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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르네상스 기행 2 - 로마(1) > 자유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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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미완의 르네상스 기행 2 - 로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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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봉 댓글 0건 조회 395회 작성일 23-02-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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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F0PeL8PYLJg&t=16s


런던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후 8시 무렵 탑승한 여객기는 1030,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로비로 나오니까, 로마의 현지 가이드가 여행사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사 로고가 선명한 버스를 타고 우리는 공항에서 30분 거리의 호텔에 투숙했다.

 

유럽여행 둘째 날(415),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가 휴대용 수신기를 나누어 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콜로세움을 구경하시고,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보시고, 포로 로마노,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신전,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을 보시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드시고, 바티칸시국으로 이동합니다.

바티칸시국에 가서는 베드로 광장, 박물관, 대성당을 관람하신 다음, 버스를 타고 3시간 거리의 피렌체로 이동합니다.

피렌체의 명소를 보시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실 때 제가 준비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에, 몇 시 도착하느냐고 누군가가 물었다. 오후11시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78일 동안, 여러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패키지여행이라서 버스를 타고 3~4시간 이동은 다반사라고 일정표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버스가 콜로세움 주차장에 도착했다. 관광 안내 책자를 진열한 가판대에서 고대 로마 화보집을 샀다. 가이드가 콜로세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콜로세움은 서기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시작하고, 서기80년 티투스 황제 시절 완공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와 장남 티투스, 차남 도미티아누스 세 사람을 역사가들은 플라비우스 왕조라 합니다. 그들과 달리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여섯 사람을 클라우디우스 왕조라고 합니다.

콜로세움 경기장은 플라비우스 왕조 시절에 건립되었지만 경기장이 생기기 전에도, 로마에서는 노예검투사 경기가 유행했습니다. 기원전 73년 검투사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동료검투사 70여 명과 함께 이탈리아 남쪽 카푸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많은 동조자들이 생겼습니다. 반란군이 된 검투사 노예들은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출신들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동조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다가 갈리아와 인접한 포강에서 로마군과 싸웠습니다. 로마군총사령관이었던 크라수스는 포로가 된 노예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도망친 자들은 배를 타고 고향으로 가다가 폼페이우스 소속 해군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 노예검투사 경기는 한동안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부활시켰습니다. 검투사 노예상인과 연극배우들에게 돈을 지불하면서 공짜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무상으로 먹을거리도 주었습니다. 이것을 빵과 서커스 정책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죽을 때까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빵과 서커스 정책을 말하는 가이드가 신기해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눈에 총기가 서려 있었고, 웃음기 없는 얼굴에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였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역사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빵과 서커스 정책을 고집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위장병으로 몸이 쇠약했으며 성질이 모질지 못하고 소심한데다가 무능했기 때문에 빵과 서커스 정책을 죽을 때까지 시행 하면서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고 했다.

그 바람에 근면하고 창의적이었던 로마인들은 나태와 향락에 빠져들었다. 통치자의 잘못된 정책으로 사회기강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에 있는 황실농장과 시칠리아 섬에서 수확한 밀을 로마 시민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경사스러운 날에는 유증금도 주었다.

악티움 해전에서 마크 안토니를 속이고 승리했으면서도, 로마 거주 세대주에게 400세스테르티우스 유증금을 주었다


악티움 해전에서 마크 안토니를 속이고 승리했으면서도, 로마 거주 세대주에게 400세스테르티우스 유증금을 주었다.(BC29) 외동딸 율리아와 조카 마르겔루스를 결혼시키고서도 유증금을 주었다.(BC24) 첫 번째 손자 가이우스가 예정집정관이 되던 해에도 주었다.(BC5)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아버지칭호를 받고서도 주었다(BC2). 노동자 한 달 품삯이 100세스테르티우스인 점을 감안하면, 거금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었다. 이처럼 구경거리와 먹을거리에 - 유증금도 주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은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흥청거리면서 놀기 만 했다.

서기14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고, 제위에 오른 티베리우스는 노예검투사 시합을 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시켰다. 유증금도 자기 생전에는 주지 않았다. 이처럼 긴축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그 때문에 까닭 없이 비난과 미움을 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빵과 서커스 정책과 동시에 집권 40여 년 동안 자신의 신격화를 도모했다.

그 바람에 지중해 인근에서는 은밀한 미스터리와 허망지설이 창궐했으며, 로마제국은 지중해 패권국답지 않게 종교 박람회장이 되고 말았다.

판테온 신전을 비롯하여 황제가 손을 댄 신전이 이탈리아 반도에만도 80여 곳이 넘었다.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 지방의 카라라에서 엄청 난 양의 대리석 광산이 개발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이처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티베리우스를 비교 하면서 차이점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가이드는 콜로세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콜로세움의 한 쪽 길이는 188m, 다른 쪽 길이는 156m, 총 둘레는 527m, 높이는 48m이고, 80개의 아치 형태 외벽이 둘러싼 타원형 구조물입니다.”

내부는 4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각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르고, 중앙에서 볼 때 관람석은 방사 형태이고, 1층의 특별석에는 황제와 황실 가족, 바로 옆에는 원로원 의원들, 2층은 귀족과 무사들, 3층은 로마 시민, 4층은 여자와 노예들, 그리고 관광을 목적으로 온 외국인들도 4층에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대피시키려고 사방팔방에 여러 개의 문도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이처럼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데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경청하는 나에게 가이드가 말했다. 

콜로세움 경기장이 세워지기 전, 이 근처 어딘가에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살레가 콜로세움의 어원입니다. 보시다시피 경기장이 거대하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심으로는 영화 <쿼바디스>에서 본 장면을 생각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보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이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네로 황제가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내리는 제스쳐를 할 때마다, 함성을 지르면서 관중이 열광했다.

하지만 네로 시절에는 콜로세움이 없었다.

네로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거나 맹수의 먹잇감으로 주지도 않았다. 그와 같은 이야기는 가톨릭교회가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

콜로세움에 대한 설명을 마친 가이드가 검정색 벤츠를 가리키면서 타라고 했다.

로마 시내에서는 25인승 이상 버스는 운행할 수 없다면서, 벤츠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도보로 가도 되는 거리였지만, 시간이 없다면서 두 대의 벤츠에 각자 알아서 타라고 했다.

벤츠를 타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팔라티노 언덕 정상에 올랐다.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로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벤티노, 첼리오, 카피톨리노, 에스퀼리노, 팔라티노, 퀴리날레, 비미날레 일곱 언덕 중에서 - 팔라티노 언덕이 가장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였다

(동영상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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