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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순천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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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437회 작성일 23-03-3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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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만난 사람들

윤복순

 

일요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집밖만 나서면 모르는 것 천지이고 특히 낯선 곳에선 말할 것도 없다. 이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기도 한다.

순천역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한 대가 막 떠나려 한다. 시내를 도는 버스가 아니고 시외로 가는 버스는 빨라야 한 시간에 한 대, 늦으면 두 시간에 한 대나 있기 때문에 그 차를 놓치면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급한 마음에 버스기사에게 큰 소리로 선암사 가요?’ 하고 물었다.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몇 번이 간다고 알려주면 안 되나, 객지에서 온 나 같은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될 텐데. 물론 버스정류장엔 버스노선표가 있다. 역 앞엔 많은 버스가 다니니 위부터 아래까지 쭉 보면서 선암사를 찾아야 한다.

노선표를 보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아저씨 한 분이 1번이 간다고 알려준다. 당신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1번이 노선표 맨 위에 적혀있고 선암사는 종점이다. 바로 그때 아주머니가 16번도 간다고 알려준다. 한 대가 다니는 것과 두 대가 다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일요일이나 휴일은 사이사이 한 대씩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아저씨는 16번은 돌아간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이 시간대에 가는 것은 선암사를 들러 낙안읍성 쪽으로 간다며 당신이 타봐서 안다고 한다. 조금 돌아도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아 1번이든 16번이든 먼저 오는 것을 타야겠다고 맘먹었다. 아주머니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6번이 먼저 왔다.

10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아저씨 말만 듣고 1번만 기다리고 있었다면 16번은 가버리고 얼마를 기다려야 했을까. 맨 앞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안내 방송에 나오는 동네 이름과 연관성을 지어보았다.

약사 문인회 회원 중에 가곡OO약국을 한다고 소개한 약사가 있다. 번뜩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가곡이 지명이란 걸 알았다. 가곡은 어딜까, 내 맘대로 가야산 근방일 거라 생각했다. 버스 안내판에 이번 정류장은 가곡 OO아파트라고 뜬다.

가곡이 순천에 있음을 알았다. 순천에 똑같은 이름의 약국이 있으니 늦게 개업하는 약사가 동 이름을 앞에 넣어 약국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약사를 한 번도 본적이 없고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친근감이 느껴지고 가곡동이 특별해졌다. 그 약사가 나보다는 나이가 적을 거라 짐작해 본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사로 관음전, 나한전, 무슨전도 많을 뿐 아니라 바로바로 붙어 있어 한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옆을 보지 못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는 것만 보고 갔다.

내 나이 또래나 된 부부가 이쯤에 600년 된 매화가 있을 텐데 안 보이네.”하며 우리를 바라본다. 매화나무가 유명한 줄도 모르고 매화나무 몸피가 속은 텅텅 비었는데, 목발을 몇 개나 짚었는데 맨 위 끝가지엔 성냥 골만한 꽃이 맺혀있다. 그 위대한 생명력을 사진에 담으려는 참이었다. 이 나무가 600살 먹었다고 생각하고 예를 다해 사진에 담았다.

아이고 여기 계시네.” 그 사람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위풍당당하기가 대웅전의 부처님 같다. 이름표를 달고 있어 읽어보니 선암사엔 350~650년에 이르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50여 그루가 있다. 이들이 만개하면 장관을 이루는데 선암매란 이름이 있다고 한다. 3월 하순쯤 다시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곳에서든 매화를 보면 이 부부가 떠오를 것 같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편백나무숲길을 걸으러 갈 때다. 성보박물관이 이제야 눈에 띤다. 올라가 보니 문이 닫혔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지금은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실망하고 있을 때 앞 건물에 水 海 가 쓰여 있다. 이 건물엔 물이 들어있는 걸까. 스님들의 목욕탕? 바닷물 같이 많이 들어있다는 걸까.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저씨가 그곳은 왜 가요?” 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마냥 머쓱했다. 이 건물은 물을 담아 두는 곳인가, 물이 얼마나 많아 해수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물을 보러 간다고 했다. 아저씨는 사찰은 모두가 목조건물이라서 불이 나면 큰일이니 방편으로 물 수()를 써 놓았을 뿐 물은 하나도 없다고 알려준다.

바로 옆이 공양간이니 밥을 먹고 가라고 한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식당에서 밥을 먹었기에 배가 고프진 않다. 절밥은 맛이 좋다고 하니 먹어보고 싶다. 어느 해 청송 운문사 사리암에서 우연히 밥을 먹었다. 별 반찬도 아닌데 정말 맛있었다. 지금까지 절밥은 그때 한 번 먹어봤다. 밥을 먹었다고 하니 구경이라도 하라며 데리고 간다. 뷔페식이다. 얼마나 넓고 큰지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곳에서 뒤돌아서니 선암사의 유명한 뒷간이다. 유홍준 선생이 선암사의 제1 보물이라고 칭찬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다.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들어가 보았다. 정호승의 선암사란 시가 걸려있다. 시인은 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가라고 했을까. 해우소에서 실컷 울어라 라고 했을까. 화장실이 깊고 속이 다 보여 무서워서 울까, 나 같은 사람은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이 아파서 울 것 같다. 구경만 했지 볼일은 보지 않아 울진 못했다.


오늘 선암사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다. ‘상대방이 아마도 이곳이 가려울 거라 생각해 긁어 달라 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긁어주지 마라. 잘못해 상처가 덧날 수 있다.’ 그 뒤로 남의 일에 무관심이고 피해주지 말자 주의다.

오래 전 애기와 엄마가 약국에 왔을 때다. 애기에게 다섯 살? 하고 물었을 뿐인데 애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결국 약도 못 사고 그냥 갔다. 나중에 그 엄마한테 들은 얘기는 애는 7살이고 애가 어렸을 때 가정불화로 엄마가 가출을 했었단다. 그 때 애기가 잘 먹지 못해 키가 나이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나쁜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어도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적절하게 친절했다. 친절이 몸에 배어서 일 것이고 상대방의 마음에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무관심과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에서 친절한 사람이 되자, 로 바꿔 볼까.

 

2023.2.18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선암사의 역사적 의의는  뒤로 하더라도 주위에서 매화를 꼭 보고 오라고 여러 차례 권했는데도 아직까지 연이 닿지 않아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습니다. 내년 봄에는 꼭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선생님 따라 선암사 여행 즐겁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