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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덕담이 담긴 옛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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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572회 작성일 23-02-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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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이 담긴 옛 그림 읽기 


어해도(魚蟹圖)는 ‘물고기와 게 따위의 바다 생물을 그린 그림’으로 어락도(漁樂圖)라고도 한다. 그 옛날 중국의 송(宋)나라 시절 쏘가리를 그린 궐어도(鱖魚圖), 잉어를 그렸던 이어도(鯉魚圖) 등의 어도(魚圖)와 게(蟹)를 수생식물(水生植物)과 함께 그린 해도(蟹圖)가 전해졌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이들 그림과 어해도는 다른 개념으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에서 18세기 즉 조선 후기에 이르러 등장한 장르라는 얘기이다. 이 무렵 물고기와 게를 그렸던 족자 • 화첩 • 병풍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어해도 소재들의 대략이다. 먼저 잉어(鯉魚)는 등용문 고사처럼 남자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아울러 쏘가리(鱖魚) • 게(蟹) • 거북(龜) 따위도 유사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특히 쏘가리를 나타내는 한자 쏘가리 궐(鱖)이 대궐 궐(闕)과 같은 발음이라는 견지에서 ‘벼슬길에 들어서 궁궐로 진출 즉 출세해 승승장구’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한편 게와 거북은 등껍질인 갑(甲)과 과거에서 으뜸 즉 장원인 갑(甲)으로 급제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역시 입신양명과 연관이 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물고기 어(魚)와 남을 여(餘)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맥락에서 풍족한 삶이나 다산(多産)을 뜻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산이란 물고기는 많은 알을 밴다는 점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물고기와 거북에 대한 요약이다. 전통적으로 잉어 그림은 출세를 의미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물고기는 금슬 좋은 부부애, 세 마리의 물고기는 학문 정진의 기원을 뜻했다. 한편 민화(民畵)에서 자유스런 물고기 모습은 세속적인 생활의 여유로움, 떼로 그린 물고기는 다산의 소원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있다는 견지에서 도둑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다락문에 붙이거나 쌀뒤주에 물고기 자물통을 달기도 했다. 그 외에도 물고기 모양을 장식물에 새김으로써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또한 거북은 장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거북이 오천년 이상 살면서 동서남북을 수호해 주는 신(神) 중에서 북쪽을 지켜주는 신인 현무(玄武)라고 믿어왔었다. 게다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령한 동물로 여기기도 했다.


이갑전려도(二甲傳臚圖)는 게(蟹) 두 마리와 갈대(蘆)를 그린 그림이다. 그 의미의 대략적인 맥락이다. 원래 게의 딱딱한 등딱지를 나타내는 글자가 갑(甲)이지만 첫째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두 마리의 게는 이갑(二甲)으로 과거시험에서 소과(小科)와 대과(大科) 모두 연달아 장원 합격하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한편 중국에서 갈대 로(蘆)는 살갗 려(臚)와 발음이 같단다. 그리고 려(臚)는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님이 하사하는 음식을 뜻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장원급제 후에 임금님을 알현할 때 내려주는 음식 또는 윗사람의 말을 아랫사람에게 전하고 아랫사람의 말을 윗사람에게 고(告)하는 것을 전려(傳臚) • 전창(傳唱) • 려창(臚唱) • 려전(臚傳)이라고 한다.


연꽃 밭에 한 마리의 백로가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을 묘사한 일로연과도(一路連科圖)는 언뜻 생각하면 마냥 여유롭고 낭만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과연 그런 의미일까. 그를 마음으로 읽는다. 연꽃 사이에 한 마리의 백로(해오라기)는 일로(一鷺)이다. 한편 연(蓮)의 열매를 달리 표현하면 연과(蓮果)이다. 여기서 일로(一鷺)는 ‘한 걸음’을 뜻하는 일로(一路)와 연과(蓮果)는 ‘과거에 잇달아 합격한다’는 연과(連科)와 발음이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 둘을 합치면 일로연과(一路連科)라는 의미로 한 번의 과거에 소과와 대과에 연이어 합격하라는 덕담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를 앞 둔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격려한다는 의미로 건네는 선물로 적합하다. 원래 연꽃은 불교를 대표한다. 비록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기품 있는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세파에 때 묻지 않은 청순함과 고결함을 나타낸다. 그런가 하면 꽃과 열매인 연과(蓮果)가 동시에 성장하면서 연밥에 촘촘히 박힌 연실(蓮實)은 다남(多男)을 상징한단다. 


송학도(松鶴圖)의 연원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중회화인 십장생도(十長生圖)에 소나무 • 학 • 아침 해가 중요 요소로 포함되었다. 원래 송학도에는 도교적인 색채가 짙었으나 선비화가들은 도교적인 색채를 점점 배제하고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담은 그림으로 재창조했다. 여기서 학(鶴)은 신선세계나 태평성대를 상징하여 선비나 군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한편 소나무는 사철 푸르다는 맥락에서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리고 아침 해는 붉은 해라는 이유에서 ‘한 조각 붉은 마음’인 일편단심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라는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송학도에서 인문학적 내용은 배제되고 장수 • 출세 • 풍요 • 무병장수 따위의 도교적인 내용만 남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동양화에서 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학은 단아하고 청초하여 신선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서 새의 군왕으로 여겨 천년을 살면 백학(白鶴), 이천년을 살면 청학(靑鶴), 삼천년을 살면 금학(金鶴)으로 불렸다. 이런 믿음에 기인하리라. ‘신의 경지가 아니면 날지 않고, 오동나무와 소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 새라고 믿어왔다’. 어찌되었던 신선처럼 오래 사는 것으로 인식되어 장수를 기원하며 벼슬이나 관직에 연관되어 입신출세를 상징한다고 믿어왔다. 한편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는 연유에서 변함없는 마음 • 정절 • 절개를 의미한다. 아울러 새해를 뜻하기도 하여 불로초(영지버섯)와 함께 그리면 신년여의(新年如意) 다시 말하면 ‘새해를 맞아 생각한 대로 되다’라는 의미이다. 또한 학과 소나무를 함께 그린 그림은 왕권의 신성함이나 나라의 영원불멸을 뜻하기도 한단다.


석류는 하나의 껍질 속에 탱글탱글한 많은 알갱이마다 씨앗 하나씩을 들어있다는 뜻으로 백자유(白子榴)라고도 한다. 이 석류 그림은 다자(多子)를 뜻한다. 이처럼 다자를 뜻하는 것으로 열매가 많이 무리지어 달린 모양에서 포도, 주렁주렁 열린 모양에서 박 등이 있다. 한편 패랭이 꽃 그림을 축수도(祝壽圖)라고 한다. 패랭이는 석죽과 여러해살이풀로서 구맥(瞿麥) • 석죽(石竹)이라고 한다. 여기서 돌을 뜻하는 석(石)은 장수를 의미하고, 대나무를 뜻하는 죽(竹)은 발음이 ‘축하한다는 뜻’의 축(祝)과 흡사하기 때문에 ‘장수하심을 뜻한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패랭이 꽃 그림 즉 석죽화(石竹花)는 ‘돌처럼 변치 않고 대나무처럼 늘 푸른 청춘을 유지하라’는 기원을 담기도 한다.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이 모질도(耄耋圖)이다. 여기서 고양이는 70세, 나비는 80세 노인을 상징한다. 따라서 모질도는 70~80세 노인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모(耄)는 고양이 묘(猫)와 질(耋)은 나비 접(蝶)과 읽는 방법이 같다는 데서 생긴 개념이다. 한편 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박쥐 복(蝠)의 발음이 복 복(福)의 발음이 같다는 뜻에서 오복(五福) 즉 수(壽) • 부(富) • 강녕(康寧) • 수호덕(修好德) • 노종명(老終命)을 나타낸다.


수묵담채화로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동양화는 미욱한 마음과 청맹과니의 눈으로 보면 그저 단순 담백해 허전한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외형상 느낌과 너무 다른 심오한 뜻과 교훈이 담겨 있다. 화려한 서양화가 현란해 시각적으로 눈길을 끈다면 동양화에 내포된 철학과 깊고 높은 혼이 살아 용트림하는 격이 아닐까 싶은 문외한의 편감이다.


한올문학, 2023년 1월호(통권 157호), 2023년 1월 10일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댓글목록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첫머리 ‘어해도’를 읽으면서, 조선시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유배된 정약전과 정양용 형제가 생각납니다.
유배지에서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강진에 있던 정약용은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등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산어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수필집 상제를 축하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공부하며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