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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작] 내 안으로의 여행 - 신혜원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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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공모전 [입선작] 내 안으로의 여행 - 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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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55회 작성일 19-11-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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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도 화상을 읽고.


- 내 안으로의 여행-

차다. 손가락 끝과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겨울이 깊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람이라도 맞아야겠다며 나왔건만, 어느새 스웨터 자락을 끌어내려 손등을 덮는 나를 의식하며 호흡을 깊숙이 가두었다. 눈가를 묵직하게 만들며 머릿속을 누르는 정체모를 느낌을 잊어보고자 평소 같으면 차를 몰고 바쁘게 달려갔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니 이 느낌은 지금 가방 속에서 달깍거리며 소지품들과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작은 책 한권이 만들어내는 무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3도 화상, 골 깊은 나무마디의 표지가 화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맞물려 그려내는 불편함으로 선뜻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친한 친구의 넋두리를 ‘그래 맞아’ 맞장구를 치며 들어줄 때와는 달랐다. 배신과 오해로 아파하는 지인들을 대하며, 그들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핏대 세워 욕해주며 위로하던 때와는 달랐다. 남의 상처를 그저 담담하게 읽어나가며 받아들이는 일은 적잖은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비슷하게 혹은 같게 내 인생의 이야기와 맞물려 잊었다고,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상처와 기억의 고리들을 하나씩 깨어나게 했고, 결국 그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나는 차가운 겨울 거리를 걷고 또 걸어야했다.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인연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그들로 인해 겪게 되는 일은 또 얼마나 될까? 책 속에는 인연의 고리들이 ㅤㅅㅓㄺ히며 만들어내는 생채기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 친구, 연인등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엮어내는 일상들이 타인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삶이라는 과제가 주는 또 하나의 멍울이지 싶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이전의 내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다. 이전의 내 모습 또한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들은 아니다.’(강솔밭) 나에게도 어린시절 어스름한 저녁, 일이 끝나고 돌아오던 어머니를 기다리던 골목길이 있었다. 지금은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의 단위가 몇번은 지나버려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 졌을 그 동네 어귀. 다른 친구들이 김이 오르는 식탁 앞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시간, 늦은 귀가를 하시는 어머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시간들.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의 경제적 물리적 고통을 현실에서 깨닫기 시작한 후부터, 그리고 사회적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으로 열심히 살아가던 20대에, 잊고 싶고 혹은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았던 그 길이 어느새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웠다고 생각한 어설픈 자존심 뒤에 그 기억은 턱하니 버티고 있었나 보다. 웃음으로 지나간 순간들을 추억하지 못하는 나역시 필자처럼 ‘삶이 빚어내는 숙성된 그늘’을 아직은 가지지 못했나보다.
세상을 살면서 축복받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사람을 얻고 사람을 사랑하며 느끼는 기쁨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기대치만큼 사랑을 쏟을 수 없을 때에 느끼는 상실감만큼 공백이 큰 존재가 또 있을까. 표지의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필자들의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들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느끼던 스산함은 마른 낙엽의 소리, 그것을 닮아 있었다.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는 엄마의 간절함이 보이는 ‘겨울비’, 어린 외사촌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가슴에 피어있는 꽃’, 가슴으로 품어 낸 필자들의 글 속에서, 그러나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면 그들에게 너무 잔인한 말이 될까. ‘작아서 부서질 것 같은 생명 하나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겨울비) 어릴 적 유난히도 몸이 약한 내가 쓰러진 어느 날, 어린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어머니의 등이, 놀라 파랗게 떨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의무와 책임으로 어쩌면 당신 인생에 족쇄가 되어, 평생을 홀로 살게 만든 나, 나도 어머니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이었을까…?
‘추억은 추억일 뿐 그것이 현재 나에게 더 이상 어떠한 상해도 입히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간혹 과거 속에 묻힌 그 기억들 때문에 내 안의 상처에선 피가 흐른다.’(내안의 빙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몸속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아픈 기억들도 그렇게 내 몸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안의 빙원’에서 한참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가난, 아버지의 부재, 필자에게 완쾌되지 않은 우울증을 남긴 기억. 어쩌면 차가운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것은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것과 닮은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마침내 ‘그것을 지지대로 지금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결론짓는 필자 앞에서 나는 잠시 부끄러웠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내 깊은 상처로부터 나온 채찍 덕분이었음을 나는 오늘에서야 인정할줄 알게 되었다. 스스로 단단하다고 믿었던 나에게 찾아온 감정의 동요, ‘3도 화상’을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하며 쉽게 읽어내지 못한 이유이지 싶다.
그것은 짧은 여행이었다. 감추며 살고자 했던 마음의 짐들을 몸밖으로 끌어내 멀리 날려보내는 이별의 의식. 글이란 때로 작가의 상처와 독자의 상처를 동시에 치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과 나의 발자욱을 세어보는 동안 내 곁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과, 지금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뜨거운 것에 닿아 화들짝 놀란 피부가 아물어 가며 딱지를 만들고 새살을 채우 듯,많은 글들이 상처를 딛고 오늘의 자신을 다독이는 문장으로 끝나있음을 새삼 상기하며 이 여행을 접는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인생을 사는 이들과 함께한 오늘의 뜨거움을 가슴 깊이 삼켜 거듭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따뜻한 봄바람이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믿으며…….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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