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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상처로 피워낸 희망 읽기 - 김선경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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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공모전 [대상] 상처로 피워낸 희망 읽기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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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09회 작성일 19-11-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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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로 피워낸 희망 읽기 ]

김선경

엄마가 쓰러지셨다.
고 혈압을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둔 탓에 마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의식마저 가물거리는 엄마 옆에서 넋을 놓고 한 달을 보냈다. 꿈과 현실을 오고 가는 동안 엄마가 이승의 줄을 놓으실까 덜컥 겁이 났다. 이승으로의 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그러하셨듯이 엄마께 책을 읽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적 엄마는 아플 때나 잠이 들기 전이면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셨다. 엄마를 위해 이번엔 내가 수고를 할 차례였다.

독 한 주사약 탓에 깨어계신 시간이 짧았고 그만큼 짧은 수필이 필요했다. 추천 도서를 고르던 중 '상처 입은 영혼들과 함께하는 에세이'라는 책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짧지만 정갈하게 짜여 있고 20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지루하지도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3도 화상'은 그렇게 우리에게로 왔다. "엄마, 제가 이제 이 책을 매일 읽어드릴게요." 하며 책을 들어 보였더니 눈을 깜빡이셨다. 좋다는 표시였다.
 

시 간이 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 내려갔다. 엄마는 먼 곳을 응시하며 추억에 잠기시기도 했고 아버지의 이야기에는 여지없이 눈물을 글썽이셨다. 평생을 폭행과 폭언으로 우리 모녀를 멍들게 하셨던 아버지가 2년 전 과로로 돌아가셨다. 그 사인이 암이나 심장병이 아닌 과로사여서 우리는 제대로 원망 한 번 못해본 통절함으로 북망산으로 보내드렸다. 남겨진 아픔이 ‘곪고 있는 화농’ 같아서 아버지에 대한 ‘상처’ 이야기에는 우리 모녀의 울음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매미, 그 울음소리'는 아버지의 임종을 덤덤히 그려내고 있다. 슬픔이 처연해서 더 애절했다. 차라리 매미처럼 토해내듯 울었더라면 그 눈물의 무게만큼이라도 가벼웠으리라. 매미가 7년 동안 흙속에 있고 7일을 살다 죽는다는 얘기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애벌레인 7년이 매미의 일생이고 7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면 매미는 7년 동안 흙 이불 속에서 포근하게 꿈을 꾼 것이다. 아버지의 70년은 고되었으나 여덟 형제로 인해 따뜻하고 포근하게 때로는 원대한 꿈을 꾸셨으리라. 말 수가 적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엄마조차 알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도 남몰래 이런 꿈을 지니셨을까. 그래서 마지막 가시기 전 그렇게 몸을 축내며까지 일에 매달리신 걸까. 눈물이 확 끼쳐왔다.

바 로 옆 침상에 화상을 크게 당한 아이가 있어 책 읽기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아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데다 보호자들도 많이 지쳐있었다. “저기요.” 늘 눈인사만 주고받던 아이의 엄마가 말을 건네 왔다. 반가운 동시에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컸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책 제목이 뭐에요?” 의외의 질문에 한시름 놓은 나는 표지를 넘겨다보고 또다시 주저했다. “‘3도 화상’이에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할까. 조마해있는데 외려 싱긋 웃더니 “우리 애는 2도인데…….”한다. 환자의 신음에 밤을 하얗게 지새다 보면 보호자들은 초개라도 그러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실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는 제목에서마저 작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세상인심이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졌다지만 사실 그들도 같은 인간이어서 감정을 이리 나눌 수 있는 것을. 결국은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한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담을 쌓고 있었던 셈이었다. 상처는 어를수록 빨리 아무는 것을 이미 보고 배운 터라 나는 그들 모자도 보듬고 싶어졌다. 좋은 것일수록 나누라했지 않은가. 그리하여 아픈 지훈이와 지훈 엄마는 새로운 내 청자로 초대되었다.
 

사 람이 살면서 겪는 상처 중 가장 깊게 남는 것은 역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리라. 장소가 병원이기에 죽음이란 단어가 숨이 닿는 곳에 있는 듯 가깝게 느껴졌고 그만큼 무서웠다. 그러나 ‘3도 화상’에서 보는 죽음은 여태껏 대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한결같이 죽음을 생의 종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으로 기대하는 태도였다. ‘때로는 새가 되어 때로는 들꽃이 되어 때로는 바람이 되어 달려오길 바라는 것이다.’ ‘가슴에 피어있는 꽃’은 애잔하지만 한켠으로는 참 어여쁜 비유이지 않은가. 나는 엄마의 가슴에 피어있는 꽃이고, 세상사는 모두는 저마다 누군가의 가슴에 피어있는 꽃이다. 가슴에 꽃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열매로 맺지 못한 꽃은 가슴에서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더 디게 읽고 더디게 생각을 다듬었다. 사람이 나고 사는 모습이 비슷하여서 책을 읽고 추억을 나누다 보면 삭막하던 병실에는 어느덧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었다. 더러는 눈물도 찍어내고 더러는 목이 메여 읽기를 멈춘 적도 있었다.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 엄마는 말을 다시 찾으셨고 지훈이는 새 살이 돋아났다. '3도 화상'으로 정신을 치유하는 동안 엄마는 아버지를 용서하셨고 엄살쟁이였던 지훈이는 부쩍 자라 소년이 되어있었다.
 

하루는 식판을 놓아두고 오니 엄마가 책의 표지를 물끄러미 보고 계셨다.
" 나무에 난 상처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단다. 옅어지긴 하겠지만 키가 크면서 위치가 바뀔 뿐이지 나무는 잊지 않아. 사람도 마찬 가질 게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이 사진을 골랐구나." 그렇게 여러 날을 쥐었는데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로새겨진 나무의 상처였다. 이렇게 하얗게 흔적이 남은 상처를 내 것이 아닌 양 부정하며 버려둔 것은 아닌가. 도끼질 되어있는 둥치를 방치한다면 썩어서 마침내는 기둥이 쓰러져버릴지도 모른다.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면 어르고 달래어 깊이 팬 상처를 새 살로 채워야 한다. 내 상처를 보는 것 마냥 안쓰러워 손끝으로 표지의 나무를 오래도록 쓸어주셨다.


나는 아무래도 아버지를 용서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내 안에도 새살이 돋아 새하얗던 흔적이 희미해지는 날이 오겠지. 잔잔한 그리움으로 기다려본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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