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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대상]"넌 엄마도 있잖아." - 김정민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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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공모전 [일반부 대상]"넌 엄마도 있잖아."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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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92회 작성일 19-11-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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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엄마도 있잖아.”


우연히 서점에서 ‘비손’을 집어들었을 때 오래전 기억 속에 박힌 녹슨 못 하나가 굳어진 내 심장을 찔러왔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머리채를 잘 쥐 뜯을 줄 알았던 드세고 입이 거칠었던 한 아이가 있었다. 주근깨가 다닥다닥 퍼진 얼굴에다가 선머슴처럼 짧은 머리칼을 하고 작은 눈으로 매일 찡그리고 다니던 그 아이는 내 어머니가 커튼을 잘라 만들어준 실내화 주머니를 뺏어가면서 말했다.

“넌 엄마도 있잖아!”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마냥 속상하기만 했다.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것이 상처가 되었을 뿐, 내가 어머니로 인해 얻은 행복만큼의 그 아이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상처를 알 수 없었다. 사실 그 아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란 존재가 아니었을까.

‘비손’에서 나는 열여덟 분의 어머니를 만났으며 그들의 따스한 품에 안겼다. 반면 열여덟 번의 만남과 이별을 했고, 세상의 어머니를 보았다. 세상의 어머니는 하늘처럼 바다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우리의 옆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간다. 우리의 모든 잘못이 계산되고 벌을 받는 생의 첫 번째 심판의 날처럼 가슴 무너지는 날에, 어쩌면 그 자리에 늘 계시던 어머니를 처음으로 다시 발견하게 되는 날에 말이다.

우리는 어머니라는 문을 통해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본다. 그리고 어머니는 평생 그 문의 문지기가 된다. 나를 지켜주는 공기이자 힘이 되어 당신의 살과 뼈로 내가 사는 세상의 다리를 만들고, 마지막 남은 검은 머리칼을 잘라내어 내가 타고 올라갈 밧줄을 꼰다.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염원은 어둔 밤의 달이 더 환하게 빛나는 이유다. 그래서 만물에 스며든 그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만남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삶은 한 송이 아름다운 ‘개화’였다.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아름답게 지지 못하는, ‘조약돌처럼’ 닳고 굳어 숨죽이며 낙화하지 못하는 한 송이 꽃, 서글프지만 아름다웠던 오랜 개화이다. 아들은 ‘짜고 매운 어머니의 세월’을 먹으며 ‘물러진 홍어처럼 잡히지 않는 통증’을 느낀다. 그 세월을 삼켜 어머니의 세월을 온전히 건강하게 뱉어낼 수만 있다면 천만 번 눈물로 삼키고 싶어 하며…. 굳어진 어머니의 새끼손가락처럼 그때 몰랐던 아픔은 세월이 흐를수록 고스란히 나의 통증이 된다. 어머니가 없는 자식은 없다. 자식이 없는 어머니는 없다. 그 자체가 삶과 우주의 영원한 사랑의 비밀이다. 모든 부채와 구원의 이름 어머니, 이는 자식들이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무정함이자 원통한 사랑의 방정식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마루에서 부르는 엄마의 노래를 들어줄 수 있었을까. 그 노래가 ‘나는 괜찮다’라는 위로의 노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항상 지혜를 빌려주다가 영원한 지혜가 된 어머니, 차가운 세상을 버티기 위해 이불을 덮어쓰고 아픔을 묻는 딸에게 고즈넉이 변명할 시간도 없이 스스로 하나의 오해가 된 그런 어머니가 비손에서 보인다. 하나의 낡은 가방에서 인생을 추리다가 가방이 되어 그것마저 손에 들려주는 어머니와 마지막 하나 남은 인생의 한 줌도 품에서 꺼내줄 어머니 그리고 덩실덩실 인생의 한을 털어내려 늦은 춤을 추는 어머니도 있다. 모진 고난 속에서 스스로 어머니란 집을 지으면서 사실은 매일 마음속으로 슬픈 춤을 추었을 어머니도 있고, 양수로 우리를 품었다가 커다란 바다가 된 어머니, 달을 보고 비손하다가 달이 된 어머니, 우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어머니를 또한 만난다.

어느 차가운 날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는, 우리의 평생을 지켜주고자 하였던 그 문지기가 없다. 초라한 외투를 철갑옷처럼 입고 매운바람 속에서 전사처럼 우리를 지키던 그 작고 늙은 어머니는 어느 날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날부터 어머니가 품었다가 다시 내어 보여주던 그 따스한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가 없는 삶으로….

어 머니의 가난한 주머니 속을 먼지가 나올 때까지 다 털어도 결국 어머니가 줄 수 없었던 것들은, 내가 삶 속에서 받은 수많은 축복이었음을 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얻은 것들은 그 옛적 어머니가 싸서 손에 들려준 보따리, 보따리 다름 아님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배꼽으로 남은 어머니의 탯줄, 그 탯줄은 그날 끊어졌던 것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외로운 바람이 부는 버스 정류장, 지친 퇴근길, 상처 입은 날의 모든 뒤안길, 아프고 외로운 곳에서는 항상 기다려주고 있을 것만 같은 어머니가 아닌가. 세상의 모든 따스하고 둥글고 포근한 속성을 닮은 어머니는 때때로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자식들의 모진 원망과 미움의 목소리들도 실은 당신에 대한 살가운 애증이나 사랑이 부대낀 아픈 진물임을 아실까, 알아주실까.

어머니는 분명 집에 있는데 나의 어머니와 같은 분을 길에서 만나면 가슴이 불에 덴 것처럼 홧홧하며 눈물이 차오를 때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는 꼭 같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의 냄새는 지독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외판원을 하느라 항상 지워지지 않던 고약한 발 냄새, 신발공장에서 일하실 때 온몸 한가득 묻혀오던 본드냄새, 음식 냄새, 피곤의 냄새, 슬픔의 냄새, 한의 냄새, 그럼에도 어머니의 몸에서 가장 향기롭던 그냥 어머니의 냄새가 있었다. 새벽녘에 나를 깨우던 어머니의 기도소리나 ‘내가 뭘 잘못했나.’ 항상 의문을 가지게 하던 어머니의 눈물은 다름 아닌 비손이었다. 삶이 기쁠 때는 생각나지 않고 힘들고 원망스러운 날에만 떠올리던 어머니, 내 상처들의 거칠고 뾰족한 파편을 모두 맨손으로 쓸어 치워주던 어머니, 속까지 다 파내어주고도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하나의 아름다운 시가 되어 노래가 되어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르는 어머니, 어머니들.

주 근깨가 다닥다닥 퍼진 얼굴에 선머슴 같은 짧은 머리칼을 하고 작은 눈으로 매일 찡그리고 다니던 아이, 어머니가 커튼을 잘라서 만들어준 내 실내화 주머니를 뺏어가려 하면서 그 아이가 말한다. “넌 엄마도 있잖아.” 나는 아직 실내화를 넣어보지도 못한 어여쁜 실내화주머니에 ‘비손’을 넣어 건넨다. 비손은 세상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아들딸들의 편지이며 모든 어머니가 똑같이 보내줄 답장이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전해주지 못한 이야기요, 그 아이의 어머니도 해주고 싶으셨을 이야기다.

어머니는 너를 무척 사랑한다는….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손'을 읽고 한동안 너무 아팠습니다. 제게 새롭게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직 어머니를 잃지 않은 저는, 앞으로 조금 더 좋은 딸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매번 세상의 눈을 뜨게 하는 테마들, 감사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시도들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번지길 기도합니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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