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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상처를 보듬은 이들과의 소통 - 윤지영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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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공모전 [동상] 상처를 보듬은 이들과의 소통 -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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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56회 작성일 19-11-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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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보듬는 이들과의 소통


- 윤지영 -



바람이었다. 옅은 홍조를 띤 두 뺨을 가볍게 스치는 숨결 그리고 여윈 어깨를 슬며시 매만지는 그 살뜰한 온기. 두툼한 밤색 코트에 작디 작은 몸을 밀어넣은 이들이 오가는 길목 속에서 나는 『3도 화상』이라는 연두빛 서적에 시선을 멈추었다. 조금은 뜨거울 것 같아 두려운, 그러나 화상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듯이 이내 삶의 상처를 섬세하게 치유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수필은 본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허구도 과장도 아닌, 오직 자신의 진실함을 표현하는 멋스러운 글이 바로 수필일 것이다. 여러 수필가들의 목소리가 살아숨쉬는 이 책 속에서 나는 생의 아련함을 찾고 공감하게 되었다. 때때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고인 눈물을 애써 감추려하는 이들의 모습이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하겠는가. 이 서적은 각박한 사회 속에서 이미 많은 것들을 망각하고 정신의 풍요로움을 잃어버린 나에게 그리고 또 다른 타인들에게 삶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진실로 중요한 것을 속삭이고 있는 뜨거운 3도 화상이다.


수록되어 있는 많은 수필들을 읽으며 나는 상처와 이별의 교차점에 대하여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읽을수록, 닿을수록 타오르는 화상 자국이 나의 팔에도 가슴에도 선명하게 박힌 듯 하다. 상처가 고이 박혀 조금씩 부풀어오르다가 이내 붉게 잡히는 물집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그 언젠가에는, 아픈 상처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런지. 그만큼 열여덟편의 수필들은 순수하고 애틋한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임은수 작가의 「너를 기다릴 수만 있어도 좋겠다」라는 작품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조차 어려울만큼 진솔하고 따스했다. 나의 사랑이 반드시 고백되어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만 타인과 교합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소 불완전한 관계일지라도,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바람이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사랑이다. 때문에 때로 바라보기만 하여도, 기다릴 수만 있어도 그로부터 기쁨을 사사받게 되는 것이다. 시동생을 떠나보내고 그가 단 한순간만이라도 다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하고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 “아아, 그렇게 그들을 기다릴 수만 있어도 좋겠다.”라는 그녀의 애처로운 기도가 너무도 간절하게 느껴졌다.
어찌 질병의 고통이 타인에게만 일어난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원하지 않게도 나의 아버지 역시 직장암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신다. 조금씩 희미해지는 미소를 띠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나 역시 “이렇게 당신이 하루 하루 눈 뜨고 미소짓는 얼굴을 보기 위해 평생을 힘겹게 기다릴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라는 간절함이 앞선다. 가슴 한 켠씩을 도려내고 눈물을 토해내는 그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 속에서도 부디 그대를 기다릴 수만 있다면, 그러한 희망이 주어진다면 너무도 큰 기쁨일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오빠와 시동생을 참망한 그녀의 슬픔이 부디 위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그녀의 혹독한 그리움과 열병이 조금씩 사그라들기를 바란다. 기다릴 수만 있어도 그것이 바로 행복이자 축복임을 속삭이는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화롯가의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운 그러나 결코 자극적이지 않은 그녀의 손끝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수필, 우미정 작가의 「강솔밭」을 읽으며 나는 수많은 활자로 묘사된 소나무 그늘이 아름답게 드리워진 강둑을 살며시 그려보았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곳, 수줍은 남녀가 함께 거닐곤 했던 강솔밭은 작가에게 삶의 추억 그 이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에 보았던 아버지의 생채기를 회상하게 만드는 공간, 그 곳 역시 강솔밭이었다. 두 눈을 감으면 섬세하게 그려지는 아련했던 추억의 공간, 강솔밭에서 그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삶의 고통에 지친 몸을 잠시 뉘우기도 하고 신나는 꽹과리 소리에 혼을 맡겨 흥에 취하는 작디 작은 꿈이었으리라. 작가의 소망처럼 나 역시 기억의 어드메쯤에 강솔밭과 같은 그늘을 두고 싶다. 어긋난 상처도 물기 어린 눈물도 모두 다 묻어두고 한 층 더 여유롭게 삶을 관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늘 정해진 시간과 만남을 서류함에 잠시 밀어두고 표를 끊어 추억의 공간을 찾아보고 싶다.

그 녀의 강솔밭처럼, 나 역시 땅거미가 어둑한 골목길과 놀이터에서 서성이며 그리워하고자 한다. 그녀의 소망과 같이, 나도 산산이 부서져 버린 기억의 파편들을 고스란히 모아 그 안에 살며시 묻어두고자 하는 간절함을 기도한다. 때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치기에 지쳐 가슴이 아리는 날이면 그 곳을 찾아 잠시 쉬어가면 좋으련만. 고단한 몸을 뉘우고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곳, 강솔밭을 찾아가리라.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뜨겁게 저미고 쓰라렸다. 심중에 담아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이들의 고백이 더욱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솟아오른 불씨에 데인 듯 때때로 아프고 진솔한 고백을 망설이지 않은 그들의 결심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정감 어린 수필을 통해 이들의 결코 녹록치 않았던 삶의 음영에 공감할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덧붙이고 싶다. 오늘도 병실에서 딸의 발걸음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을 아버지의 여린 손에 이 책을 살며시 쥐어드리고 싶다.

문득 눈가에 아른거리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바람이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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