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이렇게 논다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자유글 이렇게 논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426회 작성일 23-03-18 13:38

본문

이렇게 논다

윤복순

 

노년기에 잘 살려면 취미생활을 하라고 한다. 무엇을 잘 하는가, 무엇을 할 때 재미있는가, 심사숙고 해 없던 취미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스물일곱 살에 약국 개업을 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약국은 바쁘지 않았다. 너무 바빠 지쳤다면 지금까지 약국을 못 할 것이다.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일기처럼 사는 이야기를 썼다.

잘 쓰지 못하지만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때마침 원광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문예창작과 있었다. 1기생으로 시와 수필을 배웠다.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약사공론 약사문예에 응모했고 시로, 수필로 수상을 했다. 그렇게 약사 문인회 회원이 되었다.

휴대폰이 없어 단톡방 가입을 못했다. 1년에 한 번 약사문예 책을 만드는데 그 때마다 시와 수필을 보냈을 뿐이다. 코로나19가 터졌다. 모든 것을 비 대면으로 하다 보니 매년 받는 약사 연수교육도 온라인으로 받아야 했다. 이때 본인 확인이 필요한데 인증을 휴대폰 번호로 했다. 휴대폰을 장만했다.

후배가 약문회 단톡방에 초대해 줬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매일 시를 올려줬다. 본인의 시나 유명 작가의 시다. 작가 소개는 물론 시 해설 까지. 그 시들이 가슴을 울컥울컥하게 해 종이에 옮겨 썼다. 여러 번 읽어보고 약국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놀러오면 내 멋대로 낭송을 했다. 좋다고 하면 그들에게 적은 시를 바로 줬다.

시로 먼저 등단을 했다. 언제부턴가 시는 쓰지 않고 살아가는 얘기만 쓰다 수필로도 수상을 했다. 그 뒤로 시는 잊고 있었는데 단톡방에 올라오는 시를 보면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일었다. 원래 소질이 없으니 마음만 앞섰지 잘 써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의욕이 일었다는 것만도 큰 소득이다.

산책길이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도 매일 올라왔다. 그 사진들이 하루를 편안하게, 평화롭게, 즐겁게, 활기차게, 사유하게, 감사하며 시작할 수 있게 해줬다. 힘입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고맙다는 문자 보내는 것도 몰라, 보기만 하다 오자투성이 문자를 떠듬떠듬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사진은 잘 찍지 못한다. 무엇보다 휴대폰이 무거워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아침 산책길엔 물론 일요일 여행길에도 휴대하지 않는다. 아침 산책길은 거의 운동 수준이니 그렇다 치고 여행길에선 찍고 싶은 것도 있다. 이럴 때는 남편을 시킨다. 이러니 무슨 수준이 늘겠는가.

작년 12월이다. 약문회 총무가 사진 콘테스트를 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한 사람이 한 작품, 제목, 사연, 이름을 자기 개인 번호로 올리라고 했다. 1등부터 3등 까진 유명메이커의 빵을 회비로, 참가자 전원에겐 개인 돈으로 S커피 한잔씩 쏜다고 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활력이 생겼다.

딸이 이사를 하면서 전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전세를 놨는데 2년 계약기간이 끝난다. 입주자가 나가겠다고 하는데 전세 들어올 사람이 없어 돈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집값도 전세가도 뚝뚝 떨어지고 거래마저 없을 때였다. 종부세도 걱정여서 빨리 팔리기를 바랐다.

지리산 연기암 올라가는 입구에 작은 돌멩이들로 돌탑을 쌓은 곳이 있다. 나도 그곳에 돌을 올리며 딸네 집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빌었다. 진심이었고 절박했다. 내려오면서 그 간절함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으로 나도 참여했다. 총무는 매일 참여인원을 알려주고 아직 참여하지 않은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활기가 넘치고 발표 날이 기다려졌다. 이제 부턴 여행길에 무겁고 불편해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고 사진 찍는 연습도 해야겠다.

드디어 발표 날, 많은 회원들이 참여했고 사진들도 아주 좋다. 제주도의 정기를 고스란히 담은 제주의 파도, 베트남의 일출에 떠나는 배의 모습, 친구가 만들어 준 수 공예품, 노년들의 감 따는 모습, 친구와 동행, 가족여행에서 먹고 놀기 등등. 내 사진은 월드컵경기에 동네축구 격이다. 그래도 참여했기에 며칠 동안 들떠 보았고 관심도 가졌고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데 투표도 했다. 나는 겨우 한 표를 얻었다. 그 한 표로 기분 짱 이다. 내 휴대폰에 커피쿠폰이 왔다. 커피는 잠이 안 와 마시지도 못하지만 사용할 줄도 모른다.

이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정말 멋진 사진이 올라왔다. 화진포 바닷가 가드레일에 고드름이 쭉 매달려 있고 다리 밑에선 파도가 일렁이는 동영상이었다. 인터넷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토네이도로 생긴 고드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고드름은 흙먼지로 황토색이고 코끼리 다리만 했는데 이 고드름은 투명하니 맑고 끝이 뾰족뾰족해 한이 서린 서릿발 같았다. 고드름이 달린 가드레일이 곡선을 그리면서 구도가 잘 잡힌 명품 사진이다. 파도소리까지.

이 사진에 모두가 환호했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또 총무가 고드름으로 시 한 편씩 쓰자는 제안을 했다.

매일 매일 시가 올라왔다. 시가 9, 시조 2, 수필 1편과 한줄 평 2편이 다. 그들의 상상력과 시심, 문장력을 감상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도 고드름의 설움이란 제목으로 오랜만에 시를 써 보았다.

회원들은 고드름을 칼날, 상어이빨, 속살, , 황태덕장, 연가, 심심한 겨울놀이, 오르페우스 등으로 썼다. 나는 고드름 하나하나가 엄동설한을 버티는 취약계층의 서러움으로 보였다. 수도가 얼고 화장실 물이 안 나오고 저층의 하수도가 얼어 위층에서 세탁기 돌린 물이 역류하고 한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손발이 시려 동동거리는, 고드름 하나에 사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옛날 선비들이 화제를 정해 글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던 그 흉내를 내 본 것처럼 마음이 뿌듯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문인들만의 멋이란 자부심은 덤이다.

가끔 화가로 입문한 회장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세계적인 화가의 그림을 올려주기도 한다. 덕분에 나도 화가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림의 제목이라도 알게 되니 TV나 신문에 그 작가가 나오면 반갑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 어떤 이벤트가 열릴지 아침에 출근하면 휴대폰을 확인한다. 글쓰기 잘 했고 약문회 회원 되길 참 잘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시를 읽고 사진을 보면서 틈틈이 시와 수필을 쓰기도 하면서 이렇게 놀면 노년도 심심하지 않겠다.

 

2023.2.4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한편으로는 생업에 종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글을 쓰며 생의 황혼녘을 즐기는 아름다운 삶을 건너다보면서 무척 부럽다는  생각에 나를 돌아봅니다. 기껏해야 거의 매일 산에 오르며 이따금 컴퓨터 앞에 쭈그리고 앉은 초라한  내모습이 무척 메마른 삶이라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