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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동상] 당신이기에 사랑합니다. - 윤혜진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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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공모전 [학생부 동상] 당신이기에 사랑합니다. - 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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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98회 작성일 19-11-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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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기에 사랑합니다


 휘경 여자 고등학교 2학년 윤혜진



 가정 과학 수행평가로 2학년의 전 여학생들이 모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푸르기를 거듭해서인지 손때까지 탄 그것을, 우리들은 오기로라도 다 완성시켜 이번 겨우내 끼고 다니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실뭉치가 조금씩 장갑으로 탈바꿈해 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뿌듯하던지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쉬는 시간이고 야자 시간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도와주면서 실뭉치와 씨름했다. 하도 애지중지 하다보니 이게 꼭 내 자식 같기도 했다. 그러다 코라도 빠지면 가슴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내게 있어서 11월은 꼬여있는 실뭉치 만큼이나 정신없는 달이었다.
비손과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이 책 한 번 읽어봐."
평소에 책벌레로 정평이 나있던 친구 하나가 건네준 책 한 권. 표지 속에는 어머니 한 분이 등을 돌린 채 땅을 일구고 계셨다. 흑백처리가 되어 있어서인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쓸쓸해 보였다.
 "영원한 내리 사랑?"
갈색으로 크게 프린트된 '비손'이란 글자 아래로 '영원한 내리 사랑'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비손'이란 글자도 꼭 쥐가 파먹은 것 같았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 한 편씩 이 수필 모음집을 읽게 되었다. 뒤표지를 살펴보니 작가 분들의 사진이 나열돼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글의 주인공들을 먼저 확인해가며 작품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의 이야기가 더 진솔하게 느껴졌고, 마음으로 와 닿았다. 특히 자신의 불효를 고백한 작가 분들의 글을 접할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나는 어떠한가.'하며 깊이 반성했다. 푸근한 임병식님의 '노모의 노심초사'에서 '어느 자식이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가.' 이 구절에 밑줄을 쳤다. 작가분과 속사정을 달랐지만 어쨌든 나도 부모님께 웃음을 선사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특히 하향 선을 타고 있는 성적표를 보여드릴 때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한다.
전대선님은 '달마중'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지금 내게는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를 닮은 내 모습이 있을 뿐이다.' 라고. 한 번도 그 문제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덜컥 겁부터 났다. 언젠가 내 어머니도 별이 될 날이 올 것이고, 내게 남은 것은 어머니를 닮은 내 모습뿐이겠지. 그 날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평소에 애교 하나 없던 딸의 갑작스런 애정 표현에 어머니는 민망스러웠는지 소란을 피우셨다.
 "아이구, 얘가 징그럽게 왜 이런데."
어머니의 품속과 내 등에 얹어진 당신의 손바닥이 참 따뜻했다.
변소영님의 '이불'을 읽고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내 어릴 적 모습을 진술해 놓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그분과 나의 어린시절은 많이 닮아있었다. 가난 속에서 원만하지 못했던 모녀 관계가 그러했다. 어머니는 항상 등을 보이시며 주무셨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이불을 꽉 껴안고 잤다. 아마 어머니께 받지 못한 포근함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마지막 한 편을 남겨두고 장갑이 완성됐다. 여느 때와 같은 야자 시간, 모두들 공부하기에 바빴다.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마지막 남은 수필 한 편을 마저 읽었다. 우미정님의 '엄마의 가방'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는 다 떨어진 가방에 애착하셨고, 걱정이 많아질수록 가방 안에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물건들을 넣어대셨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어떤 준비를 가방과 함께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가방이 사라졌고, 그것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다 읽고나서 나는 '어쩌면 가방이 스스로 집을 떠난 걸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했다. 애석하게도 그 가방은 작가분의 어머니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유심히 관찰해 봤다. 다행히 우리 어머니는 가방에 집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방 한구석에 내팽개치고 곧바로 잠이 드셨다.
열여덟 편의 수필들은 '어머니'란 키워드 말고도 공통점이 있었다. 작가 분들의 어머니들이 모두 추억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생각까지 미치자 내 몸속의 장기들이 대변과 함께 빠져나간 것 같은 그런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텅 빈 뱃속에 바람이 찼는지 심장이 시려왔다. 새삼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다. 호텔 주차장 박스 안에서 당신 곁을 지나는 사치스런 사람들을 보며 추위에 떨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손때 묻은 베이지 색의 벙어리장갑을 어머니께 건넸다. 다음날 어머니는 함께 일하는 동료 분들께 '딸이 만들어준 장갑'이라며 내내 자랑하셨단다. 늘 받기만 하던 딸은 어머니께 따뜻한 겨울을 선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천망극이랬다.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어찌 내가 모를까. <비손>을 통해 내가 놓쳤던 당신의 작은 은혜까지도 마음에 아로새겼다. 임병식님의 수필에 소개된 '부모은중경'이란 책을 검색해봤다. '부모님의 소중한 은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얘기한 경전'이라는데, 보물 920호였다. 나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어머님의 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책을 덮으면서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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