교 주먹 / 벌교읍 241

지하철 선반 위 태백산맥 / 순천 244

비 오는 날의 유채화 그리고 수채화 / 광양 249

꽃벵이 농장주 이종기 님 / 섬진강 254

성 정체성 / 하동 259

삼천포로 빠지다 / 진주 267

함안에서 만난 백이 숙제 / 함안 270

떠나야만 잘 보인다 / 마산 277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다 / 봉하마을 282

순장을 고발한다 / 김해 289

팽목에서 초량까지 / 부산 294

어렸을 때다. 시내버스가 출발하면 나도 달렸다. 단거리에선 내가 앞섰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나에게 그것은 괜찮은 취미였다. 답답할 땐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턱에 차면 희열을 느꼈다. 젊어서는 뛰었지만, 생의 가을부터는 걸었다. 치열했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내 사업하며 종종 길을 떠났다. 길은 나에게 신선한 해방구였다. 걸어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혼자여야 했다. 일상에서의 일탈은 나에게 필수였다. 그것은 자유로움

이다. 홀로 길을 걸으며 느끼는 이 자유로움!

 

격월간 에세이스트2013 수필, 2019 평론 등단

2021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서평모음집 현장에서 읽는 우리 수필

장전계곡에서 먹은 라면 두 개 / 평창 장전계곡

 

11일 차(416)

정선역~오대천길~장전계곡~평창 진부 장전리 21km / 누적 262km

 

2014416

2년 전 바로 오늘 1차 국토종단을 할 때였다. 세종시 끝자락에서 천안에 접어들 아침 무렵에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 수백 명 태우고 인천항을 출항하여 제주로 가던 배가 전라도 앞바다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알다시피 내가 몇 년 전에 인천에서 세월호 규모의 큰 배를 타고 제주 갔었잖아. 워낙 배가 커서 문제없어. 안심해.”

걷던 중 아내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배가 뒤집히고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한동안 걸을 수가 없었다. 전후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코 어른들의 잘못으로 피지도 않은 어린 생명이 처참하게 죽어간 것이다. 죄스러움에 가슴을 쳤다.

첨단을 달리는 2014년에 어떻게 그 큰 배가 가라앉았나. 국가는 뭐 했길래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 목숨이 스러지게 놔두었나. 도대체 국가는 뭐 하고 있었나.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국가에서 해경에 긴급구조명령을 내렸다면 구조했을 게 아닌가. 이토록 무능하고 사악한 어른들이 어린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이제 2년이 지났다. 혹자는 말한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죽어간 학생들의 부모는 말한다. 자신들도 그러고 싶다고. 그러나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진상이라도 규명되면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 거라고.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참혹하게 당한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오늘도 걷다 보니 벚꽃이 꽃비가 되어 하늘하늘 내려앉는다. 가냘픈 꽃잎을 자동차가 무참히 밟고 지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이들의 눈물 같다.

 

장전계곡에서 먹은 라면 두 개

하루 신세 진 안 선생의 집은 도로보다 약간 높다. 며칠 만에 깨끗한 잠자리에 들어서인가 몸이 개운하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는 중 저편 산자락에서 뿌연 가루가 날린다. 송홧가루다.

십여 년 전 회사에서 북한 금강산으로 단체 여행 갔을 때 송홧가루 한 봉지를 사 왔다. 몸에 좋다는데 차일피일 먹지 않고 놔두었다가 누군가에게 준 것 같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오대천 물길을 잡고, 왼쪽으로 깎아지른 산에 기대어 걸었다. 오대천 명물로는 119m 백석폭포를 들 수 있다. 인공폭포이지만 물을 펌프로 끌어올리지 않고, 1,237m 백석봉의 물줄기를 돌려 이곳으로 흐르게 하여 사시사철 물이 떨어진다. 물줄기는 수직에 가까운 경사면을 때리다 떨어지다 또 때리기를 수십 차례, 여리디여린 외줄기는 드디어 오대천 품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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