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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가뭄 후의 나무처럼 - 송원석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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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공모전 [금상] 가뭄 후의 나무처럼 - 송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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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50회 작성일 19-11-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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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후의 나무처럼


일 년간 준비한 의학 전문대학원에 떨어졌다. 서른 즈음, 다시한번 당찬 도약을 생각하기엔 늦은 것 같고, 서러워도 울지도 못한다. 넋 잃은 사람처럼 지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여자친구가 어느날 ‘3도 화상’이라는 책을 건넸다.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을테지만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나을 듯해서 책을 받았다. 하루종일 공부하는 습관은 시험이 끝나고도 계속되어, 도서관에 가서 뭘 위한건지 모르는 공부를 한 뒤 집에 와서 수필을 한편씩 읽고 잤다.


' 매미가 되어'를 읽으며 낡은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글 속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농사를 짓고 짐을 나르다 무릎이 망가졌다. 환갑이 넘은 나의 아버지는 손이 떨리고 허리도 나쁘신데도 병원에 출근하신다.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드시지 않고, 말도 없으신 궁핍한 선비같은 아버지이다. 가세가 기울어진지는 이미 오래고 집안의 희망이라면 내가 아버지의 자리를 잇는 것이었다.


손 님도 없는 시골 병원이지만 아버지가 평생 지켜내신 보물같은 곳이다. 나는 그 보물을 소중히 받아들고 반질반질하게 문질러 사람들에게 진가를 알리고 싶었다. 툭하면 항생제를 처방하는 요즘 병원과 달리, 약한 감기같은건 “물을 많이 마시고, 푹 쉬세요”라고 조언하며 최대한 약을 쓰지 않는 아버지의 방법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평생 흙 속을 탈출하지 못한 굼벵이가 아닌 자식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가 되었으면 싶었다.


글 쓴이도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희노애락은 모두 내 마음 탓이다’하고 애써 초연해지려고 했지만 소나무의 패인 상처에 흘러나온 송진을 보고 아버지의 눈물과 핏물을 떠올렸고, 소나무를 보며 비탈 흙에서 질곡의 삶을 산 아버지를 생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젠 슬픔을 넘어 회한이다’라는 구절에서 한(恨)으로 굳어버린 그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편으론 나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워졌다.


‘ 날마다 생솔가지를 태우며’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병원은 늘 적자에 시달렸고, 가난은 땟국물처럼 우리집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틈을 타서 쥐가 내 얼굴 위로 올라간 적이 있다고 한다. 아직 젊으셨던 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셨고, 지금도 그 얘기를 할때면 슬픔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신다. 그러나 글쓴이의 집은 우리집보다도 가난했다. 내 어릴 적 도시락 반찬이 김치뿐이어서 부끄러웠던 적은 있지만 굶주린 적은 없었다. 글 속의 소년은 땅바닥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고 점심을 굶으면서도 학교에서 간식으로 준 빵 한덩이를 고이 보관해 동생에게 갖다주곤 했다.


가 난이란 칼날에 베인 상처는 아니더라도 피부병 같은 것, 남들은 가볍게 여기지만 본인은 얼마나 불편한가. 이렇게 가난에 시달렸으면 악다구니에 받쳐 영악하고 이기적인 어른으로 자랄 법도 한데, 글쓴이는 부도를 낸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주고 길거리에 만난 이에게 받을 길 없는 돈을 꿔준다. 속없는 사람인가하고 혀를 차다가도 ‘가진 게 없으니 겸손해졌으며 내세울 게 없어 권위를 모르고 자랐다’라고 말하는걸 보면 깊은 상처를 스스로의 힘으로 아물릴만큼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글 쓴이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아슬아슬 외줄을 타면서도 끝내는 웃을 수 있는 게 인생 아닌가'라고 말한다. 가난의 무서움을 겪어 보았기에 이 독백이 겉멋 든 초연함이 아닌 눈물을 머금은 값진 성찰이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열 여덞편의 수필을 다 읽을 즈음,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 자친구가 책을 건네며 한 말이 떠올랐다. 가뭄이 들면 나무는 생장이 느려지지만 대신 그만큼 뿌리가 깊어진다고, 그래서 가뭄이 그친 후에 훨씬 빨리 자라게 된다고... 이 책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오히려 깊게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책을 덮자 가슴에 박힌 돌덩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푸른 가지를 뻗을 때이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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