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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작] 슬픔이 지나간 자리, 또는 흔적의 샘 - 이화영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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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공모전 [입선작] 슬픔이 지나간 자리, 또는 흔적의 샘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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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73회 작성일 19-11-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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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지나간 자리, 또는 흔적의 샘
 

3도 화상이라는 제목이 낯설다. 생명이 위급할 정도의 다급한 외침으로 나의 시선을 부른다. 어느새 서점의 작은 한 켠이 위험스러운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응급실이 되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초록색의 경고음을 울리는 이 책 안에는 어떤 상처들이 담겨있는지 조심스레 펼쳐본다.
과연 얼마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었기에 3도 화상인 것일까? 위급하고 자극적인 제목보다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 입었을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동시에 한 때는 너무나 묻고 싶었을 내면의 숨겨진 상처의 샘을 엿보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깊을수록 캄캄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미 그 곳은 평온한 샘이었다. 눈물로 한 방울씩 채웠을 것만 같은 슬픔의 흔적은 잔잔한 샘이 되었다. 18명의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상처에 대해 나무 숲 작은 귀퉁이에 앉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세상에 존 재하는 모든 것에는 상처가 있다.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밀려오는 현재와 부딪힌다. 늘 보호되어지길 원하는 삶 속에서 자기방어의 가시를 만들고 세상과 마주한다.『작두무덤』에서 보여지는 유년시절의 기억들도 현재로서 마주하지 않는다면 일생가득 미안함과 아픔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의 시간과 부딪히며 상처 입는다. 마땅히 주어지는 미래이지만 준비가 덜 된 미숙한 현재는 마음을 잃는다.『강솔밭』의 그늘에서는 잠시나마 삶의 불안을 잊을 수 있다. 삶이 빚어내는 숙성된 그늘을 가지지 못한 이상은 오랫동안 상처의 흔적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한 치유의 그늘을 찾기 위함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상처는 시간의 아픔을 머금고 있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서 나무는 여름을 맞이하고 겨울을 준비한다.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람은 저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시간이 불어오는 흐름의 틈틈이 처음과 끝이 생기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준비한다. 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 생명을 얻기 위해 고통을 이기고 흙을 털어내고 새로운 환경에 접어든다.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이 흔들리고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짓밟혀 짧은 일생을 맞이하거나 운 좋게 제 운명의 시간만큼 채운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말 못하고 침묵하여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다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기억한다. 벗어날 수 없는 영향력 아래 머물면서 늘 풍경의 한 그림처럼 상처 또한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러한 상처를 기억하고 바라볼 때마나 마음은 붉게 물든다.『겨울비』에서 행복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린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고 한다. 행복은 예상치도 못한 기쁨으로 주변을 환히 밝힌다. 시간은 인생에 깊은 상처를 새기지만 인생이란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
모든 상처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유를 찾으려 애쓰고 채우지 못한 그 무언가 때문에 상처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고 함께 존재할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의 샘이다. 사람은 늘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고 깨닫기에 회한의 먼지를 가슴 가득히 쌓아두고 세상과의 소통을 막아버린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자식.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던 그 끝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함께 잡고 있던 삶을 어느 한쪽이 놓아버린다면 그 삶은 중심을 잃는다. 상처는 곧 후회를 마음에 새긴다. 가슴의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던 순간에 대한 후회, 냉정한 말 한마디에 진심을 빼앗긴 과거에 대한 후회로 가슴을 채운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작은 위로조차 쓰라림의 고통으로 찾아온다.
모두가 그렇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지 평화로운 숲이며 삶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멋대로 자나난 나무들의 공간일 뿐이다. 내 나이만큼 새겨진 상처는 보이지 않게 감춰두고만 싶은 나의 이기심으로 버려져 있었다. 정돈하여 누군가에게 내보이면 다시 무언가로 인한 슬픔으로 넘쳐날까 보이기 두려운 공간이다. 하지만 이들의 상처를 지켜보며 지금껏 나조차 냉정했던 나의 상처가 가꾸어지고 치유될 수 있음을 조금씩 믿게 된다. 그들의 샘을 들여다보니 나의 샘이 들여다보인다. 위로의 마음으로 들여다본 그곳에 내가 비친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저절로 터지고 만다. 이미 그들은 상처를 힘들지만 조금씩 깨끗하게 정화하고 있다. 힘들게 꺼내온 18인의 상처는 누군가에는 상처를 열어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나의 깊게 파인 상처 덩어리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위로로 맑은 샘이 될 수 있으라는 희망이 생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있어야할 지금의 자리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모두의 인생을 가꾸어 가는 것이 살아감의 이유이다. 비록 상처를 없었던 것처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상처를 가꾸는 시간만큼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 된다. 한번쯤은 마음속에 깊은 화상을 입고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조용히 감싸줄 수 있는 작은 그늘이고 싶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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