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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아가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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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390회 작성일 23-03-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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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정원

윤복순

 

아가페정원을 처음 가본 것은 30여 년 전이다. 그때는 아가페수도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익산시 여약회 회장이었다. 아주 작았지만 우리 단체에서 인보사업을 하였다. 총무가 성당에 다녔는데 그녀 덕분에 이곳을 알게 되었다.

나이 많은 어른들 중 아프신 분들이 요양하는 곳이었다. 가톨릭교서 무료로 하는 곳으로 단체나 개인의 후원을 받았다. 겨울이면 난방비가 가장 부담이 된다고 하였고, 우리 단체에서도 위생용품과 난방비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은 조용했다. 아니 엄숙했다. 입구에서부터 몸이 조신해졌고 사무실에서 용무가 끝나면 지체 없이 뒤돌아 나왔다. 아마도 내가 종교 문화를 몰라서 더 어색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젊어서 늙음 병듦이 가까이 와 닿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지금, 시어머니도 요양병원에 계시고 나도 더 나이가 들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기가 끝나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나의 본심은 약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적은 것 같다. 현재도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 이지 남을 도와주자.’ 가 먼저이지 않다. 이기주의자는 아닌데 좀 개인주의 성향이다.

가끔 미륵사지까지 걸어간다. 보통은 걸어서 돌아오는데 등산을 하거나 박물관을 둘러볼라치면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기도 한다. 그 시내버스가 이 수도원 앞을 지난다. 차 안에서 보는 수도원에는 키가 하늘에 닿을 메타세쿼이아가 날씬하게 그리고 빽빽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그 자체가 압도적이어서 접근을 금하는 것 같아 여전히 엄격하고 엄숙해 보였다.

 

2~3년 전 이곳이 익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이름이 아가페정원으로 바뀌었다. 바로 가보지 못했다. 가까우니 언제든 자투리 시간이 날 때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일요일 밖에 시간이 없으니 일요일은 금쪽같다.

작년 겨울 그곳을 찾아 나섰다. 탑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올 것 같았다. 탑천 까지 갔고 우회전 하면 미륵사지로 좌회전 하면 황등 쪽으로 간다. 황등 까지 갔는데 주변이 다 논이라서 아가페정원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고 일요일이라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미륵사지 방향은 걷는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자주 만나는데 황등 방향은 한 사람도 못 만났다. 동네가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네가 나오면 뭐할까. 동네에도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고샅에는 찬바람과 희미한 햇살뿐이다. 골목을 기웃기웃해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귀가 어두워 아무리 큰 소리로 말을 해도 소통이 불가하다.

느낌대로 걸었다. 큰 나무가 보이면 그곳일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걷다보니 하나로 도로가 나온다. 동쪽으로 많이 와서 미륵사지에 가깝다는 뜻이다. 한 시간쯤 걸어 사거리를 만났고 얼추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미륵사지에서 버스를 타고 갔던 길을 기억해 보았다.

~마를 걸어 정원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없다. 많이 헤매었고 해가 뉘엿뉘엿 날씨도 추워졌다. 포구에서 나룻배라도 만난 듯 반가움에 달려가 보니 코로나19로 휴관이라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있다. 주차장에 차가 없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음에 다시 걸어오려면 탑천길에서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 이번 참에 확실히 알아두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뚝방길을 찾아 나섰다. 아가페정원에서 뚝방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캄캄해서야 집에 도착했다.

 

1년이 지나 지난 일요일 아가페정원 도전에 나섰다. 길은 알아놨기에 발걸음이 가볍다. 생각보다 멀어 2시간 30분이나 걸린다.

정원은 한가하다. 수십 년 자란 향나무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몸피가 세월을 말해주고 그 세월이 햇빛을 가려 낮인데도 어둑하다. 군데군데 나무를 잘라냈고 그것으로도 안 돼 대부분의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해 겨우 나무들이 햇빛을 조금 받을 수 있다. 질서정연하고 반듯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벌거벗은 나무들뿐인 요즘 녹색을 보니 내 자신도 생기가 돈다.

걸어 들어가니 처진 단풍나무가 인사를 한다. 멋스럽고 조금은 자유스럽다. 모든 것을 다 버린 본래의 모습, 마스크를 벗고 그 옆에 서보았다. 추위에도 당당하고 건장하다. 나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보고 싶다. 많은 욕심들로 지금도 손을 움켜쥐고 산다. 사람도 단풍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움켜쥔 손을 펴야만 살 수 있다면...

이곳의 상징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보무도 당당하게 서 있다. 밖에서 볼 때는 한 줄로 보였는데 세 줄이다. 거목이다. 저절로 우러러 봐지고 경외심이 생긴다. 30여 년 전 내가 왔다 간 것을 기억할까. 어느 나이테쯤에 기록되어 있을까 팔을 벌려 안아 보았다. 반도 둘려지지 않는 둘레가 그런 소소한 것은 개인이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정원 울타리가 이 나무로 심어져있다.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맘껏 호사를 누렸다. 겨울이라서 사람들이 없다. 이 넓은 곳에서 세 팀 만났다. 아름답고 정리 잘 된 정원이 시민에게 개방 되었는데도 이처럼 차분하고 여유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미륵사지 걸어갔다 걸어오기, 함라산 둘레길 왕복 걷기, 만경강 목천포에서 삼례 비비정 까지 걷기, 내가 즐겨 걷는 코스이다. 4~5시간 정도로 딱 맞춤이다. 아가페정원 까지 걸어갔다 걸어오기도 이번 참에 새로이 추가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아가페정원이 개방되어 참 좋다. 시간이 될 때마다 걸어갈 곳이 있다는 것은. 치유까지 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가페는 거룩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2023.1.31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도 걷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5~6회정도 왕복 10여 km 등산길을 반복해 오갔던 지 20여년 째 입니다. 그런데 올리시는 글을 보면 윤선생님은 정말 마니아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다양한 곳을 왕성하게 섭렵하며 걸으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어찌 되었던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고맙게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